지난 2월, 결혼 25주년 \'터키 여행\' 주선의 답이었을까?
학교 보충 수업 일정 때문에 4박 5일, 짧은 기간 동안 남편이 여행 자릴 마련했다
운명의 첫 단추를 끼웠던 경주의 그 호텔 그 방을 예약해 놓았다
뒤돌아 보기 조차 싫은 지난 25년의 세월.
\"내가 비겁했다. 그 앙금, 그 상쳐의 흔적, 어떻게 지우고 덮으라 하겠냐만 당신 못지않게
나도 당신께 못다준 정으로 남는게 많다. 이제 내년이면 딸내미도 대학생이니 우리 둘이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의미로 이곳을 잡았다\"
4박 5일 동안 남편은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희망을 읊조렸지만, 이미 물기 한점 없이 바스러질것 같이 말라 버린 내 감성은 그저
텅 빈 울림일 뿐.
그는 바람결이었다
그의 존재는 실존해 있었으나 실체를 묶어 둘 수 없었던 사람
먼 발치, 집 그림자만 눈에 밟혀도 등줄기 훑어 내리던 끈끈하고 습하고 서늘한 감촉의 식은땀.
온집에 등천 하던 지린내, 약 냄새, 절대 물러 서지 않을것 같던 절망이 늪처럼 가라 앉아 있는 공간
그곳에 병든 시어른 두 분과 내 어린것들이 방치 돼 있었다
곧 쓰러져 일어 설 수 없을것 같은 육신, 그러나 자켓 한쪽 팔 벗어 던지고 저녁 쌀 부터 씻어야 했다
지옥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수없이 되뇌이고 되뇌이고...눈 떠진 그아침들이 죽기 보다 싫었던 그 아침의 시간들
야속 하고 야속하고 또 야속했던 사람....
그가 희망을 얘기한다
여행의 마지막날, 가평에 있는 부대로 아들 면회를 갔다
제법 많은 비가 쏟아 지던 그 날.
초소에 앉아 기다리자는 남편 말을 뒤로 한 채, 우산을 쓰고 아들이 걸어 나 올 연병장쪽으로
아슴 아슴한 눈길을 초점 모아 바라다봤다
멀리서 우의를 입고 걸어 나오는 아이...
순간 하나의 영상이 내 머리를 훑었다
아들 초등 학교 1학년, 딸아이 4살 때의 여름, 토요일 오후
시어른들은 모두 돌아 가셨으나 그 분들이 남긴 집 한채 분량의 빚청산이 내 어깨를 내려 누르던 시절.
모처럼 일찍 퇴근 할거라 전화 한통 넣고 버스를 탔는데 예고 없던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정류장에 버스가 설 무렵 차창에 스치던 풍경 하나
빨간 슬리퍼 신은 딸애는 우산을 가슴에 꼬옥 안고 있고 4살 차이의 엄청난 키 차이의 아들이
여동생쪽으로 우산을 한껏 기우려 이미 한쪽 어깨는 비에 젖을대로 젖어 있었다
모든것 다 털어 버리고 싶은 위기의 순간마다 위태로운 내 감정의 끈을 다독여 주던 살가운 아이.
차마 입 열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하기 조차 민망했던 그 아이.
직장일 핑계삼아 흔적만 있던 남편 대신, 늘 손 뻗으면 허허롭던 가슴을 뎁혀 줄 거리에 있어줬던 아이.
차라리 남편 보다 더 의지처 삼아, 한번도 나이 대접 못 받아 보고 웃자란 아이.
기어이 긴 울음이 통곡 되어 쏟아졌다
면회실에 자리 잡고 준비한 음식을 풀면서도 잡혀 지지 않던 울음.
\"에이~~황여사! 아들 상병 달았는게 그리 조은교~~아빠, 아무래도 제가 군에 말뚝 박아야 할것 같네예 앞으로 병장 달고 전역 하면 울 엄마 남아 나겠심니꺼~~~\"
내년이면 아이들은 내 손길이 필요없다
잠시 떨어져 지내는 남편곁...
운명이 부려 준 버겁던 숙재, 꾀 부림없이 최선을 다했다 자부 하건만 나는 왜 돌아가 쉬고 싶으곳이 없는걸까..
바둥대며 움켜쥐어 내곁에 두려 했던것은 언제나 펴 보면 빈 손뿐인 바람 이었을까?
처음 부터 간직할 수 없는 허망한 바람속을 휘저은것일까...
초라한 마음 자리 채우고자 텅 빈 손바닥, 폈다 오무렸다 해보는 7월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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