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도시의 아침, 강남대로 위를 질주하는 사륜차의 소음이 빗소리에 묻힌건지 빗소리가 묻힌건지 귀가 얼얼할 정도이다. 어느 화원의 비닐하우스에서 들었던 빗방울 소리가 그리운 날, 나는 질퍽거리는 빗길 위를 발빠르게 걷고 있었다. 9시 출근 길이다. 삶의 거처를 떠나 이곳 객지에서 홀로 생활한 지 달포가 되었다. 26년을 서울에서 자라 결혼하기까지 내 고향 서울이 이제 객지가 되어 나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의 돛단배를 타고 순순히 잘 떠 내려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결혼 후 몇몇 도시를 거쳐 15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강원도 삼척, 정들어 고향처럼 느껴지던 안식처에서 복잡한 서울로 오기까지 결코 쉽지않은 결정이었다. 속사포처럼 빠른 하루 24시간, 며칠인지도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리고 마는 시간에게 감사해야 하는건지.... 비록 시간에 휘둘릴지라도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어 좋았다. 육체의 힘듬으로 녹초가 되긴 해도 마음 편하니 살만 하였다. 나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의 안스러움을 많은 지인들이 다독거려 주었다. 분명 잘될거라고 힘을 실어 주었다. 산과 바다를 벗삼아 힘들어도 내려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 그나마 행복했었다. 터질것 같은 다이너마이트 하나를 늘 품안고 가슴 읖조리며 살면서도 산이 오라 했고 바다가 부르곤 했다. 그리고 집 마당의 식물들에게서 난 많은 위안을 얻곤 했었다. 고쳐질듯 고쳐지지 않는 그의 병을 나는 희생을 감수, 떠안으며 살다 살기 위한 강구책으로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남편을 설득해 1년 넘게 운영하던 호프집을 남에게 넘기고 언니가 운영하는 반찬가게에서 월급 받아가며 일하기로 하였다. 작은 방이라도 하나 얻어 아이들과 합치고 남편과는 내가 쉬는 날 만나기로 합의, 일명 주말부부가 된 것이다. 가끔씩 발작하는 그의 병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맡겨놓고 시누이 모두가 내편이 되어 내 일에 쌍수를 들어 환영을 했다. 단지 그곳에서 꿈쩍하지 않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팔이 안으로 굽는지라 염려는 그 배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내 또한 모를 일이 아니었다. 앞뒤 재다보니 세월은 흘렀고 진즉 받아들여야 했을 언니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내 자신의 겉멋에 채찍을 가했다. 이제 철저하게 반찬가게 아줌마가 되어 손님을 대해야 하는 내가 되어야 했다. 그사이 냠편은 세번 서울을 다녀갔고, 나는 두번 집을 다녀왔다. 재작년 그에게서 탈출해 다섯달의 서울생활은 고통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나를 도와주어야 했다. 쉽지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동의하며 그러마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로 올라온 후 몇 번의 술로 저 자신을 다시 또 갉아 먹곤 하였다. 흘러 흘러 세월이 모든 것을 치유해주리라 믿는다. 파란만장 인생사 헤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나도 그중 하나, 아니 그보다 더 나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아침 출근길, 나의 걸음은 빗소리만큼이나 씩씩하다. 그리고 하루 12시간 일을 하고 돌아가는 발걸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몸은 고되고 파김치가 되어도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과 성을 다하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거라 믿고싶다. ** 그리운 에세이방 벗님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렵사리 구한 서울의 어느 원룸, 이제 인터넷을 깔아 자주 올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살면서도 가끔씩 찾아들어와 흘깃흘깃 훔쳐보는 님들의 사랑방 얘기들, 그리웠습니다. 함께 할 수 있을것 같아 기분 좋으네요. 자주 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