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진달래색 겉옷과 접시꽃색 하얀 바지를 입고 소 떠난 외양간처럼 텅 빈 공간에 앉아 계셨다. 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쓰레기봉투에 마지막 쓰레기를 담고 이곳을 떠나 이사할 곳으로 갈 채비를 서두르고 계셨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쓰다가 남은 쓰레기봉투라며 내 손에 쥐어줬다. 뭐든지 하나라도 챙겨 주시려는 희생마음에게 나는 짜증마음을 많이 들어내곤 했었다. 너무나 외로워 세상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나 생활고에 찌들려 한창 멋 부릴 아들아이에게 두벌로 한 계절을 보내게 할 때는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는 종일 침대에 누워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정신을 놓을 때는 엄마조차도 우리 집에 오는 게 싫었다.
그래도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찾아와서는 반찬을 놓고 가고, 과일을 들고 오고, 쌀을 다용도실에 내려놓고 가셨다. 그렇게 퉁명스럽게 엄마를 보내 놓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내가 없었으면 했다. 내가 없었으면…….내가 없었으면…….나는 왜 태어나서 엄마를 저렇게 가슴 아프게 만들까...
내가 가정을 끌어 잡아 당겼던 이유는 물론 아이들 때문이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큰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홀로 삼남매를 키우신 친정엄마에게 혼자되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내가 가정을 끌어안다가 죽더라도 엄마처럼 홀로 되어 엄마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끌어앉아 봤자 재뿐인 나의 가정을 엄마는 툴툴툴 털어서 끌어안아 주셨다.
엄마는 남편을 일찍 잃었지만 나는 남편이 살아 있다. 살아 있는데도 같이 살 수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나의 우울은 계속 진행 중이다. 삶의 의욕이 없어서 넋 놓고 하루를 보낼 때가 자주 있다. 일본에 있는 딸에게도 한 달에 한번 정도 전화를 한다. 딸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 몸과 정신조차 감당하기 힘들 때는 자식이고 뭐고 다 귀찮아지고 그냥 잘 살고 있겠지, 내가 전화를 더 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 없잖아, 하고 그냥 놔두고 있다.
아들아이에게도 공부나 여러 가지 학교생활이나 시시콜콜 물어보지 않는다.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가? 괜한 자괴감에 힘들어하지만 곧 비워버린다.
그런데 친정엄마는 자식에 대한 정신력이 대단하시다.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우리 집에 오셔서는 나를 들여다보고 가신다. 걱정되어 오신 엄마에게 나 혼자 있고 싶어, 이런 말만 수도 없이 했으니……. 나쁜년.
나는 괴롭고 힘들 때 혼자 있는다. 며칠씩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혼자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하는데 나는 누굴 만나면 더 우울해 지고 신경질이 나고 삶의 의욕이 없어진다. 이럴 땐 그래도 내게 위안이 되는 사람이 딱 세 명이다. 엄마, 막내이모, 한 명의 친구.
그런 세 명 중에 한 사람인 엄마가 멀리 이사를 가신다니 한 팔이 떨어져 나갔다. 한동안은 불편하고 많이 고독할 것 같다. 고독한 년.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우셨다. 날 두고 이사를 가게 되어서 우울증에 시달리셨던 엄마였는데…….떠나는 날 우신다. 눌러 담았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나와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친척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무시를 하고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삼남매를 키우신 엄마, 자식에게는 가난과 설움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약하고 작은 몸으로 삼남매의 울타리가 돼 주셨던 엄마, 술 팔고 몸 파는 일만 빼고 안 해 본 일이 없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낸 엄마, 내가 혼자될 때 온 몸으로 우리 세 식구를 감싸 안았던 엄마, 밤낮으로 내 걱정에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던 엄마, 나만 잘살면 죽어도 한이 없다던 엄마, 좋은 남자 만나 외롭지 않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한다는 엄마.
주변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나, 자식을 내 손으로 키우면서도 툭 하면 일을 하지 않는 무능력한 나, 혼자되었다고 우울증에 빠져 문을 닫아걸었던 나, 걱정하면 뭐하냐고 하면서 나를 까발리는 글이나 쓰며 새벽까지 서성이는 나, 건성으로 대충 기도하다가 자는 나, 뭐 굶기야 하겠어, 하고 태평하게 커피 마시며 낭만에 빠지는 나, 딸아이에게 대학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 엄마는 돈 없다 하던 나, 언젠가는 좋은 남자가 시골 가서 내 꿈을 펼쳐주겠지 하고 꽃 키우는 꿈만 꾸는 허황된 나.
집안 구석구석과 냉장고에 엄마의 모든 것을 남겨 주시고 떠나셨다. 김치 두 가지,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20킬로그램 쌀 한 봉지, 엄마가 쓰던 커튼 두 개, 유럽풍 벽시계, 작은 밥 상, 방석 커버, 이불, 화분 등을 끙끙거리며 들고 오셨다. 나는 왜 가지고 왔냐고 짜증을 냈다.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난 그런 것 보다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이사날짜를 받아 놓고 엄마와 동생들은 이 집 팔고 분당 가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난 당분간 일산에 남아 있기로 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딸아이도 아들아이도 여기서 학교를 다녔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고 이사 갈 상황이 아니다.
엄마가 떠난지 며칠 만에 집 밖을 나와 엄마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접시꽃은 여전히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엄마가 떠나도 꽃은 피고 꽃은 지는 것, 계절은 가고 계절은 오는 것, 세월이 그렇게 몇 년이 가면 난 다시 엄마 곁으로 따라가던지, 시골 가서 내 꿈을 펼치던지 하겠지.
날 혼자 내버려 두라고, 해서 엄마를 가슴 아프게 했던 나, 그런 내가 싫어 눈물이 나온다.
눈물 많은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