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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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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그리고 남편


BY 동해바다 2008-05-13



     
                          자주 찾아가는 삼척시 갈남 앞바다

 15년동안 끊임없이 돌리고 돌리던 세탁기가 수명을 다하였다. 
간간히 명을 이어오던 기계에 조금이라도 기대보고자 했던 나의 욕심이 무리였나보다.
재작년부터 조금씩 하자가 발견되더니 결국 묵묵부답, 반응없는 고물이 되고 만 것이다.
점점 더워져 가는 날씨인지라 웬만한 것은 손빨래하여 볕좋은 마당에 말리니 금방 마르기에
어느정도 버틸만 했다. 문제는 그런 일을 그냥 모른 채해 버리는 남편이 아니기에 결국 새 제품을 
구입하고 만 것이다. 집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웬만해선 돈 들어가지 않는 방향으로 또는 저렴한 
돈으로 해결되는 방법을 택하곤 했는데 이제 빨래도 남편이 해야 할 상황이 되었기에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전자제품 대리점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백만원에 호가하는 세탁기들이 즐비하니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보여지는 외관도 무시하진 못하겠고 
세탁되어 나오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순 있다고 하지만, 굳이 저렇게 비싼 물건들을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90만원대의 상품이 인기상품이라며 판매원이 권한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이 마음을 
그대여 아는가 ~~~
 아무래도 70만원정도는 들여야 사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다행히 싸면서도 세탁이 용이한 것이 눈에 
뜨이기에 30만원대의 제품으로 낙점하고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하였다.  

 엊그제 배달되어 온 세탁기는 다용도실 구석에 큰아가리를 벌리고 어서 빨리 먹잇감을 넣어달라 
보채고 있었다. 설치부터 세탁 방법까지 배운 남편은 빨랫감 없냐며 빨래가 하고 싶어 안달이다. 
침대 위 깔아놓은 패드 하나를 세탁하라 일러놓고 난 내 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에서 놀면서 
주부 9단이 되어버린 남편,  누가 보면 내가 호강하고 있는 줄 알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 이 내 마음을....
 작년 잦은 고장으로 애먹던 세탁기를 보면서 참 남편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멎어버린 세탁기때문에 쭈그리고 앉아 30여 분을 손빨래하고 나서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돈 들어갈 곳은 부지기수고 돈들여 사자니 없는 돈에 아까운 생각은 들고, 
그러다가 며칠 후 다시 전원을 켜니 이내 또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웬 떡, 탈수 완료까지 아무 탈없이 
세탁이 되곤 하였다. 이렇게 1년을 버텼다.
 술로 병원을 들락거리던 남편, 마음을 다잡고 다신 안그러마 약속하기를 수십 번, 고쳐질 생각을 않았다. 
물론 지금 역시 남편은 불안하다. \'헌 것 줄께 새 것 다오\'처럼 쉬이 버릴 수도 없는 동반자이기에 불안불안 
하면서도 나름 애쓰며 살아왔다. 고칠수 있는 병을 왜 안고 사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선 돈 앞에서 무릎끓수 
밖에 없었고 힘들어도 내가 떠안고 살아야 할 거라는 생각으로 일관하곤 했다.
 다 고장난 것처럼 보였던 세탁기와 이제 폐인이 되어 도저히 회복불능인 상태의 남편이 뭐가
다를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가는 세탁기, 다시 또 잘살아 보겠다고 애쓰던 남편
너무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년 1월 남편은 죽음에 임박해 홀로서기를 하려했던 나의 서울생활 5개월을 결국 백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3개월 후 그전보다 더 심한 상태로 입원, 병원비만 가중시키고 말았다. 그 돈이면
전문치료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콜중독자들을 위한 치료병원이 여럿 
있음에도 그를 설득하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였다. 완강히 거절하는 남편을 강제입원시키기는
정말 싫었다. 그건 할 짓이 아니라 여겨질 뿐이었다.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되어 떠나고 이제 둘만 남아
내 한몸 참으면 그 뿐이라는 생각이 그득했다. 매스컴에서 쏟아져 나오는 \'부부솔루션\' \'SOS\' 등등, 
모두가 비슷비슷한 사람들, 보면서 진저리치게 똑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 해결책이 없을까 뚫어지게 
보던 날도 많았다. 

여름 가을 겨울....
빨랫감을 먹은 세탁기는 말끔하게 때를 지워 뱉어내기도 하고 중간중간 정지되어 다시 나의 힘을
빌리곤 했다. 남편 역시 두달에서 한달 간격으로 폭주하고는 5일여 버티다 다시 일어서곤 했다.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차려놓은 술집을 힘겹게 1년여  이끌어왔다. 술마시지 않는 남편은 착실하기만 했다. 집안 일 
거들어 주며 내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려 한다. 술만 아니면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 저물 무렵, 가게 문을 열면 남편은 바(bar)의 높은 의자에 TV를 크게 켠 채 바깥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함께 말이다. 며칠동안 남편이 집안에서 술만 마실 때에는 홀로 가게 문을 
열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난 책을 펼쳐든다. 자주 오는 지인이 내가 혼자 있을때는 \'또 술먹나 보군\' 
할 정도이다. 당연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으니 손님은 오지 않을 수 밖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게 맡겨놓으면 어떻게든 해 볼텐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다녀 간 손님 중에는 남편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의 저의는
아닐지 몰라도...
결국 장사가 되질않아 가게를 세 주기로 그와 약속을 했고 다음 달이면 새로운 주인으로 탈바꿈된다.
돈을 벌어야 했는데 돈만 까먹은 1년이 되고 만 것이다.

 불어나는 마이너스 통장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그를 더욱 옥죄게 만들었고 나 또한 없던 부채가
점점 불어남에 좌불안석 그를 더욱 편안케 하지 못했던 것이 주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다. 홀로서기하려 할 때 그러니까 재작년 이 집을 팔아 빚 청산하고 작은 집 
하나 마련해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우리 서로 돈 벌자고 수차례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이 대출받은 돈과 이자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빠져나가 빚은 산더미처럼 부풀고 말았다. 
남편은 이곳을 떠나면 살수 없을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내가 태도를 바꾸고 설득시켰다. 당신은 몸관리나 
열심히 하라고....당신도 벌어야 살지 않겠냐고 얘기할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 몸에 무슨 일을 하냐고 
하더니 건강관리하면서 몸추스리라는  다독거림에는 아무 얘기가 없다. 어린아이가 따로 없었다.  

 세탁기를 바꾸면서 미련없이 버렸던 헌 세탁기, 영원히 함께 해야 할 동반자는 버릴 수가 없다.
새로운 마음으로 내가 다시 또 일어서기를 할 판이다. 다시 함께 발벗고 뛰어야 할 판이다.
유월이면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도통 움직이지 않던 남편을 설득해 내 생각의 반 정도만이라도 따라와 줌에 감사할 뿐이다. 

 뚜껑이 열려있는 세탁기의 내부를 들여다 보니 시원한게 커서 좋다.
무한정 받아 들여 줄 것처럼 커다란 용량이 마치 내가 큰 그릇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빨리 세탁기를 돌리고 싶어하는 남편이나 그를 바라보는 나나 별반 다를 것 하나 없다고 본다.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세탁기 하나 바꾼 것 만으로 기분좋아 단순해지니 말이다.
버려진 세탁기는 곧 폐기처분 되겠지만 폐인이 될 것 같은 남편은 어느 정도 사는데까지 비유맞춰 가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둥글레 꽃이 주렁주렁 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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