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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의 디너 쇼


BY 제르트뤼드 2008-05-13

잠실 롯데호텔의 크리스탈볼룸이라는 곳에서 조영남의 디너 쇼를 보게 되었
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던가.

어버이 날을 맞아 조영남이 효도콘서트를 연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내
가 먼저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너희들 어버이 날에 엄마한테 선물할거
지? 그러면 조영남 콘서트 티켓이나 예매해 주라....\"고 강매를 강요한 것
이다.
뻔뻔스런 엄마의 말을 듣고도 군말 한 마디없이 아이들은 20만 원의 최고 V
IP석을 예매해서 내게 티켓을 건네주었다.
웬지 좀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일이었지만 다른 것을 선물받는 것
보다 나에겐 무엇보다도 특별한 선물이었다.
맘에도 없는 선물을 받아들고 실망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실용적인가.ㅎ

두 어 달을 기다려서 날짜가 되기가 무섭게 쇼가 열리기 두 시간이나 전에 
나는 잠실로 달려갔다. 
전철에서 내려 롯데호텔의 입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겨우 콘서트
장을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나는 마치 시골에서 서울로 소풍 온 학생처럼 호텔의 여기저기를 돌아다
니면서 사진을 찍어대고 출입문마다 열어젖히면서 호화호텔의 구석구석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공연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출입구 쪽으로 모여들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아보이는 노인들 수가 절반을 이루고 있었다. 

 

400여 석 가까이 되는 좌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 차 있었다.
나는 촌스런 내 행동을 보이지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쓰면서 내심 초조한 맘
으로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앞에서 세번 째 쯤 되는 테이블에 앉아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처음엔 빵과 스프가 나오고 다음엔 스테이크가 나왔고 다음엔 디저트로 케
잌과 과일이 나오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노인 부부는 아주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
는데 자기들은 큰아들이 표를 사줘서 왔노라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도 덩
달아서 나도 내 자식들이 표를 사줘서 오게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한 시간 여를 식사 시간으로 주어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영남은 첫 곡으로 기타를 치면서 모란동백을 부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
이 박수를 치며 그의 등장을 환영했다.

나는 웬지 눈물이 날 것같은 분위기였다. 조영남이 처음 가수로 나와서 인기를 끌고 있을 때가 내 나이 십대 후반 쯤이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 목소리에 반해서 밤잠을 못이루던 때도 있었고, 노랫말이 주는 힘에 반해서 그 노랫말들을 인용한 글귀를 노트에 적어가며 밤잠을 설치던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의 인기스타들을 열열하게 좋아하는 십대들과 똑같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제비, 딜라일라, 불꺼진 창 등을 부르며 그 특유의 입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결혼해서 그냥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저런 재주를 가지고....\" 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진심으로 그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때로는 진한 웃음과 때로는 진한 감동이 우러나는 재치있는 이야기들을 담
은 노래를 들려주며 그는 세대를 넘나드는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이끌
어 가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조문 온 사람들이 내 관앞에서 모란동백을  불러주었으
면 좋겠어요. 화개장터는 말고 .....\"사람들이 자즈러지게 웃
었다. 그러나 나는 웬지 울고 싶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 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 를 잊 지 말 아 요 

 

누군가 말했다. 죽고 나면  그 이름이 더욱 유명할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조영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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