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조선일보 컬럼을 읽다 보니까..
요즘 스승의 날에 촌지문제때문에 휴교하는 학교도 많고...자녀들의 스승만 챙기지 말고
당신들의 스승을 찾아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삼각지에 있었던 상명여중을 나왔는데..지금은 중계동으로 이전했습니다만,
1학년때 담임을 맡으셨던 K선생님을 늘 잊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왜그리 먹고살기도 힘들었던지...또 왜 그리 형제는 많이 두셨던지..
등록금 한번을 제때 내기도 힘들었습니다. 연세대 수학과를 막 졸업하고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신 선생님은 아마 가르치시는 일보다 그일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합니다.
교복을 어찌어찌 맞춰입긴 했는데..오버코트도 없이 그렇게 한겨울을 나는 제자가 보기
안스러우셨는지 지금 같으면 누가 줘도 입을수도 없을것 같이 낡은 오버코트를 구하셔서
몰래 건네주셨던 선생님...교무실에서 그걸 건네받는데...고맙기도 하지만 자존심도 상해서
얼굴이 벌개지는걸 느꼈었습니다.
덕분에 추웠던 그겨울을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보낼수 있었습니다. 그시절 겨울은 너무도
추웠잖아요. 부끄러움도 많아서 짖궂은 여학생들의 질문에도 얼굴이 붉어지시던 그야말로
순진한 총각선생님이셨는데..제 모교에는 4년간 근무하시다 정동에 있던 배재고등학교로
옮기셨는데요...여고때 이던가 한번 찾아뵙고는 그야말로 30여년만에..어제...지금은 고덕동으로
이전한 배재고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우리 선생님...핸드폰이 족쇄같아서 싫다고..아직 핸드폰도 없으셔서..미리 연락도 없이 낯선 교무실로 들어서서
K선생님 자리를 찾으니...점버차림의 선생님의 등이 보이더군요..
가만히 다가가서 등을 살짝두드리니 깜짝놀라시는데..첨엔 저를 못알아보시더군요.
\'한번 맞추어 보세요....\'\'글쎄요, 누구신지..\'
쓰고있던 선글라스를 벗어보여드려도 통 못알아보시기에..저 아무개에요..했지요.
그제서야 환히 웃으시면서...맞아주셨습니다....많이 늙으셨더군요.
저 늙은건 생각안하고...\'그래도 다른사람들은 나이보다 젊어보인다고 하던데...\'
하셨습니다...올해 예순이시거든요..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세상에 그때 간직하셨던 교무수첩을 보여주시는데..
이름...출신학교...사는 동네...아버지가 하시는일...아이큐...수학성적..등을 꼼꼼히 메모해 놓으셨더군요..
\'너 아이큐가 몇인지 아니?\'...\'잘 기억이 안나는 데요\'
\'니가 우리반에서 아이큐가 제일 높았다..\'...전 생각이 도통 나지를 않았는데..
몇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깁니다..갑자기 방문한터라 미처 선물도 준비하지 못해서 달랑 케익 한덩어리를
사갖고 갔는데..마침 저녁에 선생님들끼리 회식을 하시는데 그자리에 가지고 가서 자랑하시겠다면서
또 그렇게 좋아하시네요...아마 늙어가는 제자의 방문이 너무도 좋으셨나봅니다.
조만간 또 다른 은사님 한분과 연락해서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내 인생 한페이지에 곱게 새겨져 있던 선생님...어쩜 이길을 오기까지에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던 자양분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요? 누구나 다 선생님이 있으실겁니다. 그중 참스승이 몇분이나 될런지 모르지만..
제 자식의 학창시절보다 우리들은 더 고맙고 정깊고 사랑깊으셨던 은사님들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망설이고 다녀온 길이지만 선생님보다 더 뿌듯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은사님께 전화라도 한번 해드리는게 어떨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