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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를 읽고


BY 둘리나라 2008-01-24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과연 무엇을 떠올리는가. 까닭모를 눈물부터 흘러내림은 알 수 없는 인연의 깊이를 마음속은 알고 있다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야 할 고향이며,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가도 반갑게 두 손 벌려 품에 안아 줄 마지막 휴식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랑의 근원인 어머니. 그러나 우리는 이상하게도 현실에서 어머니와의 거리를 느낄 때가 있다. 머리가 커 가면서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갈등의 폭은 가끔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경우를 겪었는지라 ‘등대지기’ 란 책은 특별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주인공인 재우를 보며 아직도 우리 사회 밑바닥에 남아 있는 장남이라는 묵언의 권리에 대해 씁쓸함을 가져보았다. 어느 집인들 집안의 기둥이며 그래도 믿음직스러운 장남에게 거는 기대는 특별하고 남다른 법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렇고, 우리 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없는 어머니에게 맏아들은 남편이며 또 자식이었을 것이다. 똑똑하고 완벽했던 형과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누나 밑에서 사랑에 굶주리며 자랐던 주인공.

 뜨거운 사막을 걷는 듯 언제나 사랑에 목마른 재우에게 끝내 어머니는 따스한 눈길 한번 준 적 없었고, 결국은 집을 나오게까지 했다. 가족이라는 끈을 스스로 놓아버린 재우는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으로 외딴섬 구명도의 등대지기가 되었다. 8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바다와 갈매기와 등댓불에 의지해 지내 온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정신을 놓아버렸고, 형과 누나는 현실에 연연하며 귀찮은 물건 치우듯 어머니를 재우에게 맡겨 버렸다. 세상 누구보다 당당하고 강했던 분이 훅 불면 날아갈 듯 다 타 버린 재만을 가득 안고 구석진 골방에서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에도 재우는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거리는 영원한 평행선처럼 만나기 힘든 서먹한 관계였고, 풀기 힘든 수학공식이었다.

 두 사람의 평탄치 않은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머니는 자식을 골탕 먹이려는 사람처럼 끊임없는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두 사람에게 진정으로 가슴을 열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등대의 불을 켜기 위해 비바람을 뚫고 등대에 올라선 재우는 벼락에 의한 감전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지쳐 가던 그를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살린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우의 목숨을 살리는 게 새로운 희망의 물을 말라버린 가슴 밭에 뿌려준다는 사실을.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재우 곁에서 빗물을 받아 먹여 주며 점점 빛을 잃어 가는 등대불이 된 어머니. 마지막 힘을 내어 자신의 속옷을 빗물에 적셔 자식의 입에 짜 넣어 주는 모성애는 가슴 끝에서 강한 전기가 일 정도로 숨이 막히게 아파 왔다. 피를 말리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본 어머니는 외로운 재우를 지켜 주는 등대가 아니었을까.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이 온몸에 눈물로 흘렀다.

 재우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다짐하며 이 책은 끝이 난다. 우리는 왜 어머니는 자식에게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 온 것일까? 낳아 주었으니 키워 주고 입히고 공부시켜 주는 게 의무이고, 사랑은 필수조건으로 반드시 해 주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며 부모의 희생을 강요해온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았다.

 주인공 재우처럼 나도 8년이 넘게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으면서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왠지 먼저 손을 건네기가 쑥스럽고 힘들다. ‘등대지기’를 읽고는 이런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눈을 감고 어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눈물이 왜 이렇게 흐르는 걸까.

 등대!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등대를 품고 산다. 누가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꿈을 위해 매일 매일 등대의 불을 밝힌다.

가끔은 빛이 약해지기도 하고, 꺼질 때도 있지만 오래된 습관처럼 어두워진 마음의 바다에는 생명의 끈으로 연결된 등대가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을 위해 불을 켜는 사람들. 삶을 위해 불을 켜는 사람들. 미래를 위해, 희망을 위해 불을 켜는 사람들. 오늘 나는 사랑을 위해 등대의 불을 켜 보았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 엄마에게 보이도록 더욱 밝게 불을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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