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머리도 불편할 때가 많다.
뒤로 묶어 땋아도 운전할 때 좌석 등받이 사이에 끼기도 하고 잘 때도 불편하고 머리를 감아 말리는 것도 힘들다.
식당 아줌마라서 머리카락이 행여 음식에 들어갈까봐 길러서 묶는 머리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긴머리도 적당한 길이여야지 너무 길어서 불편한게 한 둘이 아니다.
긴머리 여자랑 살고 싶다는 것이 남편의 소원이었었는데 이제 그것도 심드렁하단다.
반백의 긴머리 소녀는 그다지 낭만적이 못되나 보다.
새벽 일찍 일어나 무엇을 할까 하다 머리를 자르기로 하였다.
잘드는 가위를 하나 골라들고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물을 틀어 머리 끝을 적시고 왼쪽 옆머리부터 싹뚝 잘랐다.
대충 길이를 맞춰 자르고 층이 지지 않도록 다듬는 일이 쉽지 않다.
예전 같으면 이리 힘들지 않았는데 이런 일에도 나이 탓을 하게 한다.
거울을 보고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가위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데 그게 매번 내 생각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머리 자르는 일이 내겐 낯 선 일은 아니다.
미장원에 가서 쓰는 돈도 아까웠고 미용사가 잘라 준 머리가 그닥 맘에 들지도 않아 집에서 머리를 스스로 자를 때가 많았었다.
예전에는 거울을 보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원하는 대로 자르는게 그리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몇 년 머리를 기르는 동안 내 손이 무뎌진 것인지 두뇌가 무뎌진 것인지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슬그머니 짜증이 솟을 만큼 긴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남편의 도움까지 얻어 간신히 끝마쳤다.
\"여보,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염색도 할까봐.\"
\"좋지. 잘 생각했어.\"
\"긴머리 여자랑 살고 싶다며...\"
\"옛날 이야기지...\"
\"나이가 드니까 얼굴에 자꾸 뭐가 생기는데 맛사지도 받아볼까?\"
\"아이구, 철 들었네!\"
남편이 날더러 철들었단다.
농담도 아니고 비웃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다.
많이 불만이었나보다.
남편은 남자이고 이쁜 여자랑 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쁘길 거부하는 여자랑 살 수 밖에 없도록 내가 강요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결혼하고 언제부턴가 남편에게 이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자존심 상하고 굴욕으로 느껴졌다.
스스로가 여자인 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에도 마지 못해 화장을 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화장을 했다.
정성이 들어 갈 리가 없었다.
그나마도 남편이 직장을 그만둠과 동시에 색조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내가 철이 들었다고?
남편을 진정으로 용서할 준비가 되었나?
아니면 스스로를 사랑할 마음이 생겼든가...
슬쩍 미친 척하고 정말로 얼굴 맛사지도 받아보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자르고 염색도 해볼까?
많이 내키진 않지만 나랑 더불어 사는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한번쯤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정말 철이 드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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