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난 돌은 좋은 돌이다 >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앞서가는 사람\'이나 \'튀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죽여 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청난 \'가학의 문화\'가
깊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누드모델로 성공한 이승희씨가 한국에 와서
크게 화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정을 느꼈다.
만약 이승희씨가 한국 에서 살았더라면
그런 성공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국의 풍토가 어떤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의과대학에 다니다가 누드 모델이 됐다면 그건 확실히 \'튀는 짓\'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그런 모험을 감행하고 귀국하면
대체로 긍정적인 쪽 에서 화제가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어떤 여자가 그런 모험을 했다면
아마 지독히 두드려맞았을 게 뻔하다.
그러니 튀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 국을 탈출하여(?)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자기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간 사람의 대표적 예로 우리는 자랑스럽게 전위예술가 백남준을 꼽는다.
그러나 백남준 역시 한국에서만 살았더라면
자기의 \'튀는\' 아이디어를 예술로 실천해 보기도 전에
흠씬 두들겨 맞고 녹초가 돼버렸을 게 뻔 하다.
듣기에 그가 미국에서 초기에 시도한 행위예술은
여인의 \'누드\' 를 이용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가거나 튀는 사람의 예로 꼭 누드모델이나 예술가만을 드는데
불만 이 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야보다 \'품위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학술이나 사상면에서 봐도
앞서가거나 튀는 사람은 언제나 변을 당하기 쉽다.
\'중용\'에 뿌리를 두고 \'점잖은 처신\'만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 의 풍토는,
그런 사람을 \'건방진 사람\' 취급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임용관행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학인이라면 누구나 꼽는 첫째가는 병폐가 바로
\'실력있는 사람을 임용하기를 꺼려하는 교수사회의 분위기\' 다.
이것만 봐도 한국의 지식인사회가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력있는 사람\'이란 결국 \'앞서가는 사람\'이나 \'튀는 사람\'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문 편수로 그 사람의 실력을 따질 수는 없다.
서구 이론을 소개하는 식으로 남의 이야기를 모자이크하는 논문 1백편보다는
설사 가설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의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는 논문 한편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서는
\'어부지리(漁父之利)\' 를 노리는 사람 들이 너무나 많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점잔만 빼고 있다가
앞서가거나 튀는 사람들이 피를 보고 꼬꾸라진 다음에 슬쩍 고개를 디밀며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상투적 처세술이다.
그들 을 다른말로 \'기회주의자\'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이 사회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사회는 발전의 속도가 늦다.
그런 사회에서는 진짜로 재주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기량을 못펴보고 고꾸라지거나
조로(早老)해버리거나 아웃사이더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품위있는 사람\'이나\'점잖은 사람\'들은 대체로 실력없는 사람이거나
\'독창적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이기 쉽다.
반대로 실력있는 사람은 경박하거 나 건방진 성격을 갖고 있기 쉬운데,
무식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 을 숨길 수 없어서일 것이다.
역사상 천재적 예술가들이나 과학자, 사상가들은 다 사교에 서투르고 고독했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생활에 있어서도 이른바 \'문란한\' 짓을 많이하는 것으로 남들에게 비쳤다.
오스카 와일드나 버트런드 러셀, 그리고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의 사생활이
복잡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비난받은 것은,
그들이 \'앞서가는 윤리 관\' 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발전을 이룩하는 주체는 역시\'인간\'이다.
허공중에 떠도는 \'세계화\' 나 \'선진화\'같은 구호는 발전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개개인의 재주와 아 이디어를 아껴주는 풍토가 이룩돼야만
비로소 비약적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우리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할 관행은
\'모난 돌이 정 맞는\' 풍토를 없애는 것이다.
\'모난 돌\'이란 곧 개성을 갖고서 시 대를 앞서가거나 튀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광수 교수의 \"자유에의 용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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