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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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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허우적 대다.


BY 영롱 2007-09-19

 삶은 정말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일과 관련하여 며칠 전 심리 테스트라는 것을 했는데, 내 일에 대한 전문성은 백점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냉철한 판단력은 영점이 나왔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다.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냐고? 집에 돌아오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냉철한 판단력이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살겠어?\' 정말 나라는 사람은 왜 이리 감정적이고, 즉흥적인가?

 내 나이 스물 셋에 결혼을 했다. 냉철한 판단력이 마흔에도 영점인데, 그때는 어땠겠나? 우여곡절 많았던 힘겨운 결혼 생활을  끈질기게 참았다. 아이 둘이 조금 컸을 무렵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은 내 콤플렉스를 수시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일, 내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배워 냈다. 그러나 학력이 전부라고 믿는 시선들은 끈질기게  대학 졸업장을 요구했다.

 일을 하면서, 수시로 밥상을 뒤엎는 남편의 반대를 또 참으며, 서른 아홉에 드디어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얼마 전 시나리오와 시창작 강의를 들으려고 예술대학 캠퍼스를 들어섰다. 가슴이 그렇게 뛰었던 때가 언제였나?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눈물이 나왔다. \'잘  참았어. 너의 지긋지긋한 인내심이 결국 이겼어.\'

시나리오 창작반의 절반은 이십 대 어린 문창과 학생들이었고, 나머지는 영화와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러웠다. 나도 한 때는 판타지가 있었다. 나도 스무 살에는 글을 쓰려고 밤을  세우고, 여행을 하고, 너무도 무한한 상상력에 나를 맡겼었지.

 더 이상 나의 글은 판타지가 될 수 없다. 허허 벌판의 겨울나무처럼 바람을 막아내며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정신없이 보냈다. 마흔이 되어 갑자기 글을 쓰려고 보니, 내 상상력은 바닥이 나있고, 팍팍한 삶의 흔적만 널브러져 있다.

 시창작반 두 번째 수강하는 날 나는 시 두 편을 내밀었다. 난 그 때까지도 오만했다. 나는 예전의 화려한 내 시절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줄 알았다. 사실 난 한 때 출판사에서 책을 내 주겠다는 제의도 받았었다. 정말, 글을 열심히 썼을 때, 수시로 내 독자 (?)들이 편지를 보내왔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먼 시절 전설이 되었을 뿐 이라는 걸 두 번째 시간에 온 몸과 마음이 아프게 깨달았다.

 거침없이 시가 아니라고 깨부수는 강사님... 나는 오만과 자기 도취와, 허영에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마음이 갈가리 찣어지는 아픔이다. 언젠가는 꼭 글을 쓰리라고 위로하며, 모든 걸 묵묵히 참아냈다. 꿈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런데, 너무 늦은 것 같아 아프다. 늦지않았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단 한 줄도 못 쓰겠다.

 이럴 때 난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마흔에 애  둘을 키우면서도, 그래도 원망스럽다. 내게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한 두 분이... 남편 원망은 이제 지쳤다. 냉철하지 못한 내 판단력으로 인한 내 선택을 더 후회할 뿐...

  그냥 포기하고 살까? 지금 생활도 나쁘진 않다. 아이 둘, 사랑하는 일, 없는 것 보다 나은 남편... 이 나이에 머리 아프게 무슨 글이야. 이러면서 난 내일 강의 시간에 토론할 시집을 읽고 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옛날엔 알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이 사실이 나를 더 미치게 한다.

  이 가을 참 많이 아프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싶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꿈을 포기하지도 미루지도 마세요. 다음은 없습니다. 지금만 있을 뿐.\"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부서지면서 늦었지만 힘들지만,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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