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임박해지자 괜히 마음만 바쁘다.
냉장고안도 괜스레 열었다 닫았다하고,
안방 화장실, 마루쪽 화장실도 들락날락하면서도 마음만
청소해야지 하면서 그냥 나와버린다.
냉동실새우도 꺼내어 미리 까놓아야하고,송편 쌀도 빻아놓고,
마른고사리도 물에 불려 삶고,동그랑땡 재료도 만들어
둘둘말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살짝 녹을때 썰어 밀가루묻혀 구우면
추석전날 부산스럽지않고 훨씬수월할텐데 도무지 몸이 움직여 지지않는다.
나이탓으로 돌리기에는 아직 젊은데(?).
게으름이 한껏 몸에 배어 몸놀림조차도 느려져 걸음걸이마저도
\'세월아 가거라 네월아 오너라\'가 된다. 요즘.
남편에게 뇌경색이 온지 10개월째다.
\"아직 일년이 안되었나?\"
\"벌써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두 가지 의식속에 조금씩 나태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 별다른 호전이 없으니 세월을 탓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나의 모든걸 접어둔 채
남편에게 쏟았던 혼신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남편이 아프기전에는 친척들의 모여 명절뒷풀이 때
술좌석이 고조되면, 술주사가 심한 남편때문에 자못 공포분위기가 되었었다.
그때는 속으로 \'저놈의 술주정은 죽도록 아파야 없어지려나 \'했었는데
저주담은 그때의 내 속말에 벌을 내렸을까.
지금은 혈액순환에 좋다하여 간혹 소주 한두어잔 먹어도
조용히 잠을 자는 남편을 보면 편안한 마음보다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공포분위기가 되어도 좋다. 간사하다고 흉을 봐도 좋다.
전처럼 욕도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지금의 이 고통보다 차라리 낫겠다.
이번 추석에는 가장인 남편이 중심이 되어 예전처럼
친척들과 모여앉아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고 싶었는데...
말없는 남편을 보니 의욕에 맥이 빠지고 열정이 자꾸 기운을 잃어간다.
시누이에게,시동생,조카에게도 추석당일 오라고 해야겠다.
예년같으면 추석이 다가오면서 발걸음도 빨라지고,
마음이 바쁜 만큼 몸짓도 빨라져
추석장거리로 냉장고안이 비좁을터인데 아직 우리집 냉장고는
맨숭맨숭해서 썰렁해 보이기까지하다.
가을의(7월~9월) 중간쯤에 있다하여 中秋節이라는데 가을의 중앙에 들어섰다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한낮의 더위때문에 더 나른해지는것 같다.
에어컨, 선풍기가 제철이 지났다고 성급하게 닦고 손질해서 스위치를
다 걷었는데 온 집안을 기어다니며 걸레질하고나니
땀에 흠뻑 젖는다. 소매긴 옷을 벗어던지고 서랍을 열어 반팔을 꺼내어 다시 입었다.
지긋지긋한 올 여름이 그냥 떠나감이 아쉬운지
끈질게 잡고 늘어지는것 같아 정말 얄밉다.
3일만 있으면 아이들도 내려올건데 서둘러야겠다.
마음만,마음만 자꾸 바빠온다.
오늘 아침 신문에 올려진 옛글의 시조가 구수하다.
시조 한 편 읊고 부지런을 떨어볼까나.
-흐르는 세월이 궁하고 병든속에
어느듯 중추절이 다가왔네 그려
벽 뒤에선 귀뚜라미 애절히 울고
구름위엔 기럭 그림자 빽빽해라
달빛은 오늘 밤부터 밝을터인데
나그네는 타향에서 시름을 하네
다만 기쁜건 동쪽 울타리 국화가
곧 피거든 술사발에 띄우는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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