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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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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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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BY 햇살나무 2007-09-12

살다보면 이래저래 불필요한 짐들이 자꾸 생겨난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고 어느 구석에 쟁겨놓기 마련인데...

덩치가 너무 커서 안보이게 치우지도 못하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작은 방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까만 피아노이다.

요즘엔 예쁘고 날렵해서 장식용으로도 놓아둠직한 피아노도 많지만 우리집 피아노는 내 손 때가 고스란히 묻은 30년 된  골동품 까만 피아노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친정 어머니는 참으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음악을 좋아하셨던 분이었다.

항상 아침엔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아 음악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게 하셨고 오후엔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틀어 주시곤 하셨더랬다.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 가고 얼마 안있어 어느날 집에 가보니 까만 피아노가  내 방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론 피아노를 살만큼 우리 집이 크게 넉넉하지 않았을 터인데도 엄마가 무리해서 장만하신 듯 싶다.

신기해하며 좋아했던 것도 잠시, 그 날부터 나는 엄마한테 혼나가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똑같은 음반을 두드리는 게 어찌나 싫증나던지 꾀를 부리기 일쑤였는데 엄마 몰래 시계 바늘을 슬쩍 돌려놓기도 하고 한 번 칠 때마다 하나씩 그어야하는 작대기를 몇 개씩 한꺼번에 긋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츰 피아노는 나에게 너무나 밉고 싫은 대상이 되어 이 담에 내가 커서 엄마가 되면 내 아이에겐 절대로 피아노를 안 시키겠다고 다짐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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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그렇게 싫던 피아노가 항상 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 든든한 친구처럼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옛날에는 남자선생님들 중에 풍금을 잘 못치시는 분들이 많았던지 음악시간엔 내가 반주를 맡아서 하곤 했다. 내 품금소리에 맞춰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게 참 좋았었다..

그리고..중학교..고등학교시절...힘들고 스트레스 쌓일 때 시원하게 한바탕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고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다시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어릴 때 피아노 치기 싫었던 기억보다..피아노를 침으로써 내가 누렸던 즐거움과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고...결혼을 하면서 차츰 피아노는 나에게 잊혀져 갔고 덩치 큰 녀석은  자리만 차지한다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갔는데...

어느날 엄마가 결국 피아노를 처분하시겟다고 하셨다.

더 이상 피아노 칠 사람도 없고 방도 좁아서 그냥 없애겠다고...

막상 없앤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섭섭하던지...

그래서....그 덩치를 내가 들고와버렸다...

옮기고 조율하느라 몇십만원이 깨졌지만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고 서운했다..

그리고 옛날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암만 생각해도 그게 큰 실수였던 것같다..

그냥 때되면 피아노학원에나 보낼 것을 내가 부지런 떤다고 가르치다가 울 아들이 아직까지도 피아노 근처엘 안가려고 한다.....ㅜㅜ

어쨋건...우리 집에 와서도 다시 몇 년을 빛도 못보고 방 한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추억을 함께 한 녀석...버리지도 못하고 껴안고 가기엔 너무나 덩치가 큰 녀석...

오늘도 녀석을 보며 어쩌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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