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힘들다,
세상에서 제일 일 많이 하는 엄마라도 된 양,
애들한테 궁시렁궁시렁, 잔소리와 짜증만 늘어서
부쩍 신경이 곤두서있는 요즘.
아직 일한지 채 2달도 안됐건만
십수 년, 시장판 노점상을 하며 한평생을 지문이 닳도록
살아오신 분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냐?”
“슈퍼타이 앞에서 거품 풀어?”
“에어컨 앞에서 부채질 하는겨?”
“커서 뭐 될래”....
등등 핀잔주고 싶은 말씀들이 많지나 않을는지.
나도 모르게 점점 콧잔등에 내천(川)자를 그리고 사는 것 같다.
어쩜 반성은 늘 이렇게 잘하는지,
수학과 국어는 못했지만 분수와 주제 파악만 잘할 뿐,
그 이상 발전이 없는 나...
오늘 아침,
아들 녀석 출근하는 나에게 한다는 말이,
“엄마, 저 개학이 24일 맞지요?”
하는 거다.
기억력이 워낙에 좋았던 제 엄마의 정신상태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올라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녀석이 목숨(?) 거는지
모르고 물어보다니...
제 엄마 성질이 얼마나 더럽나 테스트 하려는 것도 아니고.
질문다운 질문을 해야지, 학생이 되서 개학이 언젠지를
엄마에게 묻는단 말이야?
카멜레온의 변색처럼 마음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제 엄마의 심기를
왜 그렇게 들쑤셔놓지 못해서 안달인지...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어? 그걸 질문이라고 물어?!”
“......”
그렇게 출근을 했다.
반성의 기미가 역력한 아들이 도서관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사무실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 8시 35분,
아들에게 부재중 전화가 2통이나 와 있었다.
확인하자마자 아들에게 전화를 거니 받지를 않는다. 2번을 더 걸어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발신자 번호를 보고 연락하겠지, 하는 마음에.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아들’이라고 이름 찍힌 나의 핸드폰이 트위스트를 추고 있었다.
자식 빨리도 확인하고 전화 했네, 하며 폴더를 열었다.
“왜 전화했었어?”
나의 첫마디에,
아들의 목소리가 아닌 딸, 아영이가 대꾸를 했다.
“엄마, 근데요...”
“?... 너가 왜 오빠 전화를 가지고 있어?”
“오빠 학교 갔어요. 근데 엄마 전화번호를 알아냈어요.”
“알았어. 잘했어. 오빠가 학교에 왜 갔니?”
아들 놈 엄지발가락 안쪽으로 티눈이 작게 생겼었는데 언젠가
뽑았던 자리에 또다시 그 것이 불쑥 생겨난 거다.
작은 크기에 만만했고 언젠가 제거했던 경력(?)이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나두고 나둔 것이
어제 저녁에 살펴보니 0.5cm쯤이나 자라 있었다.
엄마의 무관심에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아침에,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는 아영이에게 바로 옆에 있는
피부과 병원 전화번호 좀 알아서 연락해 달라고 하니 소심한 것이
자신 없단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덕분에 출근길을 돌아가며 병원 간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손수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랬던 아영이가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번호를 알아내서 불러주는 거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 옮겨 적는 척하며,
고맙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건 그렇고
입학식 전, 예비소집일도 아니고
개학 익일, 등교를 뭣하러 했다는 건지, 의문이 생기 길래 딸에게 물어보니
대꾸가 아주 덤덤하다.
“오늘이 개학이래요.”
.
.
.
.
.
딸의 말이 머리 속에서 계속 메아리 쳤다. 개학이래요~ 래요~ 래요~
개학일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도 문제지만,
아들이 알고 있는 날짜만 믿고 확인 한번 하지 않은 내가
명색이 엄마라고 큰소리 쳐도 되는 건지,
교복도 꺼내놓지 않았는데 챙겨는 입었는지,
봉사활동 확인서를 비롯한 숙제들은 챙겼는지,
걱정이 태산 같으니 일인들 집중이 될까,
넋이라도 빠진 듯 멍해져서
정신없이 헤매고 헤매느라 진땀 꽤나 흘리고 있는데,
오전 11시쯤 됐을까,
낮선 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엄마, 제가 오늘 개학이 언제냐고 물었었잖아요.”
아들놈이었다.
어디다 대고 따지고 묻는지...
“니가 언제 물었어? 그리고 학생이 개학도 몰라서 되겠어?
교복은 입었냐? 숙제는?“
“교복은 입었구요, 숙제는 못 가져 왔어요. 그런데 다행히
오늘 숙제를 걷지 않더라구요.“
그걸 정말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건지,
한심하다는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려는 순간
상냥한 어투의 여자 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빈이 어머니, 저 담임이에요.”
“!!! 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아빈이가 엄마가 걱정하실 거라고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하라고 했어요.“
“네...오늘 개학인줄도 몰랐어요....”
“네, 그래서 그런지 아빈이가 양말도 신고 오지 않았더라구요.
실내화를 신었는데 양말을 신고오지 않으면 불량하게 보이구요...“
선생님의 상냥한 소리는 1분 동안 이어진 것 같다.
모두들 시간은 어찌나 그리도 잘 맞추는지,
때맞춰 민원이 밀려들어서 줄을 서고 있었다.
목청 큰 내가 속닥거리듯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민원들 신경 쓰며 통화를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담임의 말씀에 별다른 대꾸도 드리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일을 하면서도 담임선생님께서 아들에게 무관심한 엄마라고 얼마나
흉을 볼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고 점심시간,
민원이 뜸해진 시간을
틈타서 1학년 담당 교무실로 전화를 해서, 1반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서 연결이 된 것 같다.
“저에요, 아빈 어머니.”
한번에 알아주니 반갑다는
마음에 앞서서 그 동안 본의 아니게 선생님과 여러 번 통화를 했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아빈이가
깨트린 대형 tv브라운관, 친구와의 싸움, 선생님에 대한 간접적인
반항...
덕분에 아들담임께서 확실하게 내 목소리를 각인했나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취직한 일이며,
그로인해서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소홀해 진 것들,
양말을 신지 못한 것도 어미 잘못이요,
그나마 교복이라도 챙겨 입고 가줘서 대견하다는 칭찬(?)까지...
학원을 끊고 도서관 열람실을 당분간 다니게 한 사연들까지
낱낱이 털어 놓았다.
잠시 짬을 내어 성심(?)을 다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갸륵했는지
담임이 그랬냐며, 앞으로 아빈이에게 신경을 더 써줘야겠단다.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연락까지 해주시겠단다.
당연히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로 마무리가 된 대화...
어쨌든 담임선생님을 이해 시켰으니 마음을 놔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려는데,
집 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또다시 울려 됐다.
“여보세요.”
하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
이제는 집 전화나 아이들의 번호가 찍힌 핸드폰만 보이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엄마!!!”
“응!!! 무슨 일이야 또...!!!”
“엄마! 큰일 났어요. 어떡해요.”
울먹이는 아영이의 목소리,
이쯤 되면 내 입안은 침까지 바짝 마를 지경이다.
“무슨 일인데?!”
“엄마,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래, 빨리 얘기해! 무슨 일이야?”
“엄마... 거미가 있어요. 노란색 거미가 있어요.”
.
.
.
.
.
.
누구 말같이 내가 콧구멍이 두 개라서 숨을 쉬지,
집체만한 거미가 나타났다면 모를까,
작은 거미가 나타나서 필통으로 때렸는데도
죽지 않고 움직이더니 사라졌다고
그것이 제 몸에 붙었으면 어쩌느냐고 울먹이며 전화를
해대니 아무리 강한 심장인둘 배겨날 수가 있을까.
“거미가 널 더 무서워해.”
“내가 더 무서워해요.”
“니가 더 커.”
“그래도 징그러워서 무서워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 거미도 네가 무서워서 어딘가로 숨었겠지. 그래도 무서우면
너도 숨어있어. 학원 숙제는 다했니?“
“지금 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