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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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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거(4)


BY 개망초꽃 2007-08-23

개는 생리를 할 때 여자의 그곳이 털 보송송한 개복숭아를 닮았다. 갈라진 틈사이로 혈이 이슬처럼 고였다가 토독 떨어지려고 할 때 개는 그 곳을 정성껏 핥아낸다.

사람도 개처럼 혀로 핥을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졌다면 남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감정 교환이 돼야 몸과 몸이 합쳐 질 수가 있고 그래야만  뜨거움을 몇십배 토해낼 수가 있다. 감정 없이 하는 것과 감정이 극에 달해 하는 것의 차이점은 그야말로 미적지근한 수돗물과 한번 뜨거워지면 금방 식지 않는 아궁이와 비교해야할까?


과부가 홀로 지새우는 밤을 견딜 수 없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른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다. 나는 실로 그래본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지는 몰라도 남자가 필요해 견디기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의지할 한 사람이 필요했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동반자가 필요했다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살다보면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면 한 남자를 앞에 놓고 속상하다고 투덜거리고 힘들다 엄살 부리면 내 편에 서서 그래그래 당신 말이 옳아, 당신이 잘 한 거야 알았으니까 잊어버리고 밥 먹자? 해 주는 남자가 내겐 필요했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남자가 필요했다. 한 달 동안 고생한 월급 갖다 주면 쪼개고 쪼개 생활비를 쓰고 싶었다. 시골 가서 살고 싶다는 내 꿈을 인정하고 얼마를 적금 부으면 될까? 하면서 눈 마주하며 의논하고 싶었다. 꽃 화분을 사와서 꽃이야기를 하면 꽃을 한두 번 정도는 쳐다보면서 이름이 뭐야? 하는 그런 남자가 난 필요했다.


개가 생리를 시작한지 열흘쯤 되면 새끼를 가질 수 있다고 친구가 이번에는 어서 새끼를 갖게 해서 한 마리 달라고 했다. 나도 새끼를 낳아서 길러보지만 허리가 휘고 머리 한쪽이 항상 우중충한데 무슨 새끼를 낳게 하냐고 했더니, 너는 자식이 있으면서 개는 평생 살면서 자식도 못 낳게 하면 되겠냐고 뭐라 뭐라 한다. 자식이 무슨 소용이냐 혼자 기르려니 너무 고단하다고 했더니, 이 계집애야 너는 재미 봐 놓고선 개는 평생 처녀로 늙게 할 거냐, 한다. 뭔 재미를 봐? 난 본 적 없다. 의무적으로 생겨서 낳았다, 한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개를 쳐다보았더니 뭐가 좋다고 꼬리를 흔들고 샐샐 웃어준다. “꽃순아? 새끼 낳고 싶냐? 남자가 그리워? 엄마도 남자가 그립단다. 근데 남자들 속물이야. 여자를 보면 남자는 섹스만 생각한단다. 여자는? 여자는 남자를 보면 돈 이 한 단어만 떠올린단다. 세상이 속물근성들만 남아가지고 더럽지 않냐? 그치, 꽃순아. 우리 이렇게 홀로 서로 의지하며 살자?”


나는 밤은 밤이 패이도록 잘 놀 수 있는데, 아침에 깨어나면 울고 싶도록 허전하다. 속 내장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이 텅 빈 소리가 나면서 가슴만 무겁게 비대해져 나를 짓누르고 있다. 살고 싶다는 의욕이 없고 게걸스러운 식욕도 없다. 새벽녘에 잠들 때 이대로 아침에 깨어나지 않게 해 주셔요, 할 때가 더러더러 있다. 휴가 마지막 날은 진짜 그랬다. 아침을 지워주세요, 그러나 아침은 왔고 내 옆엔 남자가 아닌 개 한 마리가 자신의 그곳을 핥고 있었다.


생리가 묻어 있는 침대패드를 세탁기에 넣었다. 나도 생리를 할 때 침대패드에 불그죽죽하게 생리를 묻히게 된다. 마른 체형치고 생리양도 많고 생리기간도 길다. 오장육보는 허약하다고 하던데, 치아와 자궁은 튼튼하다. 아니다, 아닌 것 같다. 두 아이 다 임신했을 때 유산 끼가 보여 한 달 동안 치료를 받고 힘든 일은 안하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부터 남편은 도박을 임신했다. 허구한 날 새벽녘에 밤그늘을 뒤집어쓰고 왔다. 임신 7개월째 남편은 도박 때문에 회사 공금을 쓴 게 들통이 났고 그제서야 내게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도박 빚은 전세금을 빼서도 갚지 못할 만큼 커져있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홀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애기를 없앨 수 있냐고 물었다.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후회했다. 엄마를 용서해 줘, 네가 무슨 죄가 있니...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남편은 도박 빚을 철푸덕 낳아 놓았다. 아이가 태어난지 한 달 만에 남편은 다니던 회사 공금횡령죄로 퇴직을 하게 되었다. 구속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시집에서 갚아 주었다.

식욕이 없어 미역국도 넘어가지 않았다. 영양부족으로 젖이 나오지 않았다. 분유 살 돈도 없었다. 애기 내복 살 돈도 없었다. 연탄도 없었다. 쌀도 없었다. 시집에서 연탄과 쌀을 사 줬다. 친정엄마가 내복을 사줬다. 남편 회사 직원이 분유를 사 가지고 왔다.

돈이 될 것은 결혼반지였다. 나는 몸조리 중이어서 남편한테 팔아가지고 오라 했다. 남편은 그날 밤 안 들어왔다. 결혼반지 판돈으로 반은 도박을 하고 반은 날 갖다 줬다.


두 번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첫아이를 낳고 7년 만에 어쩌다 임신이 되었다. 시집에서 일산에 아파트를 분양 받아줬고 남편은 그런대로 도박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때였다. 그리고 첫 아이가 외롭다고 동생을 낳아달라고 할 때였고, 시기와 여건이 맞아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둘째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일산신도시로 입주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 갖게 되는 내 집이었다. 결혼 전에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내 방을 갖아 본 적이 없으니...감격해서 몇 달 동안은 구름위에 떠 있었다. 11층이라서 하늘만 보였다. 나는 두둥실 흰 구름이었다.


앞 베란다에 꽃잔치를 벌려 놓았다. 바이올렛 한상자를 사서 창가에 쫄로리 놓았다. 하자보수를 하러 온 사람이나 동네 아줌마들이 예쁜 집이라며 구경하는 집이 되었다. 속치마같이 하늘거리는 커튼을 달았다. 커튼이 예쁘다고 옆옆집에서 똑같을 걸 맞춰서 달았지만 우리 집같이 분위기 있지 않았다.

두 아이가 어지르는 족족 종일 쓸고 닦았다. 창문에 손자국 하나 없었다. 애기를 키우면서 냉장고엔 포기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는데 당신은 살림을 참 잘해, 하면서 칭찬해 주었다. 그러면서 집순이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


입주한지 한동안은 일찍 들어올 때도 많았는데 차츰차츰 늦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안 들어오던 날 새벽녘에 회사직원 안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 남편과 직원들 몇 명이 허구한 날 화투를 치고 있다고 했다.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해서 믿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마누라는 도망가고 없다고 해도 자식은 고아원에 보낸다 해도 도박하고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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