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과자의 하소연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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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폭력과 마약 등의 협의로 5년간을 복역하다가 지난 11월 14일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입니다. 첫 번째 편지에 이어 두 번째 편지를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은 격려를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고 부끄럽지만 기왕지사 저희 부끄러운 과거를 밝힌 이상 좀 더 제가 처해진 입장을 상세하게 밝혀 사회로부터 작으나마 따뜻한 온정을 받고 자 하는 심정 때 문 이랍니다.
아직도 저의 사연을 접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자료를 보충해서 글을 올립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자유의 영역 안에서 불안전한 가치관을 정화하고 새롭고 참된 자아를 찾아 가기위해 재생의 날개 짓을 퍼 득이며 깊은 성찰을 하는 과정에 궤도이탈을 수정하고
건강하고 바른 인생관을 정립하여 출소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우울증에 걸려 출소한 저는 추후 치료 경력이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하였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족을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다시금 우뚝 설수 있다는 생각에서 즉시 신경정신과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병원을 가서 상담을 하던 중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길거리에 있는 모든 건물과 나무와. 하늘이 제 쪽을 향해 쓰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을 나서니 비가 쏟아 졌고 그 비를 맞고 집에 걸어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회색빛으로 덧칠해진 하늘을 바라보면 운명이 멈추는 날까지 새롭고 참다운 길을 갈 것이라 다짐하며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진료 결과를 들은 아내는 저의 손을 꼭 잡으며 우울증은 완치가 가능하니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연습이 허용되지 않은 50의 나이에 출소해보니 해체의 위기까지 내몰렸던 가족들은 단칸방에서. 가슴 저리도록 가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지독한 후회와 자책감에 젖어 하룻밤을 깊은 한숨으로 지새운 저는 자유를 찾기 바로 전날 어떠한 힘겨움이 닥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근본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부려서 가난 속에 놓인 가정을 살만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겠다고 했던 굳은 각오를 되새기며 그 다음 날부터 담배와 술을 멀리 한 채 워킹광고라는 아이템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하고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사업에 매진해왔습니다. A3 광고판을 제작해서 출 퇴근 시간에 지상과 지하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려고 하니 처음에는 그런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은 넥타이를 메 고 양복을 입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광고판을 메고 돌아다니니까. 미친놈이라고 욕을 내뱉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우울하기도 하였지만 나중엔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한 생각이 들 정도로 뻔뻔해졌으며 내가 이렇게 부지런히 함으로서 내 가정의 행복이 쑥 쑥 자란다고 생각하여 물건 파는 장사꾼처럼 지하철내부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심지어는 지하철 안에서 춤을 추며 광고를 했고 종로 3가 거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정말 워낙 자본이 없이 출발을 했으나 비상구 없는 고난은 없고 세상은 노력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는 다는 천리를 마음속에 새기며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언젠가 제 아들과 딸을 데리고 광고판을 멘 채 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오르는 도중 사람들을 마주치면 제가 자. 워킹광고가 나왔습니다. 워킹광고가 나왔습니
다. 라고 소리치면 아들과 딸이 얼굴을 붉혔으나 산에서 내려 올 때 는 제가 자. 워킹 광고 입니다.라고 선창을 하면 뒤를 이어 아들과 딸이 자. 워킹광고가 나왔습니다.
라고 후창을 하며 못난 아버지를 열심 히 응원해 주었습니다.
사회로부터 지탄받던 저같이 불안전하고 못난 사람이 아이들의 재롱을 바라보고 그들의 손과 몸을 만질 수 있는 일은 제. 일생을 통 털어 너무도 커다란 환희였고 행복이었으며 그런 저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뼈 속 깊이 깨닫는 순간 이었습니다.
아빠 우리 집은 언제 이사해? 우리 집은 왜 가난해? 아빠 들어 올 때 맛있는 거 사 와 !아빠 미국에서 돈 벌어온다고 했잖아 그런데 돈 벌어 오지 않았어? 라고 말 하는 아이들에게 얼굴을 붉히기만 하고 그 작은 소원을 당장은 들어 줄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아빠가 너희들 공부방도 마련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 주마 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다짐 했습니다.저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에 매 달렸습니다. 관련된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 진입에 필요한 영업 전략까지 마친 다음 하루 여섯 시간씩 시장조사를 마치 던 날 영어의 생활을 하는 바람에 장기간 걷지 않다가 갑자기 많이 걸어 다녔기 때문인지 발가락 과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고 그렇게 터진 물집이 흘러 신발밑창을 혼건 하게 적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재생의 열정과 노력은 컸지만 워낙 자본이 없이 시작을 했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중간에 사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고 야 말았습니다.
출소 후. 정말 양심껏 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보조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시행착오도 겪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무엇인가 다시 일을 찾을 것이지만 아이들의 기대가 컸던 일을 결과도 없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보통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 가 되고 싶었던 저의 꿈은 가슴속에서 만 메아리쳐 울려 퍼졌습니다.
다른 애들 보다 뒤떨어진 장애 딸을 병원에 보내 특수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마져도 중단해야 하는 가슴 아픈 현실에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마음에 창업 지원 센 타에 문을 두드렸지만 신용이 불량이라 대출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협력업체에 빛 도 많이 진 상태였고 어려 울 때 도움을 준 협력업체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책을 해줄 수 도 없으니 이만저만 난감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책을 팔아서라도 주변 빛을 값 고. 다시금 가족에게 희망을 안겨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판 등록을 마치고 어렵사리 주변의 도움을 받아 전혀 경험이 없는 출판시장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준비한 원고를 아들과 함께 정리해서 수용 생활 때 일기 형식으로 썼던 사유 탐방의 글 ( 제목. 담장 안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분신자살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생을 다룬 자전 소설 (제목. 어머니와 김장김치) 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고도 할수 없는 처지이고 영업사원도 없는 상태에다 신생 출판사다보니 영업을 하는데 보통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았고 책은 몇 권 판매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접 몸으로 광고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자전거에 리어커를 매달고 광고물을 부착하여 하루 종일 친형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거릴 누비고 다녔습니다.
또 한 마네킹 양손에 책을 붙여 인사동 거리 중간에 세워 놓고 이색적인 광고를 하였으나 사람들은 그 광고물을 보고 특이하다고 하며 사진은 수천 장 찍어 갔지만 책 구매와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박스를 머리에 쓰고 종로거릴 걸어 다니기도 했으나 이 또한 결과는 신통치가 않았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출판 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외면하고 워낙 책을 사보지 않기 때문이라도 했습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너무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을 외부의 조건에서 찾기보다 제자신의 내부에서 찾기 때문에 충분히 지금의 고난을 이겨 낼 수가 있다고 자부 합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힘든 과정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 그래도 저는 잃어버린 가정을 다시 찾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 희망의 불을 앞으로 영원히 꺼지 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사회에 출소하여 바쳐진 시간과 노력이 매우 정당한 일이었고 보람찬 선택 이 었 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연을 올린 이후 ,여러분께서 격려의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1004라는 독자 분은 저를 위해 매일 기도 해 주신다고 했으며 여러 분이 책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격려와 홍보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네이버. 다음 .엠파스 .세이 등 포털사이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오며,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격려와 위로가 헛되지 않도록 더욱더 분발하여
후회 없이 남은 인생의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며
가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지난 생애 지었던 죄를 씻고
앞만 보고 달려가겠습니다.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것에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과정의 시간을 성실하게 채워 나갈 것입니다.
과거 있는 사람도 충분히 개과천선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 날수
있다는 것을 제가 사회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받은 사랑은 훗날 저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더 많이 돌려 드리겠습니다.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 자식에게 약속을 지키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지금의 어려운 실정을 사회에 알리게 된 너무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손을 내 민 점.
어렵다고 호소한 점.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하며 이만 두 번째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자작시 한편을 남기며 이만 줄입니다.
제목 인생
머문 자가 있었던 가
남겨진 자가 있었던 가
부질없이 머문다 하지 말고
머물 것처럼 안주 하지 마라
지금 그 자리인들 다시 올수 있을소냐
그 자리도 떠나가고
내일 당도할 자리도 떠나간다.
머문 모든 것이 떠나고
가진 모든 것이 다 놓여진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인생
지나친 탐욕으로 말뚝 박지 말고
남도 나도
소문나게 미워하지 마라
매일 떠나고 있는
이것은 인생이다
2005년 3월 14일
2007년 7월 21일 이찬 석 올림 010 ㅡ 2460ㅡ 8817 lcs246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