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접한 며칠이 얼마나 버거웠는지 금요일 저녁이 되니
긴장감이 풀리며 몸은 천근만근으로 축 쳐져버렸다.
지난 주 언제쯤(점점 어제와 그제도 헷갈린다. 이 증상이 치매는 아닐지...
날도 악화되는(?)되는 나의 정신상태 걱정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의 실장이(원장 사모님)토요일 쯤 만나서 점심을 먹자는 제의가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토요일 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전화가 없었다. 피곤한 마음에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간만(며칠 일하고 이런 표현이 쑥스럽다.)에 푹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주말을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되어 보리라...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따르릉... 따르릉,,,’
잠결에 전화를 받은 것 같다.
“아빈이 어머님...주무셨어요?”
밤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여기 뉴스터디 학원이에요. 주무시는데 깨웠나 봐요...”
“아!!! 아니에요. 아직 안 잤어요...”
“제가 정신이 워낙 좋아서 낮에 연락을 드린다는 것이 이 일 저일
정신이 없다 보니까 이제야 생각나서 연락을 하게 됐네요.“
“네...연락이 없으셔서 약속이 취소가 됐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정해졌나요?“
“네, 내일 2시쯤 우리은행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하던 시간인데요.”
“호호호... 그래요?...”
잠시 얼마간의 수다가 이어진 뒤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실장과 나는 아빈이가 학원을 바꾼 뒤 알게 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우리 둘은 한 계기로 인해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만나서
급격히 친분을 쌓은 사이가 되었다.
4달 전 쯤, 아이들의 학원비 낼 돈이 빠듯하여
학원의 안살림을 맡아보는 실장에게 전화상으로 당분간 몇 달만
학원비 10만원을 좀 줄여 주십사하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신 안 되면 말고, 라는 덤덤하지만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당당히도 말했던 것 같다.
실장은 약간 당황한 듯한 말투로 약간 뜸을 들이더니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원장님과 집에서 상의를 하고나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하더라도 원장님은 분명, 계속은 불가능하고
몇 개월이라는 기간을 단정 지어 주실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었다.
그 말에 나는,
“그래 주세요. 아이들 교육비로 이렇게 구차한 부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생활이 어렵다고 아이들의 교육을
불규칙하게 가르칠 수도 없고 해서 어렵게 말씀드리는 건데...이건 제 사정이구요,
학원에서 무리라고 싶으면 그냥 확실하게 그렇게 못한다고 말씀해 주세요.
제 부탁을 들어주시더라도, 염치 불구하지만 제 아이들을 비롯해서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입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내 말에 알았다며 저녁 늦게라도 연락을 주겠다더니 실장은 끝내 전화를 주지 않았다.
다음 날, 다행이도 남편이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의 생활비를 주었다.
나는 지금껏 한번도 아이들의 교육비 내는 날을 어긴 적이 없었다.
교육비와 급식비는 아이들의 사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돈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그것들부터 챙겨놓곤 했다.
그런 내가 실장에게 10만원의 교육비 삭감을 부탁했던 거였다.
전날 치부처럼 부끄러운 금전적인 부탁을 드렸던 나였지만
당장 생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실장에게 부탁했던 말과 상관없이
교육비 전액을 담은 봉투를 들고 학원으로 찾아 갔다.
실장은 나를 보더니 깜빡 잊었던 것이 생각난 듯,
“어머, 제가 어제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드리지 못했어요. 원장님께서 한 3개월 정도는
그렇게 내시라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연장을 하더라도...그렇게 말씀드리라고 하셨어요.“
라고 하는 거다.
나는 원금이 모두 들어있는 교육비 봉투를 실장에게 건네며,
“여기 원금을 모두 담았습니다. 남편이 오늘 생활비를 좀 주더라구요. 자존심 다 버리고 말씀드리는데 그 동안 아이들의 교육비를 하루도 늦지 않게 냈던 것은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비자금에서 냈던 거였어요. 남아있는 비자금이 좀 부족하여서 부탁말씀을 드렸던 건데, 다행이 남편이 돈을 조금 가져왔네요. 다른 곳에서 생활비를 더 줄이기로 하고 이번에는 돈을 모두 담았어요.” 라고 했다.
내말에 실장이 좀 당황한 듯 하더니 조심스럽게,
“...그래도...당분간 깎아 드리기로 한 거니까, 다 넣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했다.
“아니요, 내가 이 돈 깎아서 부자 되려고 한 것도 아니구요. 나도 아이들 당당하게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정 그런 마음이시라면 나중에 제가 또 다시 자존심을 버리고
부탁드리는 날이 있다면... 그때 좀 봐주세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요.“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몇 달을 나는 아이들의 교육비 원금을 어떻게든 제 날짜에 모두 납부하였다.
그리고 지난달인 6월, 교육비를 내던 날이었다.
내게 있어서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고픈 보릿고개인 요즘,
또 다시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내동댕이치는 부탁을 드리러 학원엘 들르게 되었다.
한달에 한 번은 아이들의 수업태도도 들을 겸, 직접 들르던 나였기에 실장은 그날도
평소와 같이 차 한 잔을 건네며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서두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할 지경이었다.
그날따라 사무실로 들어오는 선생님과 아이들은 또 왜 그렇게도 많은지... 때를 잡기 또한 쉽지 않았다.
20여분이 조금 안됐을까?...그 시간이 내게는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내 등으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때다 싶었을 때, 나는 조금은 얇아진 교육비봉투를 실장에게 내밀었다.
“실장님, 이 봉투에 돈이 십만원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어떻게 또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먼저도 말씀 드렸듯이 곤란하다면 지금 말씀해 주세요.
엄마의 욕심이 아이들은 가르쳐야 되겠고...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심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큽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간다면 차라리 가르치지 않으려구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무려 3시간을 훌쩍 지나가버렸다.
실장이 말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님을 겪어 보면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존심이 강하셔서 제가 안된다고 하면 안 가르치실 거라는 것도 알구요. 제가 무료로 가르치겠다고 해도 어머님께서 용납 못하실 것 알구요...제가 원장님이랑 모두에게 비밀로 할 테니까, 돈에 대해서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아이들을 보내세요.”라고...
어쨌든 나는 지난 달 원비를 10만원이나 덜 냈다.
실장이 내게 데이트신청(?)을 여러 번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미루곤 했는데
어느 날은 날짜를 꼭 잡자며 어디서 만날지를 정해달라고 강요를 했다.
그래서 만난 곳이 올림픽 공원 평화의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또 우리는 많은 수다를 떨었다.
6살의 나이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다.
실장이 내게 자신도 지난 몇 년 전까지는 살기가 퍽퍽했다며 그간의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시어머님과의 마찰, 생활이 어려워 나라에서 25만원을 지원받으며 4명이 한달을 살아야 했던 생활들까지... 지금의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힘겨웠을 지난날을 눈물까지 글썽이며 쏟아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치부를 모두 들어내 보인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자주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은 우리 둘만의 만남이 아니라 한 엄마가 더 참석했던 자리였다.
내게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을 소개시켜 준, 큰아이들끼리 같은 유치원을 졸업했다는
인연으로 알게 되어 횟수로 8년째 알고 지내는 한정이 엄마.
한정이 엄마는 아이를 7년째 한 학원을 보내고 있지만 실장과 한번도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실장이 우리 둘의 만남을 한정이 엄마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에 나는 그러마하고 지금껏 약속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동촌’이라는 전통 한식당에서 오후 2시쯤 만났다.
부대찌게와 파전, 그리고 막걸리까지 시켜놓고 대 낮부터 술 마셔도 되느냐는 걱정을 하며
입으로 수다 떨랴, 먹으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대낮 임에도 불구하고 옆 자리에도 삼삼오오 자리한 여자들이 소주를 벌써 몇 병째
빈병을 만들어 놓고 남편 흉, 아이들 걱정에 대해서 그동안 묶어 놓은 삶의 무게들을 하나씩 풀어놓고 있었다.
술이 한잔씩 들어가자 우리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고 옆 자리에서도 그에 뒤질세라
목청 높인 수다들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곤 서로에게 결례가 된 듯하여 눈빛으로 이해를 바라는 눈빛을 전하기도 하였다.
남자들이 대낮에 식당을 차지하고 앉아서 술 마시며 수다 떠는 아줌마들을 보면 세상 말세라고들 한다던데...
모르는 소리...
여자들이 묶은 쳇 증을 그런 식으로라도 풀 고 있으니 옷 풀어 헤치며 머리에 꽃 꽂고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감히 그런 말을 못하리라...
아줌마들,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우리 아줌마들만이 알겠지...
힘겨운 세상... 용감한 아줌마로 길이길이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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