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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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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차려 준 밥상.


BY 낸시 2007-07-10

\"여보, 얼른 들어 와. 미역국하고 상 차려 놨어.\"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는 일부러 채송화 서 너 가지를 꺾어 땅에 묻고 손에 낀 장갑을 천천히 벗어낸 후 들어간다.

\"어, 이 상은 어디서 찾았지?\"

남편은 식탁이 아닌 조그만 찻상에 아침을 차려 둔 것이다.

그 조그만 찻상이 있다는 것마저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밥 두 공기, 미역국 두 그릇, 파란 멜론 한 접시, 김치 넣고 끓인 청국장, 깻잎 김치, 민들레 김치, 살짝 구운 멸치와 고추장이 함께 한 접시. 상이 가득하다.

\"제법 그럴 듯 한데... 나보다 상 차려 내는 솜씨가 나은 것 같아...\"

속이 빤히 보이는 내 칭찬에 남편은 너그럽다.

\"식탁보다 정겹고 더 좋지?\"

\"그러게 말야, 얼른 먹자. 와, 맛있겠다.\"

조그만 찻상을 마주하고 둘이 앉아 밥을 먹었다.

\"이렇게 앉으니 가까워서 좋다.\"

\"자, 가깝게 앉았으니 뽀뽀도 한번 하고...\"

이렇게 닭살 부부가 되어...

 

남편은 오남매 맏이다.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둔 시어머니는 네번 째로 딸을 낳을 때 섭섭하셨단다.

그래서 아들들은 집안일에 손끝도 까딱하지 않게 하시고 딸만 부려먹으셨다지...

울시누 내게 그랬다.

\"언니, 난 엄마에게 정이 없어. 하두 날 부려먹어서...\"

울 남편과 시동생들 부엌에 들어가면 행여 남자의 상징을 잃어버릴까봐 절대 부엌에 안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맏이였던 남편은 유독 심해 동생들이 행여 부엌에 들었가면 야단을 했단다.

첫 애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해 체중이 9킬로가 줄었지만 남편은 이불 속에 누워 꼼짝 않고  아침상을 기다렸다.

바보 같은 나는 맞벌이 부부를 하면서도 아침상 차려내는 것은 당연히 여자가 하는 일인 줄만 알았고...

같은 초등학교 한 반에서 공부한 사이였지만 남편은 반말을 나는 경어를 꼬박꼬박 사용하였다.

무게 잡기 좋아하는 남편은 나란히 앉아 티비보는 일도 남사스럽다고 내가 옆에 가면 자리를 피하곤 하였지...ㅎㅎㅎ

그런 남편과 여편이 세상이 두 번 하고 반이 바뀔 만큼의 세월을 같이 살았다.

 

뒤돌아 눈물을 삼킨 적이 몇 번이었을까...

이혼하고 싶은 순간은 몇 번이었을까...

그만 삶의 끈을 놓고 싶은 순간은 몇 번이었을까...

 

그런데 남편이 차려 준 밥상을 마주하고 아침을 먹고 나니,

콧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이런 생각이 든다.

\'....참고 살길 잘 했지...암,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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