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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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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지라도...(12)


BY 개망초꽃 2007-06-11

 

이 곳 유리문을 처음 열 때는 겨울옷에 목도리를 두르고 왔는데

지금은 반팔에 팔랑팔랑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닙니다.


첫 출근을 할 때는 잔디밭이 바짝 말라 있더니

지금은 개망초꽃이 잔뜩 달라붙어  생동감이 일렁거립니다.

개망초꽃은 대체적으로 흰색인데 올 해 핀 꽃은 연보라색이 많이 보입니다.

점심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잔디밭 정자에 앉아 개망초꽃과 담소를 나눕니다.


도서관 사무실엔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직원 한 분이 임신을 해서 퇴사를 하고 미혼인 직원이 들어왔습니다.

센터장님은 아들 쌍둥이를 낳고 삼 개월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하셨습니다.

8년 동안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어떤 직원은

선을 봐서 다시 연애의 출발점에 서 있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어떤 일에서든 계절이 바뀌듯 보낼 건 보내고,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서서히 받아들이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저 개인적은 변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일본으로 유학중이고 잘 적응하고 있다는 편지와

한달에 두어 번 전화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아이는 키가 부쩍 커서 어딜 데리고 가면

‘하늘만큼 땅만큼’ 연속극에 나오는 정애리 아들과 똑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친아들 말고 입양한 아들이라나…….

전 그 연속극을 안 봐서 내용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답니다.

디카를 준비해서 토요일엔 산이나 들로 들꽃 보러 다니며 사진을 찍어 대고 있는데,

실력이 없어서 찍어대기만 하지 예쁘게 올리지는 못하고 있답니다.

야생화 사이트에 들어가서 꽃이름을 외우려 노력 하고 있고요.

몇 년 전만 해도 서너 번만 보면 외워지더니 이제는 열 번을 봐도 잘 안 외워지네요.

일요일엔 호수공원으로 꽃순이를 실고, 아들과 자전거를 타러 갑니다.

잔디밭에 앉아 간식과 음료수를 마시며 꽃순이가 신나게 뛰어 다니는 모습에

우린 까드득 웃고, 푸하하 허벌나게 웃어재끼고 있답니다.

자전거 도로에 버찌가 까맣게 익어서 종이컵으로 한가득 따 와서 먹었지요.

쌉쓰름하니 특별한 맛이 나는데,

과일 좋아하는 꽃순이는 쌉쓰름한 맛이 싫은지 버찌를 주면 저 멀리 도망을 갑니다.

 

요즘은 책 수선을 하고 있습니다.

영리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헌 책들이 많아서

제가 솔선수범해서 책을 수선한다고 했습니다.

수선 자격증은 없고, 책 수리 경험도 별로 없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들춰가며 책 붙이는 전용 스티커로 붙여야 해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일이랍니다.

이 천권쯤 된다니까 내가 이 곳으로 출근하는 동안에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간 나는 대로 할 겁니다.

어른들 입장에선 헌 책이 껄끄럽겠지만

어린 아이들은 헌 책이든 새 책이든 상관이 없답니다.

자기 맘에 들어오면 누더기 같은 책도 열 번도 더 보고 또 보고하니까요.

어른들 중에는 새 것이 신선해서 또는 유행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배워할 좋은 점이지요.



전 딱하지 않습니다.

저를 잘 아는 친지들이나 친구들은 봄이 되면 새들도 짝을 이루고,

꽃들도 꽃가루를 날리고 받아먹는데 넌 혼자 어쩌냐, 하네요.

솔로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재혼을 하니 더 안쓰러워 보이나 봐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제가 딱해 보이나 봐요.

저는 잘 견디고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한데 말이예요.

전 가진 게 많아요.

딸도 있고 아들도 있고, 취미도 신나게 즐기고(들꽃보기와 글쓰기),

직장 다닐 능력과(?)건강이 허락되고, 옆에는 언제나 지켜주는 엄마도 있고,

산에 같이 다닐 산 친구들도 있거든요.

가끔씩은 쌍쌍이 붙어 다니는 걸 보면 외롭긴 하지만 밤이 길거나 무섭지 않아요.

저랑 꼭 붙어 자는 꽃순이가 있으니까요.


내게 인연이 다가온다면 바람처럼 걸리지 않게, 강물 흐르듯 바라볼 겁니다.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구름이 산을 넘듯, 계절이 바뀌듯 욕심 없이 살거라 말합니다.

이렇듯 사과나무 도서관을 가고오는 계절과 함께 육개월째 다니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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