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이란 세월이 길고도 지루했고 또한 편치가 않았습니다.
누구랑 맞선다는것은 미움받는 상대보다 더 힘들다는것을
깨우쳤던 반년 세월 이였습니다.
제가 쓴글중 <고백>글을 안보신분들은 보시고 이글을 읽어주시면
이해가 조금 은 되실겝니다.
작년 설부터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작년 설..
설며칠을 남겨두고 일찍 장본것을 봐서 그때그때 시댁에 실어나르고
시어머니께 받아온 떡쌀을 씻고 불려서 떡국을 빼서 설전날
시댁을 갔습니다.
천성이 사소한것도 입을 떼는데다가 퍼뜩 하면 쪄렁쪄렁 고함부터 치는 어머니의 성격상
떡국이 그날 트집거리가 되었지요
“아니..떡살을 닷대나 주었는데 와 이래작노?”
“닷대라니요..넉대 안주셨능교?”
“야가~야가~모라켔샀노!난 분명 닷대 줬다!”
어머니의 목청이 높아지자 내심장이 펄렁거리며 펌프질이 빨라졌습니다.
분명히 넉대주어서 고스란히 방앗간에가서 떡국을 빼왔건만
떡방앗간에서 한 대를 떼먹었거나 아님 내가 닷대를 넉대라 하는바람에
쌀 한 대값을 날렸다고 다들 모인자리에서 주방을 떠나가라
늘하듯이 어머니는 고함을 치기 시작 했습니다.
내 나이 삼십대라면 눈물 글썽이며“ 그게 아닌데요..”하며 머리 조아릴텐데.
내가 누구인가..갱년기 초기증세가 오면서 중성이 되어가는
막강한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아지매가 아닌가.
시어머니의 고함소리 끝에 내가 맞 받아쳤지요
“연세가 들면..이제는 나아질데가 안됐능교~!언제까지 날마다 고함만 치고 사실건데요~!”
내 기억으로는 고함치는 시어머니 앞에서 정면 도전은 처음 이였을 것입니다.
맏 며느리에 강경 대응에 당황한 어머니는 한발 물러나고 안방에 있던 남편은
수증기처럼 증발했는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지요
대신 막내시동생이 주방으로 들어와서 시어머니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시 어머니를 나무란 작년 설 전날
그때 동서들은 의외에 나의 강경대응에 놀라서
전 부치다가 혹은 생선을 굽다가 “헉..우리 형님이 해냈어!!”
하는 표정으로 하던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의의라는듯 혹은 멍하니 쳐다보는 동서들에게
“뭘봐~~나라고 성질 없냐..~우씨~~”
그리고 어제의 나의 강경함인지 무사히 설을 쇠고 중간에 각종 집안 행사를 치르고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늘 하던대로 명절장을 봐서 시댁을 가면서
이번 추석은 두 노인네 아무것도 아닌걸로 트집 잡아서 시끄럽게 안하고
조용히 넘어가주기를 바라면서 시댁으로 향했습니다.
사 동서가 화기애애 송편을 빗고 매끄럽게 일마무리하고 추석날 아침
제사상 차리는데서 일이 터졌습니다.
안그래도 어제 송편 빗어 쪄서 참기름 발라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놓은걸 보신
어머니가 송편을 석대나 했다고<명색이 종갓집인데 전혀 많은 양이 않음> 손이 커서 많이 했느니 하는 뒷소리가 들려서 심기가 약간 상해있었는데
추석날 아침에 일이 터졌습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맏며느리 코앞에서 시아버님과 어머니가 양사이드에서
몰아 치는데 울컥 속이 끓어 올랐습니다
참고로 우리집은 밤도 며느리가 치고 제삿상도 내가 차리고
남자들은 상 차려놓으면 절만 하면 끝.입니다
예전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아닌 중성이 되버린 나는 시부모님들에 노골적인 트집에
참자 참자 요순간만 참으면 된다아이가..하면서 뒤를 돌아다보니
남편과 비롯한 시동생 도합 네명이 안방에서 tv만 보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비롯한 시동생들은 말 많고 탈 많은 두 노인네들 한테 정신 없이 당하는 나를
딴 나라 사람 보듯 하면서 tv를 보는데 시동생들은 제껴두고
방관자인 남편이 정말로 미웠습니다.
하여
속 섞히는 사람 따로 있고 속 썩는사람 따로 있냐
역할좀 바꿔보자 심보로
제사상을 반쯤 차리다가 나는 벌떡 일어나 차단스에 있던 빽과 차키를
달랑 들고 시댁을 나와 팝콘 튀듯 톡 .튀어 버렸습니다.
종갓집 종부가 제사상 차리다 말고 사라진 추석날 아침 ..
체면 구겨진 시 부모님은 이를 꼭꼭 물면서 분을 삭혔고.
명절 제사 지내로온 집안 어른들이나 종시숙 종 시동생들은 수십년
늘 그 자리에 있던 내가 없으니 나의 자리가 크게 보였나봅니다..
종시숙님들과 종시동생들은 “어..이집 대빵이 없네..형수는요?지수씬요?”찾는통에
동서들이“행님이 .마이 아프셔서예..”하며 사지 멀쩡한 나를 중환자로 만들었다 했습니다.
전자렌지에 팝콘 처럼 튀어 시댁을 나온 나는 금방 후회를 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년 겪었거늘 이제꺼 잘 넘어오다가
애긍..참을걸..후회를 하며 차안에서 시댁담을 바라보며
다시가?..말어?한 삼십분 갈등을 했지요.
갈등하는 삼십분동안 시댁으로 속속 들어가는 집안 어른들
종 시숙들 종 시동생들이 우르르 들어가고
뺀칼 다시 넣자니 타이밍이 안 맞는듯 하여 시동을 걸고
찜질방으로 향했습니다.
카운터 아지매보기 쑥스럽지만 찜질방 표를 끊고는
찜질방에 벌렁 누워잇자니
“야.복달엄마..너 마이 컸네..”누군가 그러는것 같아서 웃음이 픽 나오더군요
찜질방에 나혼자 달랑 누워있자니..
삐리리·~삐리리~손폰이 난리가 났습니다
방관자 남편..우리 복달이 .막내 시동생 .동서들..시댁 번호가 뜬 전화..소리에
썰렁한 찜질방은 음악 소리로 메아리가 쳤고 끝내 나는 전화를 받지를 않았지요.
제사를 지내는 한시간동안 더 이상 손폰은 울리지 않았고 한 시간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복달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는 전화와 문자를..받았지요
“왜..임마~?”
“하하~엄마 어디야?”
“엄마 ..튀었다 ..와 ?에밀 찾지말라..아울러 여기는 .파라다이스 찜질방이다...”
찾지말라 하면서 위치를 가르켜주는 나의 모순된 제스처는 남편이 명절 쇤후
나를 찾아서 오라는 깊은 뜻이 깔린 의도 였고
집으로 안가고 찜질방으로 간것은 사실 남편이 겁이 나서였습니다
집에 가면 명절날 튄 발칙한 나를 남편이 가만 놔둘리는 없고
한바탕 붙는것은 불보듯 뻔한 나의 선견지명이 있기에
사태를 축소시키고자 애용?하는 파라다이스로 핸들을 돌린거였지요
만인이 보는 찜질방에서 만나면 주위 눈이있어
눈 싸움만 하고 말게 아니던가 ..해서지요
복달이 전화를 끈고 다시 누워있자니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예전 사촌 큰 형님이 불공평한 재산 분배로 불만을 품고 명절날 빠졌을때
내가 동서들한테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부모가 경우에 없이 그랬을 지라도 며느리된 도리를 해야지..”했겄만
내가 감히 그 도리를 져버릴줄이야..
와중에 동서들 전화가 다시 걸려왔습니다 애써 밝은척
“하이.!.여보쇼..”
“형님..형님 없이 손님 치르는데 바빠 죽는줄 알았어요..
두노인네들 형님 찾아오라고 날리 났심더..”
다시 첫째 동서가 전화기 체인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첫째 동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고 형님 참말로.하하~~주방에서 보니까 형님이 상 차리다말고 까만 빽을 달랑 들고 나가는기라..상 차리다가 어디가신느공 했드만 영영 안 나타 나시데예..하하~”
첫째 동서 목소리 넘어로 둘째 동서는
“형님 저 지금 겁이 나서 다리가 덜덜 떨려요..저이제 형님한테 잘할께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수쓰는 동서가
와 그리 귀엽던지요.
“이번 기회에 노인네들 기좀 꺽어야겠다..모일때마다 집안을 흔들어 놓는데 이젠 안된다”
후 폭풍을 겁을 내는 둘째 동서와는 달리 며느리중 가장 많은 시달림을 당한 첫째동서는
어머니 기세 꺽을 사람은 아주버님도 시동생도 아닌 맏며느리인 형님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명절날 찜질방에 홀로 있자니 와그리 시간이 더디던지..
나의 위치를 알렸건만 저녁 열시가 되어도 남편은 나를 찾아오지를 않고
즈이 아버지랑 같이 집으로 바로 왔다는 복달이에 문자를 받자 ,한번은 터질일..
부딪치기로 하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터덜터널 집으로 가서
비장하게 전자키를 꼭꼭 눌렀습니다.
뿅뿅뿅..탈칵..현관문이 열리고 환한 거실에 복달이가 기가 찬듯 웃고 서있었고
남편은 현관옆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젖은머리 흐트려 트리고 귀신같은 나와 딱 마주 쳤지 뭽니까.
순간!
다음에..
<6개월동안 겪은일을 3편까지 쓸 예정입니다.결말을 보시고 평해주시고 제글본 새댁들은 절대 따라 하시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