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 보다 늦은 봄이다.
이제 겨우 산수유가 힘겹게 폈다.
하지만 나는 벌써 작은 야산에 산수유 꽃망울을 보기 위해
다섯 번의 발길을 했다.
어떤 사물을 보고도 그냥 보이는 그 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였음 참,좋겠다.
너무 가여워 하지도 말고 너무 예뻐 하지도 말고 너무 감격해
하지도 말고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쓸데없이 겪는
고통이 가끔은 거추장 스럽기도 하다.
햇살 좋은 일요일 오늘은 스스로 외롭지 말자고 커튼을 모두
내리고 소파에 게으름 피울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창 가까운 곳까지 날아와 비비거리는 봄새의 울음과
봄새의 울음보다 더 부드러운 눈부신 햇살에 좀이 쑤셔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옷도 가볍게 입어본다.
아직은 춥다 그래도 어딘가로 가고싶어 나선곳이 기껏 남편이
있는 사무실이다.
한 명의 직원도 출근하지 않은 썰렁한 사무실에 남편은 오늘도
마냥 바쁘다.
앞뒤로 다니며 청소도 해야하고 강아지 밥도 줘야하고 오리 알도
줍고 오리밥도 주고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장비는 점검도 한다.
따스한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행복해? 굳이 일요일까지 출근해서 이 고생이야.?\"
\"집에 있으면 뭣해 난 이게 좋은데...\"
결혼 21년째 난 남편과 한번도 여행가본적 없다.
그런걸 불평 해 본 적도 없다.
불평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감성이 잡초처럼 자라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을 때
난 누군가 특별한 상대도 없이 울음이 난다.
남편을 향한 것도 아니다.
남편을 이해한다.
함께 동행만 못해줄 뿐이지 내가 원하는 걸 막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적극적인 후원자다.
하지만 어디든 혼자라는 외로움은 마음 한 구석 허전함과 2프로 부족감이
늘 나를 따라 다닌다.
바쁜 척 하는 남편을 쫒아 커피한잔 마시자며 바람부는 들판에 집에서
싸온 고운색 꿀떡과 커피를 차렸다.
겨우 떡 두 개 누가 쫒아오는지 부리나케 마시고 일어서는 남편을 향해
\"나 남자친구 하나 사귀면 안 될까.?\"
그렇게 물었다.
황당해 하며 쳐다보는 남편을 향해.
\"절대 이야기만 나눌 것이고 스킨쉽은 없을 것이고 만약 한방에서 잠잘
일이 있어도 절대 아무일 없을 자신이 있고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여서
내가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했던 봄,여름,가을,겨울 한 철에 한 번씩 만
그 계절에 제일 좋은 곳으로 날 데려다 달라고 하면 안 될까.?\"
남편이 빤히 날 바라본다.
\"난 너와 21년 결혼 생활을 했어 하지만 아직도 니가 정말 순진한 여잔지
아니면 고수여서 날 가지고 노는 건지 모르겠어.세상에 어떤 미친()이 쳐다만
보라는 여자를 만나주냐? 그 상대가 양귀비여도 클레오파트라여도 도망갈 판에
양귀비도 아닌것이 클레오파트라도 아닌것이 나 같아도 밥맛없어 도망치겠다.\"
헉~~
정말 그런건가.
마음 통하고 사람좋아 대화 상대하고 밥먹고 당신 죽어라고 가기 싫은 곳
보디가드 삼아 친구삼아 갈 수 있는 그런사람 절대 없는 걸까
남편말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있는 말이라 주섬주섬 떡 보따리를 싸서
일어섰지만 발길이 향한 곳은 집이 아니고 이제막 봄을 잉태한 작은 야산이다.
산 밑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데 봄에 흐르는 물 소리는 부드러운 봄을
닮았고 물오른 나무 사이를 호르륵 거리는 봄새의 울음도 봄을닮아 마냥
여리고 부드럽다.긴 겨울 이 많은 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직은 옷속을 파고 드는 바람이 차다.
하지만 완연한 봄이다.
봄나물들이 싱싱하게 푸르러 지천이고 노란 꽃다지도 양지쪽으로 흐드러
지게 폈다.
훅 하고 봄바람이 분다.
풀내음인지 봄내음인지 가슴 저 밑바닥 잠재운 그리움을 흔들어 깨우는
알수 없는 내음.
엉덩이로 차거운 한기가 느껴지는 봄 들판에 퍼지리고 앉아 평소 알고
지내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나보다 철이 조금더 덜난 어떤분께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흰 가재가 살고있는 맑은 물이 퐁퐁솟는 옹달샘 하나를 알고 있다면
믿으시겠는지요.?\"
잠시 후 경쾌한 메시지 알림 신호음과 함께 뜬 메시지.
\"새벽 옥토끼가 물 먹으로 온다해도 믿지요.흰 가재가 얼굴을 빤히
본다해도 믿지요.!!\"
어!!정말인데....흰 가재가 날 빤히보는 옹달샘을 정말 아는데...
옥토끼가 물 먹으로 오는 것은 못 보았지만 人토끼가 함께 물먹고 자란
것은 확실하지요.
몸을 잔뜩 움추리고 생각을 한다.
날 위해 한껏 멋부린 사람.
읽지 않은 책이지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차 안에 책 한 권쯤 슬쩍 놓아둔 사람.
서툰 솜씨로 음악이라기 보다 소음에 가까워도 날 위해 연주하나 해 주며
널 위해 준비했어.라고 말 해 줄 수 있는 사람.
혹여 추울까 옆자리 데워 앉혀주는 사람.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 물어주면 대화 상대가 많아서 산이
더 좋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버들강아지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며 들어보라는 사람.
봄 풍경속에 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부시게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람.
어디 그런 사람하나 없을까.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다.
아니 이건 또 뭔소리~~~~
어느새 쑥국새도 우네!!
여기저기서 할미소리 듣는 철부지 아줌마 일장춘몽 그만 깨시고 얼른
집에가 쑥국이나 끓이고 저녁밥이나 지으라며 차거운 봄바람이 쑥국새가
등을 밀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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