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동창회 모임을 한다고.
동창들 까페도 만들었다고. 까페에 드나들며 30여년전의 친구들의 이름을 대하며
가슴 한켠에선 알수없는 서글픈 뭔가가 오후내내 나를 짓누르고 있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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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그것은 그리움인 동시에 내겐 아픔이었다. 지금 계산해보니 중학교 졸업 후 계속 객지로 떠돌아 다녔으니 30년도 더 되었군. 시골뜨기가 기 죽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살던, 저녁이면 꺼진 연탄 아궁이앞에서 번개탄을 피우려 호호불던 그 시절. 그래도 그땐 희망이라는 무지개가 있었다. 그것이 다가가면 저 멀리로 달아나 버린다는걸 그땐 몰랐지.
지겹던 가난과 부모,형제들의 초라함이 늘 내 기운을 빼곤 했엇다. 도시의 화려함과 내가 만나는 인간들의 부유함. 화목함 또한 나를 기죽게 했었고.
이젠 그 모든걸 웃으며 옛이야기로 돌릴 수 있지만 그 부모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뜨셨지.
내 기억 속 그 작은 시골의 거리거리가 30년전의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는 탓에 몇년만에 한번씩 가보는 그 마을은 낯섬 그 자체였다. 부모라도 살아계시면 일년에 한번이라도 갈것을. 그 부모는 왜 그리 지지리도 복도 없이 일찍 가셨는지 말이야.
그러나 가위 눌린듯 꿈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곳은 늘 그 고향집이었어.
그 시절의 나와 너무나 닮은 우리딸. 욕심이 한욕심하지. 자기가 원하는것은 다 가져야 하니 말이야. 내 부모보다 자기 부모가 몇배나 훨씬 나은데도 말이야. 만족을 모르더군. 자식을 보면서 내 부모를 생각한다니까.
고향을 지키며 사는 친구들의 얘기는 가끔씩 듣지만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out of sight, out of mind) 말처럼 들을때 뿐, 또 그냥 바쁜 일상에 젖어 살아가곤 했던것 같다.
오늘 낮에 친구가 보내준 작은 인쇄물이 나를 한없이 한없이 향수에 젖게 하더군. 그리고 점점 희미해져 가물거리는 그곳에서의 학창시절이 그리워지더군.
나이 탓인가. 기 꺾이고 주눅든 중년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다. 낯선 모습이다. 이런 마음으로 보면 말이야.
저녁 공기가 싸늘하다.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 아이의 곁에서 찬바람이 불어온다.
친구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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