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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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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2003년 7월에 쓴 글입니다.)


BY 선물 2006-11-10

(2003년의 글입니다.)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는 여름손님.

오늘에야 우리 집에 머물렀던 그 여름 손님이 댁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여름손님은 어머님의 남동생 되시는 분. 즉, 나에게는 시 외숙부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어머님과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통화를 하시며 서로의 정을 나누시는 참으로 우애 깊은 남매간이시다.

3녀 2남. 그 중에서 맏이셨던 어머님과 남매 중에서는 셋째가 되시지만 장남이셨던 시 외숙부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동생들에겐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셨던 분들이시다.

남편보다도 마음으로 남동생을 더 위하셨고 아내보다도 마음으로 누님을 더 생각하시는 두 분은 내가 알기에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남매간이시다.


외숙부님은 칠순을 갓 넘기셨는데 직장을 정년퇴직 하신 뒤로도 가까운 친지분의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올해 봄 퇴직하셨으니 칠십 평생에 처음 갖게 되는 시간의 여유로움에 오히려 힘이 드셨던 것 같다.

지난 유월에 우리 집으로 누님 뵈러 오신다는 소식 듣고 나는 정말 잠깐 다녀가시는 줄로만 알았었다.

산본에서 일산. 1시간 반이면 도착되는 거리라 설마 며칠씩이나 머무르실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나에게 특별히 귀띔도 해 주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외숙부님이 오신다고 하시더니 오시기 바로 전에야 며칠 계시다 가실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본능적으로 나는 `싫다\'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남자어른 분을 며칠씩 모신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데 어쩜 그리 내 생각은 안 해주실까? 안 그래도 시부모님 모시고 나름대로 힘들게 사는 나에게 너무 배려를 안 해 주시는 것 아닌가?\'

미리 힘들 거란 생각으로 억울해하니 정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르신들 앞에서 어찌 싫은 내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하며 잠시 눈을 감고 도 닦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를 조절했었다.

`남매간의 정이 저리도 애틋하신데 내가 싫다고 내색하면 그건 도리가 아니지, 어머님의 연세도 일흔을 훌쩍 넘어 일흔 일곱 노인이시고 외숙부님조차 일흔 넘기신 분이니 앞으로 이럴 기회가 또 있기도 힘들 텐데······. 그래, 한 번만 눈 딱 감고 정성껏 잘 해 드리자. 한 번만······’

이렇게 맘을 고친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는 밝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두 분의 맘을 편하게 해 드렸었다.


외숙부님은 나에게 참으로 다정다감하게 잘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나의 변변찮은 음식솜씨에도 애썼다, 맛있다하시며 나를 편하게 해 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나도 어느새 고단함을 잊고 그래도 넉넉한 맘으로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댁으로 돌아가시는 날 나는 인사말로 또 오시라는 말씀을 드렸고 외숙부님도 그러마하고 웃음으로 답하시고 가셨다. 그리고 그건 서로가 인사치레 말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댁으로 돌아가신 외숙부님은 도착인사 때문에 전화하셨는데 어머님께 정말로 다시 오신다고 하시며 날짜까지 말씀해 주신 것이다.

17일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날 오셔서 21일 월요일까지 계시기로 일정까지 잡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한 번일 줄 알았는데······. 아무리 수월하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해도 그래도 어찌 어려움이 없고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정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집안의 다른 며느리들 집에는 한 번도 안 가시면서 왜 내 생각은 안 해주시고 그리 쉽게 생각을 하실까하는 야속함에 서운한 맘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어디 외출을 하시기 싫어하신다. 다른 며느리들 힘들게 하기 싫다는 말씀도 하신다.

나는 아하, 그래서 사람은 때로는 자기표현을 거침없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가 바보 같아 원망스러워졌다.

차라리 어머님이나 외숙부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시고 마음으로부터의 배려가 전혀 없으시다면 둘러 둘러서라도 나의 힘듦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나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계셨고 또 그 미안함이 내게도 읽히는 터라 그런 내색을 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외숙부님께선 그런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누님 옆에서 얼마간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셨던 것이다.


노년이 되면 부모형제 생각이 더 애절하다던가?

내가 헤아려 드리자면 어찌 못 헤아려드릴 것인가 만은 그래도,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억울함은 내 옹졸한 못된 마음이 떨군 것인지 나를 계속 고통스럽게 한다.

이번에는 채 도를 닦기도 전에 외숙부님은 오셨고 한여름 날씨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열을 뿜으며 부엌을 후덥지근하게 만들었다.


외숙부님이 또 한번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무르고 계신다는 것을 아신 친지 분들은 한결같이 내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님께 은근슬쩍 눈치를 주셨나 보았다.

어머님은 넌지시 내게 그런 말씀을 꺼내시며 그래도 그렇게 힘든 것은 없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눈치도 보시는 듯 하다. 그저 내 짐작일 뿐이지만······.

그러시면서 작은 외숙부님 내외분이 형님 뵈러 주말에 오신다고 하셨다는 말씀도 함께 하신다. 어머님은 보셨을까? 그 때 짜증 묻은 내 얼굴을.


주말에 오신 작은 외숙부님 내외분은 양 손에 고기 세트와 과일을 들고 오셨다.

널럴했던 냉동실에는 고기로 가득 채워진다.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작은 외숙부님이 농담 삼아 한 말씀 하신다.

\"그래도 에미가 착하니까 형님이 이렇게 계속 며칠씩이나 계실 수 있지요, 다른 며느리 같음 절대 이리 못 계시지요.\"

음식을 담아내던 나는 그냥 민망스러워지면서 맘이 불편해진다.

큰 외숙부님은 겸연쩍어 하시면서 \"00 에미야, 많이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라고 하신다.

옆에 계시던 어머님은 그런 동생이 또 안쓰러우셔서 손사래를 치시며 한 말씀 하신다.

\"니가 뭐 얻어먹으러 왔나, 뭐가 미안하노!, 안 그러냐, 에미야.\"

나는 그 말씀에서 오히려 어머님이 스스로 불편한 맘 없애시려고 애쓰시는 맘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맘 읽으니 좀은 여유로워진다.

\"그럼요. 뭐든 해 드리면 잘 드시니 힘이 든 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 하시지 마세요. 외숙부님.\"나는 듣기 좋아하실 말씀을 술술 잘도 한다.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니지는 아시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도 이런 말씀정도는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답니다.입술에 침 바르지 않아도요.\'


5박6일의 누님과의 생활을 마치신 외숙부님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시기 위해서 전철을 타러 가신다.

이것저것 싸주고 싶은 누이의 마음과는 달리 허리 불편하신 외숙부님은 짐이 싫다하시면서 다 거절하신다.

그래도 이것만이라도 하시면서 넣어 주신 것이 외숙부님 들고 가시기엔 조금 무거운 무게가 되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짐을 들어 드리라고 하신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외숙부님과 나란히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7~8분이면 족할 거리를 외숙부님은 두 차례나 지친 다리 쉬어 가신다.

그런데 갑자기 복권판매대를 보신 외숙부님은 로또복권을 사신다고 하셨다.

\"외숙부님, 여기서 사신 복권이 당첨되면 제게도 좀 나눠 주셔야 해요.\"

나는 친숙한 맘으로 감히 장난도 걸어본다. 아침에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연예인 이름을 잘 기억 못하셔서 나에게 계속 물어 보시기에 한 명 맞출 때마다 1000원씩 주셔야 한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시며 4000원을 기어이 주셨는데······.

\"그래 ,얼마나 나눠주랴?\"

\"10퍼센트요\"

\"140억이면 14억이나 되는데?\"

외숙부님은 놀란 눈을 하시면서 허허 웃으신다.

\"걱정 되시는 것 보니 꼭 사셔야겠네요\"

그렇게 산 복권을 나에게 건네시며 번호를 고르라고 하셔서 난 처음으로 로또복권에 숫자 6개를 정해 까맣게 줄을 그어 보았다.

그리고 지하철역 안 개찰구에서 나는 외숙부님께 짐을 건네 드렸고 외숙부님은 계단을 향해 걸어 가셨다.

양 손에 짐을 들고 쩔뚝거리는 뒷모습을 뵙는 순간 나는 맘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말을 기어코 꺼내게 된다.

\"외숙부님, 꼭 또 오세요. 꼭이요\"

\"그래. 그래.\"

손 흔드시는 외숙부님 뒷모습 사라질 때까지 뒤에서 기다리던 나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름 손님이 가셔서 그런지 내 발걸음은 참 가볍기도 하다.

가벼운 발걸음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외숙부님은 내가 좋으신가보다. 내가 참 편하신가보다. 당신 집보다 우리 집이 더 좋다 하시니 날 그렇게 생각하시나보다.

내가 조금만 힘들면 모두 저리도 행복하신데, 잘 해 드리자. 앞으로 그럴 기회가 얼마나 더 있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렇게 내 맘 돌리기 도 닦기 작업에 들어간다.


`복도 싫어요, 다 싫어요. 그저 지금 이 순간 남들처럼 맘껏 돌아다니고 편하게 살고 싶어요. 난 지금이 중요해요. 착하단 칭찬으로 날 구속하지 마세요, 제발요!\'

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지만 잠시 맘을 돌려보며 이런 생각도 해본다.

`복이나 받아 볼까? 이왕 내 본심 드러내지도 못한다면 착하게 살고 복이나 받아보자. 혹시 알아. 내게도 14억이 생길는지······.\'

나는 속으로 힘들다고 소리치며 미운 맘도 먹고 억울한 맘도 먹는 나를 오늘은 다 이해해줄 것 같다.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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