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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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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가신 여름 손님


BY 선물 2006-11-10

 

나에겐 여름 손님이 계셨다.

어머님의 동생으로 내겐 시 외숙부님이 된다.

매일 같이 어머님과 통화하시는 분이고 내게도 다정하게 대해 주신다. 장난도 좋아하셔서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 시댁분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편이다.

어머님을 바꾸라고 하실 때 못된 시어머니 바꿔라 하신다.

또 늘 내 이름을 불러 주신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나 내게 전화하셔서 답을 물으시곤 나를 똑똑하다 하신다.

주로 연예인 이름을 많이 물어 보시는 편이시다.


그 분이 돌아 가셨다.

췌장암으로 몇 달간 고생하시다가 다시 못 올 곳으로 먼저 떠나 가셨다.

병문안 하러 병원에 갔을 때도 내게 장난을 거셨다.

내가 없는 자리에선 어머님께 며느리 잘 해주라고 당부하셨단다.

그러면서도 내겐 단 한번도 어머님께 잘 해드리란 말씀 하지 않으셨다.


누이와 둘도 없이 다정하게 지내시며 의지하던 분이신데 왜 내게 그런 부탁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난 그것을 알고도 남는다.

그 맘을 굳이 표현하지 않으셔도 더 깊이 읽는다.

그래서 더 고맙고 더 무겁다.

평생 고생하신 누이 생각에 제대로 눈을 못 감으셨을 분인데.


어머님의 충격은 예상대로 대단하셨다.

어쩜 남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는데 외숙부님의 빈자리가 어머님께는 얼마나 크실까.

어머님의 방에는 외숙부님의 영정 사진이 있다.

생전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전화기 옆이 놓여 있다.

난 그 사진들을 보면 왠지 맘이 불편하다.


끝으로 외숙부님을 뵈었을 때이다.

“00 넌 꼭 내 딸 같았다. 꼭 건강해야 된다.”

기력이 쇠하신 몸으로 겨우겨우 하신 말씀이시다.

그때 외숙부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어쩜 마지막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외숙부님은 몇 번 병원을 옮기셨는데 처음 병원에서 퇴원하실 때 누님 옆에서 하룻밤만 자고 싶다는 소망을 내 비추셨다.

그 때가 바로 내가 난소 수술을 하며 병원에 입원했을 때이다.

여러 상황 상 날짜를 바꾸기가 어려워서 예정대로 수술을 하는 바람에 외숙부님은 마지막 소원이라던 누님 곁에서의 하루도 지내지 못하셨다.

내가 퇴원을 하고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는 이미 외숙부님 병환이 심각해지셔서 우리 집으로 오실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일 것 같다.

자꾸 외숙부님 사진을 보면서 죄송스러워지는 것은,

어쩌면 외숙부님이 편찮으신 몸으로 우리 집에 오신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어떤 맘을 먹었느냐를 떠나 외숙부님의 병환상태 때문에 우리 집에 모실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난 계속 불편한 맘이다.


내 눈물을 보고 친지 분들이 그러셨다.

외숙부님이 널 많이 아끼셨는데.


죄송합니다.

더 편한 맘으로 저희 집에 오실 수 있도록 못해 드려서.


언제나 영영 떠나는 사람에겐 미안한 맘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가 누구였든.

새삼 내 할 도리를 떠올리게 된다.

정말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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