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난 후 나는 모든 기억을 잊으려 애썼다. 잊을 수 없다면 모른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내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엄마가 이제라도 홀가분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어떤 자식도 의무감 이상의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거저 있는 게 아니었다. 고맙게도 아버지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아버지가 그토록 무시하고 학대했던 엄마뿐이었다.
이제 엄마한테는 행복만 남은 듯했다. 아버지와 살던 단칸 셋방에서 동생이 제대할 날만 기다리면 됐다. 동생은 엄마 평생의 기쁨이자 자랑 삶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동생보다 암이 먼저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는 딱 일 년 간 암과 싸웠다. 그동안 나는 서너 번밖에 내려가지 못했다. 나는 직장에 다녔고 애들이 너무 어렸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내 죄를 덜어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 오빠와 올케들이 엄마한테 소홀한 걸 갖고 속으로 툴툴거렸다. 내 양심은 교묘하게 이중성을 보이고 있었다. 냉정한 오빠들과 한 묶음이 되기는 싫으면서 엄마한테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피해의식은 여전했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진심으로 이해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열 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나는 왜 그토록 샘을 냈을까?
초상을 다 치르고 나서 엄마의 방을 정리하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장롱 안에는 비누 휴지 수건 치약들이 무슨 보물처럼 가득 차 있었다. 엄마가 청소부로 일할 때 챙겨놓은 물건들 같았다. 치약은 날짜가 다 지났고 비누도 오래된 제품이며 휴지는 공중화장실에서 쓰는 싸구려였다. 누구도 탐내지 않을 물건들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나눠 쓸 줄 모르고 욕심껏 쟁여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망연히 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형제들을 비롯하여 친척들의 태도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그렇게 싸잡아 욕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친자식도 버리고 나가는 세상에 지난 25년 간 우리 곁에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대단한 분이다. 한두 가지 단점이 있었다 한들 그것이 엄마의 공로를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문제는 우리가 처음부터 새엄마라는 선입견을 갖고 엄마를 대한 데에 있었다. 엄마는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동생한테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휴지나 치약이라도 쌓아놓아야 안심이 될 만큼 불안하고 초조했을 엄마의 심정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더 큰 피해자는 우리가 아니라 엄마였다. 나는 그 치약이며 비누들이 엄마인 것처럼 품에 안았다.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순간들이 다 부질없이 여겨졌다. 미칠 듯이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얀 꽃무늬 원피스 차림의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끌리듯 엄마의 딸이 되었던 것이다. 피보다 더 질긴 인연으로 맺어졌던 것이다. 왜 그걸 몰랐을까? 왜 나는 엄마가 잘해준 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서운한 일만 두고두고 되씹었을까?
아무리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제 다시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그 벌로 나이 마흔이 가까운 지금도 나는 저 옛날 열 살짜리 여자아이로 남아 있다. 그 여자아이의 허기는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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