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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 맞추기


BY 영영 2006-10-30



애들아빠는 스포츠 광이다.
아니 자신이 직접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루는건 아니니
스포츠 경기관람 광이라고 해야 맞을것이다.

선 보는 자리에서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니 유일하게 스포츠라고 해서
집에 오자 큰언니가 \'스포츠를 지나치게 즐기는 사람은 바람둥이 일 확률이 큰데~\' 해서 
웃던 생각이 난다.

허기사 어려서부터 먹고 살아야 할 궁리만 해야 했을터이니 특기나 취미생활이라고
별다른 여가 생활을 해 볼 틈이나 있었겠는가, 그져 TV 앞에서 스포츠 중계 관람하는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러 했듯이..

나는 제비족 처럼 네지끼 딱 세워 쫘악 빼 입는 하이칼라가 아닌 아침이면 소탈한 점버 입고
출근할 것같은 과천아파트 현장소장이라는 그의 직업과,  듬직하고, 전에 날 보겠다고 
직장건물 앞에서 측은하게 알짱거리던 녀석들보다는 꽤 안정 되 보이는 나이와, 
무엇보다 한의사인 큰 오빠나 큰 언니처럼 숨막히게 까칠할 것 같지 않은, 어딘가 모르게 
빈틈이 있어 보이고 는슨한  그의 첫인상까지 고루 다...... 맘에 들었는데, 

단 한가지 별다른 취미생활은 없고 스포츠를만을 좋아한다 해서 그게 좀 걸렸었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라 지금 정확한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방콕이었는지 
그때는 상당히 먼나라였던 해외에서 신동파 박신자(?)등 우리나라 대표급 선수들이 
해외 경기에 출전해서 목숨을 거는듯한 치열한 농구경기가 치뤄질 때, 
그때도 우리나라까지 생중계가 되었었다.

헌데 그 시간이 낮시간이 아닌 주로 야밤인지라 그날밤은 어머닌 잠도 안주무시고 
기달리셨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 아~~ 우리 대한민국의 동포 여러분! 드디어 
우리가 해 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 조국의 아들 딸들이 이 먼나라 방콕까지 
와서 해 냈습니다~기뻐해 주세요~ 여러분~!!\" 이라고 승리의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며 
중계하는 이광자 아나운서의 애끓는 목소리를 엄마도 덩달아 감격해 가며 듣느라
아버지께 야단을 맞기도 하셨고, 이애리사 정영숙등 그분들이 탁구결승이 있는날에도
밤잠을 설쳐가며 라디오에 귀를 귀울이고 안즈셔서 외국에서 위성통신을 타고 들어오는 
생중계를 듣곤 하셨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흑백 TV가 들어오더니
그때부터 또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고교야구에 흠뻑 빠져 들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사시던 고향집은 천안이었다.
하필 매년 고교야구에서 우승자릴 놓고 다투는 학교는 천안의 북일고와 전북의 군산상고였다.
그러니 고교야구 시즌 내내 천안 북일고와 군산상고의 대결을 벌이었으니 
어머닌 쌀을 닦으시다도 파를 까시다가도 홈런 소리가 터질때마다 애가 달아서 
\" 야 홈런이냐 홈런?~~\" 하시며 티비의 수상기 앞으로 달려오시곤 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정적인 편 이던 나는 스포츠 시즌이면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어떤때는 오나가나 종일 들리는 스포츠중계 소리가 넌덜 머리가 나서 아예 테레비젼이 
없었으면 싶을때도 있었다. 몰론 그 맘이 거죽으론 표시가 안났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어머닌 농구선수 누가 언제 누구와 결혼을 했고
군산상고 투수 누구가 어느 대학으로 편입이 되고 또 누가 연예인 누구와 결혼하고
아나운서 누가 언제 어디를 가고 어머니의 특출난 스포츠문화 기사담은 
젊은애들 그 누구도 따라 잡을자가 없을만큼,, 좌우지간 그랬었다.

그랬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 또한 어머니와 비슷해서 하절기 야구시즌이면 
티브이 화면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정신을 파느라 방안에 연기만 가득하게
애꿎은 줄담배만 축내곤 하는거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스포를 좋아해도 감성이 남자처럼 투박하다던가 누구와 겨루고 
다투고하는 그런쪽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잔 실지로는 자신은 주로 어려서부터 강하신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눌려 살아 
그런지 타인 앞에서 큰 소리도 못내는 타입인데
내면엔 모든걸 누구와 비교하고 이기고 지고  하는것에 흥미가 높아서인지
유독 시합을 겨루는 스포츠경기를 더욱 즐기는 취향인것 같았다.

정치쪽을 보더라도 어려서부터도 꽤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나는 
완전한 보수쪽이였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7.8년 전까지 너무도 투철한 진보파였다.

그런고로 우리 부부는 밥을 먹다가도 어쩌다 정치이야기만 꺼냈다간 몇분도 안되서
서로 고연히 심경이 사나와지고 냉냉해 져서는 어떤땐 말다툼까지 하곤 했다.
지금은 남편도 완전히 내 성향인 보수로 전향(?)되었지만,(몰론 100퍼센트 자의사로서)

역사를 보더라도 어린 나는 가문의 위세를 떨치는 조선실록에 관심이 많은편인데 반해
남편은 활과 말이 왔다갔다하고 자나깨나 대결이 난무 하는 고구려 삼국시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남편은 개국시대부터 현 정치까지 역사에 관한한  막힘이 없이 조예가 깊은편이다.

그런 남편이다 보니 음악과 자연을 좋아하던 정적인 나,,궁합이 맞을리 있었겠는가.
결혼 후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는건 감히 꿈 꾸어 볼수도 없었는데 
단지 여가 생활이라면 어쩌다가 그가 들고 온 고교야구 티켓 들고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지는 야구 구경가는게 유일한 문화생할이었다.

나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으니 야구 룰이 뭔지도 모르고  음료수 캔 하나들고 
옆에서 그가 설명해 주는대로 고개를 끄덕여 가며
그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서 덩달아 와~~~ 하고 손 흔들고 하곤 했다.ㅋ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나도 서서히 나도 아시안게임이다 뭐다 하면 은근히 
스포츠 경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여자의 운명은 뒤움박 팔자라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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