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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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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다림으로


BY 물안개(자운영) 2006-10-18

 

 언제나처럼 늦게 귀가하는 작은 아들을 위해 전등 하나를 남겨 놓고 소등을 하였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아 멀뚱한 눈으로 어두운 천정만 응시하다 생각해 보니 아들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새로운 보금자리로 돌아 갈 것이다.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전등을 마저 끄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가슴속 알맹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어디론가 사라져 허기가 진다.


이제부터 기다림은 내 몫이 아니다 집에 들어 올 때 불편하지 않게 불을 켜 놓는 일도,  밥을 먹지 않고 들어오면 차려 주어야할 음식도,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깍아 주던 과일도, 아침이면 시간에 맞추어 깨워 주고, 다리미질된 와이셔츠와 양말을 내어주던 일들은 이젠 안 해도 된다.

 홀가분하면서도 세월의 덧없음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산다는 것 은 많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젊은 날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자식들이 성장해선 그 애들을 기다리며 문밖을 서성였다.

추운 겨울이면 마음속에 봄을 키우고 봄이면 어느덧 여름날의 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가 기다린다.

휴가를 다녀오면 또다시 가을 산의 단풍을 기다리고, 가을이 무르익으면 겨울 산의 설경을 꿈꾼다.

삶이 힘들어 질 때면 여유로운 생활이 되기까지 무수한 기다림 속에 질곡의 날들을 살아낸다.

 어린아이로만 알았던 작은 아들이 결혼 한다 했을 때 아직은 준비가 안 된 내 머리 속은 복잡했지만, 고등학교부터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결혼이라는 결실을 위해 기다려왔을 그 애들을 생각하니 더 이상 미루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의 조촐한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부랴부랴 날자가 잡혀졌다.  

 이제, 그 애들은 결혼과 동시에 삶이라는 한배를 타고 닺을 올리고 노를 저어 인생이라는 세상 속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남편을 기다리고 아내를 기다리며  폭풍을 만나 표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함으로 희열을 느끼며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어느 날이던가 유치원 보네면서 아들에게 주지 못한 도시락을 주려고 가던 길에

 “얘야 이 도시락 좀 친구에게 같다 줄래?

  네“ 도시락을 받으려는 순간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 아이 엄마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고 길을 재촉했었다.

우리가 부유했더라면 그렇게 가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 아들을 유치원에 보네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 속에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그 여인의 새침한 얼굴, 기다리는 것은 내 몫이 아닐지라도 내일은 또 다른 기다림으로 나는 서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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