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으로 이사를 한 후,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다니러 왔다.
점심을 먹으러 백마 애니골이란 곳으로 갔다.
이 곳은 전원카페나 퓨전음식점, 라이브카페 등이 즐비한 곳으로 서울 등 외지에서 많이 오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 가려면 백마역 철길을 건너야 한다.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기차도 볼 수가 있다.
일산 백마역을 우측에 두고 길을 건너갈 때 한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어머, 여기... 옛날에 왔던 곳인데...
그녀의 눈에는 추억을 되새기는 아른거림이 있었다.
그 때 다른 엄마도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여기 화사랑 있던 곳인데...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눈빛도 아까 엄마의 눈빛과 흡사하다.
내겐 그녀들의 눈빛이 재미났다.
-다들 모종의 썸씽이 있었나 보네.
그렇게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지방에 살던 한 엄마만 제외하곤 모두들 그렇노라고 실토를 했다.
세월이 지나도 추억은 늘 새롭게 숨쉰다.
어떤 장소나 어떤 음악이나 어떤 시간이나...
그 속에서 지난 추억은 다시 부활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달리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각기 다른 삶의 역사를 쓴다는 것.
아름다운 길 위에 놓인 호젓한 벤치도 그럴 것이다.
묵묵히 이 연인 저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화사랑에는 별다른 나의 추억이 없었다.
두번인가 가긴 했었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한번은 친구의 차를 타고.
그때 친구들은 모두 술을 좋아했다.
나도 술을 즐겼다.
우린 술을 즐겼고 그와 함께 눈물도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친구가 있었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우린 우리 여자들끼리의 여행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다.
차를 가지고 갔던 때를 생각하면 사실 지금도 아찔하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구나 여대생이 면허를 따서 차를 직접 몰고 다닌 경우는 더욱 드물었던 편이다.
그런데 친하게 지냈던 몇명의 친구 중에 한 친구가 면허를 땄다.
그녀는 차 안에 납작한 운동화를 늘 두고 다녔다.
그 신발을 신고 운전해야 편하다는 말을 했다.
운전의 운자도 모르던 시절,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어느 날 그녀가 차를 몰고 학교로 왔다.
다함께 화사랑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설레였다. 참 유쾌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운전을 하는 친구는 왠지 마음이 많이 무거워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깔깔대며 신나는 청춘을 만끽했다.
화사랑에서 술을 마시고 일산의 논두렁 위에서 젊음을 소비했다.
저녁 무렵 서편으로 지는 노을에 취해 소리도 질러 보았다.
그런 자유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는 친구는 그 누구도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좀 더 방자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용납될 수 있을 시간들이었을만큼 찰나처럼 짧디 짧은 청춘의 한 때였다.
으스름 저녁에 우리는 길을 떠났다.
돌아 오는 길에는 운전을 하던 친구가 더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즐거움을 가득 담은 포만감을 갖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절대 그러지 못한다.
그 때 운전을 하던 친구는 초보운전이었고 길도 잘 몰랐고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얼마간 음주를 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채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전에 관한 한 무지했던 덕분이었다.
갈 때 올 때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철없이 떠들어대는 우리가 참으로 야속했을 것이다.
그래도 하늘이 도와 우리는 무사귀가를 할 수가 있었다.
다른 엄마들이 다른 색깔의 추억을 되새길 때 나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아, 옛날이여 그리워했다.
하지만, 우린 대부분의 시간을 반듯한 젊은이로 생활했다.
그러다가 간혹 누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허용될 만큼만 젊음을 누렸고 즐겼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젊음은 완전종료되고 만다.
아내가 되었고 며느리가 되었다.
그것도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외며느리가 되었다.
아주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집안에서 역시 그런 가풍이 몸에 밴 남자와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생각할 만큼 다른 사고방식으로 커 버렸다.
윗 세대와 아래 세대의 틈 바구니 속에서 나는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일관성도 지니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때론 윗세대도 이해하겠고 아래 세대도 이해하겠다. 그럴 땐 아프다.
또 윗세대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아래 세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럴 땐 슬프다.
여하튼, 나는 지금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너무도 막중해서 집안에서 맡은 역할 이외의 어떤 역할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게다가 먹고 사는 문제마저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나마 작은 믿음 속에서 위안을 얻고 있는 중이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살 수 있었을 때 그 때도 나는 위로가 필요했었다.
그래서 술에도 취하고 음악에도 취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취하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제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만 온 신경을 쏟아도 부족할 때가 왔다.
사실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한데 나를 위로해줄 여유를 가진 넉넉한 이는 아무데도 없다.
오히려 내 위로를 필요로 하며 손 내미는 이들만 그득하다.
다리는 휘청거리는데 비틀거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내 몸이 작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아주 소멸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어제 올린 글이 있다.
그냥 맘 가는대로 끄적거린 글. 몇 번 수정해서 그냥 글을 올렸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내가 그 글을 읽었다.
타인이 되어 그 글을 읽어 본 것이다.
처음엔 웃음이 나오다가 다음엔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엥, 이게 뭐야.
사랑하고 싶다는 거 같기도 하고 바람나고 싶다는 거 같기도 하고.
뭐, 불륜의 기회가 없어 바람이 나지 않는다고...
엥, 또 이게 뭐야.
참 할 짓 없는 사람이로군.
참 한가한 사람이로군.
글을 쓸 때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남이 되어 읽은 글은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그래서 잠시 혼돈스러웠다.
글 내릴까....
혼자 궁리하다보니 또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난 죽어도 그런 일탈을 못할 사람 같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정말 사는 것처럼 사는 것으로 보여질 만큼 한번쯤 대차게 살고 싶기도 한데 정작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못난 사람.
술을 마실 일이 통 없다보니 이제 술도 못한다.
그래서 내 속에 일탈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달리 발산할 틈이 없다.
그래서 글로 비틀거렸나보다.
글이 있어 난 그래도 나로서 어느 정도 살아가나보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때론 늦은 밤 혼자 방황도 하는 당신이 참 부러워.
난 이 답답함, 이 고통스럼을 어찌할까.
그런데 내게도 실은 이렇게 구멍이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배출하는 구멍이...
그래, 내 삶에도 가끔 예외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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