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시골쪽이기 때문에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분들이 거의 백인들이 대부분이다.
처음 이가게를 만든 사람이 일본분이였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이 미국인들을 위한 일본식이다.
그래서 음식도 사시미를 시켜도 미소국과 밥만 나간다.
우동을 시켜도 단무지가 단 세쪽이다.
더 추가하면 돈도 50센트 추가다.
간혹 미국에서도 매운바람이 불어 모든 음식에 spicy를 요청하면 멕시칸 칠리소스를 조금 뿌려주고 50센트를 더 붙인다.
미소국은 1달러 50전을 받는다.
모든게 공짜가 없다.
그런데 이 작은 곳에도 예외없이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라 간혹 동양사람이 가게에 오면
한국분일 경우 온몸으로 말을 한다.
\"난 한국인이다\' 라고.
간혹 저 사람이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하고 잘 몰라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지없이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같다.
그리고는 그냥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럴땐 내가 먼저 조용히 아는척을 하기도 하고,
상대에서 아는척을 해오기도 한다.
아주 바빠서 헉헉거리고 뛰어다니는 날에 어쩔수 없어도
그냥 많이 바쁘지 않은날 한국사람임을 알아보는 경우는
어찌 단무지 세쪽을 주겠는가?
당연히 단무지를 가득 담아 준다.
한국사람이 김치없이 밥을 못먹는데 단무지라도 많이 줘야 하는게 인지상정인 까닭이다.
당근 미소국도 그냥 준다.
가끔 우리가 스시가게를 하는 통에 다른 유명한 가게에 맛 공부를 하러다닐때가 있다.
이곳 시애틀에도 유명한 스시 레스토랑이 있는데, 한국사람이 미국에 와서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우리 가족이 그곳에 갔는데,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분이 온 몸으로 \" 난 한국사람이예요.\" 이러고있는데 대뜸 일본말로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물론 영어를 쓰는게 당연하지만 영어로 어느 자리에 앉을실래요? 하고 묻는다.
그럴때는 우리도 더는 한국사람인티를 내지는 않는다.
그냥 어느자리를 앉겠다고 영어로 말하고는 주변을 잘 살펴본다.
보니 웨이츄레스 몇명이 한국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도 조용히 말을 한다.
괜히 한국말로 크게 얘기하기가 뭐하기 때문이다.
스시를 아주 맛있게 하는 집이기에 맛있게 먹고 돈을 계산하고 나서는데
이번에도 일본말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한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일본말로 일본인이세요? 한국인이세요?
하고 물으니 목소리가 우렁찬 그 여자분이 갑자기 조그만 목소리로 Kore......an 이라고 답변을 한다.
그래서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다.
그냥 외국에서 따스한 말한마디가 그리운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인 이 집뿐만이 아니다.
백인들을 상대로 하는 한국인 비즈니스주인들은 아는척을 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기지 않는다.
나역시 우리가게에 한국사람들이 오면 무조건적으로 반가와서 이것 저것 갔다주지만
주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기분이 아주 나빠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반가워서 한국인의 정으로 대하는데 상대편은 그걸 이용해서 특별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경우가 50대 50이라고 할까?
외국에서의 한국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물론 이 넓은 미국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우리 작은 동네를 얘기해볼까 한다.
어쩌면 특별하지도 않는 이 얘기가 현실일 수도 있으니까.
우선 우리 동네에 한국사람이 80여명에서 100여명 사는 이곳에 한국 교회가 2군데가 있다.
장로교회 침례교이다.
두곳 모두 출석인원이 10여명 내외이다.
무슨 이유로 해서인지 교회가 갈라졌단다.
나도 어느 한군데를 택해서 교회를 나간지가 한 1년6개월 가량 된다.
여기로 터를 잡으면서 다녔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는지 우리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전주인과도 서로 아는 사람의 절친한 관계로 비즈니스가격이며 모든 상황을 별 의심없이
인수하게 되었다.
또한 전주인의 오빠되시는 분이 이곳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한국식당을 운영하던터라
가족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겠냐는 것이 나의 생각이였다.
게다가 그 오빠되는 가족은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했으니깐
전주인 되는 사람들은 카톨릭 신자로 아주 신심이 깊은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일은 상황이 그러지 않듯이
그 전주인 되는 분은 몇만불을 가격을 더 받아냈고,
그 소문은 오빠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들이 우리만 모르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우리가 잘되는 가게니깐 자기네들이 산가격보다 조금 더 붙인들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는 사람을 내세워, 자신이 믿는 신을 강조하며 절대 산가격 그래도 받는 거라고 말했던 그 거짓 자체를 조금 불쾌할 뿐, 그리고는 그냥 그분들과는 별 인연을 두지 않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단지 교회는 계속 다니고 있었으니깐 그 오빠네 가족하고는 별 감정없이 그냥 잘 지냈다.
그런데 몇달전에 우리 가게에서 일하시는 쿡을 하시는 일본아주머니가 나보고 그런다.
그 오빠네 집에서 스시를 시작했는데, 메뉴랑 그릇이랑이 우리랑 똑같다는 것이다.
사연을 알고보니 그 오빠네 가게가 잘 안돼다 보니 탈출구로 우리에게 가게를 넘긴 전주인이
우리 레스피를 그 오빠네 가게로 넘겨버린 거였다.
그러니 메뉴까지 똑같이 찍어서 모든 장비를 바꿔가며 한국식당에서 korea& japanese레스토랑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우리가게는 20년이 된 가게다. 이 가게에서 일하시는 일본아주머니도 20년을 일하신분이다.
그분은 내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이 가게에 애정이 있어서 일을 하고 계신분으로 그분이 나보다 더 속상해 하셨다.
게다가 자기랑 잘 지냈던 전주인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더 가슴아파 하셨다.
그런데 사연은 더 길어진다.
그 오빠네 한국식당은 한 10년 된 가게로 처음 그 가게를 만든 분이 또한 한국분이다.
그 처음주인이 할때는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고 한다.
위치도 아주 좋아서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큰 주유소를 인수하면서 그 가게를 지금의 그 오빠네에게 인도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오빠네랑 그 주인과는 먼 친척관계라고 한다.
그래서 가격도 많이 주고 인수를 했는데, 그 오빠네가 인수하면서 손님이 떨어져 나간것이다.
예전의 처음 주인이 했던것같이 장사가 잘 되지 않자, 그 오빠네랑 그 가게를 팔았던 주인과는 사이가 안좋아져서 담을 쌓고 살고 있었다.
그 가게에는 처음부터 요리를 하던 한국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오빠네가 인수를 해도 계속 일을 하다가 장사가 잘 안돼어서 그랬는지,
사이가 점점 안좋아지다가 그 아주머니가 독립을 해서 나오셨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작은 일본테리야끼 식당을 인수하면서, 한국음식을 그 오빠네 가게에서 레서피를 그대로 가져와서 장사를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오빠네는 속상해 하다가 눈을 돌린게 우리가게 copy 였다.
참 장황한 얘기다.
난 처음에 교회에서 여전히 상냥한 그 오빠네를 대하면서
그냥 나혼자 예배끝나고 바닷가에서 울기도 했었다.
여전히 상냥한 그 어머니와 오빠네 내외가 적응이 안된 까닭이다.
그래서 교회사람들에게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LA에사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이 얘기를 하니
그 친구가 들려주는 스토리는 더 많다.
아마 내게 일어난 이 이야기가 나에게만 닥친 특별하고 희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외국생활 참 힘들다.
그럴때 더 힘들게 하는 것이 그 강력한 한국인의 피붙이 들이다.
그리고 무슨 연유인지 미국사람들에게 욕을 많이들 먹고 있기도 하다.
LA의 코리언타운은 이미 매춘에 술집에 골치거리가 되고 있단다.
외국에서 나 자체가 코리아가 된다.
사람들이 나를 한국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사람들 머리좋고, 일도 제일 잘한다.
내가 이 장황한 얘기를 하는 까닭은 내 속상함을 알아달라는 고발이 아니다.
다만 절대 다른 나라사람들이 하지 않는, 특히나 중국인들은 서로를 이끌어 준다.
일본사람들은 상대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는다. 등의 강력한 원칙들처럼
언제쯤이면 우리도 이 모든 것들이 오명이 되어 좋은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소박함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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