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중국의 이 회사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34

눈물젖은 밥벌이


BY 불토끼 2006-09-04


한 번은 내가 남편이랑 싸우다 대성통곡을 하고 운 적이 있었다.
서로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밀고 당기다가 힘쎈 남편이 나를 컴퓨터방에서 왈칵 밀어내고 방문을 잠그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분한 마음을 참을 길 없었던 나는 얼른 침대로 뛰어가 큰대자로 뻗어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갑작스런 마누라의 대성통곡에 방문을 박차고 나온 남편은 몸부림까지 치며 울고있는 나를 보고 ‘이제는 끝장이다. 이혼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때 내 상태는 처절한 것이었다.


이런 처절한 상황이 또한번 내게 일어났으니
그것은 얼떨결에 취업에 성공한 내가 돈벌이에 나선지 1개월이 지난 후였다. 남편과 내가 후에 ‘Pain in the ass\'라고 명명한 우리회사 티나라는 여자때문이었다. 티나는 말을 함부로하는 경향이 있는 20대 초반으로 우리가게(명색이 회사지만 규모가 작아 지금부터 가게라고 명명함) 전반의 물건주문, 배송, 손님상담(명색이 고객이지만 가게규모상 손님이라 명명함)을 맡고 있었던 여자다.

독일서 아르바이트라고는 처음 시작한 나는
물어볼게 온 천지에 깔렸는데 아무도 내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6개월 후면 사표를 낼 티나가 나의 선임자였기에, 게다가 사장님이 모르는게 있으면 티나한테 물어보라고 일러둔 말도 있고 해서 나는 티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었다. 그녀가 손님과 상담할때도 옆에 붙어서 귀기울이고 듣고 있었으며 전화로 주문을 받을때도 뭐 하나라도 주워듣기 위해 붙어앉아있었다. 그런 내 태도에 진절머리가 난 티나는 슬슬 본색을 나타내며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하나 물어볼게 있어 티나를 찾았는데 그녀는 야멸차게도 이렇게 대답하는거였다.


‘그건 니가 알필요 없어!’


손님들까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이 대답은 너무 무례했다.
나는 한동안 얼이 빠져 서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대꾸하려 했을때는 이미 6초가 지난 상태였다. 얼빠지는데 2초, 대꾸할 말을 찾는데 2초,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2초. 내가 뭐라 대꾸하려고 찍소리를 냈을 때 그녀는 이미 10미터 전방을 걸어가고있는 중이었다.


이게 한 번이었으면 쟤가 오늘 생리를 하나보다 하고 말았을텐데 그 무렵엔 번번이 그랬다.
동료나 손님이 옆에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나는 화가나는 것이 아니라 서글펐다. 그녀가 그렇게 기분나쁘게 나를 취급한 것에 화가난 것이 아니라 그 싸가지없는 대답에 대꾸조차 못하고 얼뜨기같이 군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서글픈 것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퇴근하려고 보니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안가지고온 나는 비를 맞으며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는데 사실 가게문을 열고 나설 때만 해도 서글프긴 해도 울고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을 당하고 비까지 맞으며 버스정류장으로 가다보니 처량한 내 신세가 불쌍해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면서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내 나이 서른에 사회생활 1,2년 한 것도 아닌터라 한국이었으면 이만한 일쯤 웃고 넘겼겠지만 여기는 이역만리 남의 나라아닌가? 남의집 눈칫밥 먹는 자식은 별것 아닌 일에도 서러워 한다고 내가 바로 그짝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으로 가면 나를 다둑거려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내 울음소리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점점더 커졌고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을땐 이미 큰대자로 뻗어 대성통곡하며 울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울며 들어오는 나를 본 남편이 화들짝 놀라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수십 번을 물어도 나는 너무 겸연쩍어 말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말을 안할수록 남편은 더 궁금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이다. 결국에는 자기 혼자서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 내가 어디서 얻어 맞았거나 강간당한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딸꾹질을 해가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곤 서러움에 벅차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나 죽어도 돈벌이 댕기지 않을테니 당신이 그 잘난 공부 중단하고 나 먹여살려!’


이렇게 엄포를 놓았건만 남편은 내가 어디서 맞았거나 강간당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색이다.


‘걱정마. 내일 당장 거길 찾아가서 그년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물씬 패줄테니.’


사람패는 게 그나마 공부중단하고 여편네 먹여살리는 것 보담은 조금 쉬운 선택이었는지
이렇게 엄포를 놓는다. 기다린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또한 괜찮은 대답이라 생각하고 우는 와중에도 나는 고개를 돌려 ’정말?‘ 하고 물었더니 ’당연하지‘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말 한마디에 기분이 화- 풀려서는 티나가 남편한테 맞아 상판이 일그러지는 상상까지한다. 그러다 이 순진하고 무뚝한 남자가 진짜로 내일 찾아오면 어쩌나 싶어 막판에는 티나를 역성들기까지했다.


어쨌든 그 일은 이렇게 일단락지어졌다.
나는 쩍하면 말로만 그만둔다고 염불을 하고다녔지 사실은 그 일이 있은 후 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 달 다닌 직장을 관두면 쪽팔리기도 하거니와, 왠지 이 직장을 잃으면 무기력해져서 독일에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마음을 이렇게 먹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티나의 싸가지없는 말에 대꾸하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결코 만족스러울만큼은 아니었지만.


6개월이 지났고 티나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그만둔 후엔 눈에 가시가 빠졌으므로 정말이지 친구집에 놀러가듯 출근했다. 그녀가 경영했던 모든 것들은 내 식으로 뜯어고치고,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거기서 3년 6개월을 더 일했다. 내 자랑같지만 마지막 한 달을 남겨놓고 사표를 낼 때 사장님이 나같은 한국사람 구해놓고 나가라고 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똑부러지게 일했다. 나는 주변에 아는 한국사람이 별로 없어 진짜로 나와 비슷하게 생긴, 기숙사시절 우리 윗집에 살았던 몽고여자를 내 자리에 심어놓고 나왔다. 그 여자는 아직도 거기서 일한다.
아주 똑부러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