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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옹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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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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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2


BY 라헬 2006-08-31

축축한 우산이 차갑게 발등에 닿았어.흔히 접하는 뉴스있잖아.외국인들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기가 두렵다는.외국인까지 고사하고라도 지난번에는 꽤 이름있는 부산의 모 목사님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택시를 탔는데 십만원을 주라고 하길래.할수없이 주고는 설교시간에 그 기사를 개새끼라고 욕한적이 있을만큼.오죽하면 경건한 목회자의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하고 수긍한적이 있는데.나같은 시골 여편네쯤이야.하긴 광주도 시골이 아니고 어엿한 광역시이긴 하지만.


사실 가슴이 조마조마 콩조림하듯 잦아들어야함에도 나는 기사의 속내를 파악하려거나 그럴 의지조차도 없었어.순희가 말한것처럼 만사천원쯤이던지 아니면 날씨를 감안해 조금 더 나온다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만큼 기력도 없었으니까.서울에 내리는 비는 더 아양스러워서 달리는 택시를 요령있게 비켜가는것 같았지.횡단보도나 아니면 길에 바삐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행색은 뭐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어.그냥 대한민국 사람들다웠지 뭐.


완전 내 스타일이었어.택시기사.다른차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것을 허용할수 없다는 듯 신호가 바뀔때마다 차고 나가는 그 순발력하며 빗속에 위험천만으로 달리는 퀵서비스의 오토바이도 스릴있게 제껴가는 센스.가물가물 현기증이 나긴했지만 그런대로 훌륭한 기사의 운전솜씨에 막 감탄하기 시작했어.


그때 다시 전화가 왔는데.어디쯤 오고있어? 아니다,언니는 잘모르니까.아저씨한테 무조건 벽산아파트를 향해 왼쪽으로 왼쪽으로 세번정도 돌아올라가면 된다고 하라며 툭.하고 끊어졌어.알았어.비교적 한가한 동네같기도 한 교차로를 지나는데 머리위로 신림사거리라는 이정표가 아는체 달려들었어.그리고 또 달려서 정말 왼쪽으로 왼쪽으로 돌아가는것 같더니 여기라며 기사가 말했어.그때서야 미터기를 확인했는데 10500원이 나왔어.만원하고도 사천원쯤 더 나온다는 순희말이 새빨간 거짓뿌렁이었지.


만천원을 건네주면서 모기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됐어요...그랬어.그러니까 봉사료로 오백원을 더 치른 셈인데.내심으로는 엄청 미안했어.그 먼길.강남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오는 먼길(내겐 정말 멀고 낯선길이었으므로)을 엉뚱한길 거치지 않고 더 지름길을 택했는지 예상금액보다 훨씬 적게 나왔으니 감사할일임에도 꼴랑 오백원밖에 더 드리지 못했지.만약 천원짜리가 없어 만원과 오천원이었더라도 됐어요.했을지도 모를일이지만.


아.꽤 높이 올라왔나봐.바람이 제법 시원했거든.그러나 그 바람도 내게 호락호락 즐길여유를 주지 않았어.바로 속이 뒤집혀졌는데.평소 우아하게 살자.라는 내 소신을 버릴수 밖에없는 상황이 또 발생했지.휘청거리며 아파트 화단.푸르게 우거진 작은나무들 사이에 얼굴을 쳐박고 마구 토하기 시작했어.이런...아까 터미널식당에서 속을 달랜 물냉면이 거침없이 올라왔어.게다가 냉면가닥 몇개가 심심찮게 섞여있었는데 그 실망스러운 내 모습이라니.


대충 정리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순희가 소리를 왝왝 지르고 있는거야.아이구 챙피해서 못살아.언니 나 못내려가니까 언니혼자 육층까지 올라와.키득키득.아마 앞집 아줌마였을거야.함께 내려다 보고는 씨익웃더라구.더듬더듬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희집에 들어가면서 그냥 가방도 내팽겨두고 대자로 뻗었어.혁이가(순희아들놈) 잠시 나를 살피더니 이모...하면서 기절할것만 같은 예쁜 목소리를 내앞에 쪼그리고 앉았지.아이고 우리 혁이네.이렇게 이뻐졌어?


바람이 무슨 에어컨이름같은  에위니아의 끝자락을 잡았는지 제법 기세가 등등했어.높은곳에 위치한 순희 아파트는 6층인데도 다른곳 20층에 해당할만큼 시야가 탁 트였으며 꽤 쓸만한 위치에 있었지.매일 자기집은 좁아서 얼른얼른 돈을 벌어 조금 넓혀가야겠다며 숨찬소리를 해댔었는데 서울에서 머문 그 나흘동안 나는 그나마 서울하늘 아래 이만한것이라도 등에 지고 사는 순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마 순희도 눈치챘으리라 믿어.


언니 짬뽕라면 끓여줄까? 속 달래게?.그래 아무래도 뭣좀 먹어야겠다.짬뽕라면 끓여봐봐.알았어.잠간 기다려.그러더니 대문을 활짝 열어둔채로 순희는 나가버렸어.혁이가 금새 엄마를 찾으며 울려고 했지만 엄마 아스끄림 사러갔어 혁아 엄마 금방오니까 이모랑 있자..하며 말끝마다 엄마를 넣어주며 달랬더니 다소곳이 앉아있더라구.결코 날씬하다 할수 없는 몸을 이끌고 순희는 바람처럼 달려 짬뽕라면과 혁이 줄 아이스크림을 사왔지.


라면이 보글보글 끓어가는 냄새만으로도 제법 속이 편해져갔어.몽글거리는 계란을 젓가락을 건져먹으면서.집에가면 짬뽕라면좀 사놔야겠다고 생각했지.혁이는 정말 맛도없게 라면을 물에 씻어서 쪽쪽 빨아먹었어.상앞에 바짝 닥아앉은 순희가 그랬어.언니! 씨씨티비에 이제 언니 찍혔으면 방송나올거야 .화단에다가 토한 아줌마 빨리 경비실로 오시길 바랍니다...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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