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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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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1


BY 라헬 2006-08-31

서울가는 길.나는 계속 멀미를 했어.우등버스 좌석을 무례하게 완전히 제끼고 드러눕다시피 배를 편하게 해주었거만 망할멀미는 도무지 사그러들지가 않았지.휴게소에서 뜨끈한 오뎅국을 샀으나 건더기는 빼고 대신 국물을 더 주라고 했어.테이블에 납작 엎드려 후루룩 오뎅국물을 마셔대며 궁시렁거렸어.빌어먹을....서울은 너무 멀어.


그리고 눈을 감았는데 무슨 새인지는 모르나 아뭏튼 새소리가 길게 한번 울리더니 획일화된 안내 멘트가 버스안을 시큰둥하게 휘돌아갔어.이제 출발한다는.평일이지만 꽤 사람이 많았어.모르지...사람이 많았는지도.내 형편이 몰염치하기에 고개돌려 좌우 살필 겨를이 없었으니까.다시 의자를 눕히고 나도 누웠어.어찌할 수 없는 멀미.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몸서리쳤어.


아...배고파.아침 끼니를 거른채 서둘러 올라왔으니 허기가 질 수밖에.게다가 멀미로 인해 뱃속은 용가리 갈퀴질하듯 쓰리고 아팠어.머릿속이 하얘질 무렵 드디어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 당도했지.빗방울이 하나둘 차창을 막 때리더군.서울이다.서울인게야.힘줄이 파랗게 손등위에 몰렸고 나는 서둘러 가방을 열어 화장품을 꺼내려 했는데 아뿔싸.화장품가방을 담아오지 않은거야.급히 나서는 바람에 화장품가방은 커녕 립스틱도 담겨있지 않은 가방이 볼썽사납게 입을 벌리고 헤죽거렸어.낭패다...


감사합니다.분명 목례와 함께 소리를 내어 기사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목소리는 뱃속으로 감겨 들어갔는지 목구멍 밖을 통과하지 않았어.목례만 받고도 기사님은 명랑한 화답을 해왔지.남들 뒤꽁무니를 따라갔어.복잡한 서울.게다가 나는 배가 고프다 못해 찢어지게 아파오고 있었으므로 급히 요기를 해야했어.절대 터미널가까이 식당은 가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념따위는 사치에 가까웠어.걸을수도 없을만큼 배고프다면 말이야.


헛구역질을 한 속창자가 냉면이란 뻘건 글씨에 추파를 던지는데 내 발걸음은 자존심도 없는듯 그 천박한 허기에 끌려 냉면집 의자에 잽싸게 가 앉아있었어.물냉으로 주세요...내 말귀를 알아들은 아주머니의 귀가 탁월한건지.아니면 나의 립싱크가 정확했던지.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냉면은 쏜살같이 나왔어.식초를 과하게 뿌릴수록 입맛이 돋우므로 식초와 겨자를 마구 풀었어.그리고 먹지는 않고 그릇째 들고 마구 마구 마셔댔지.부들부들 떨던 내 손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어.


정말이야.난 국물만 마시고 싶었어.아니 그래야만 했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맛대가리없는 냉면가닥이 몇개딸려서 국물과 함께 목구멍을 통과한거 있지.몇가닥 안되었어.국물도 다 먹지못하고 사천오백원이라면서 한참 쭈뼛이 서있는데도 오백원을 거슬러 주지 않자 나는 머쓱해지기 시작했어. 그 짧은 순간이 한없이 영겁처럼 느껴졌지.내가 잘못들었나?시골 여편네처럼 멀뚱이 이것저것 함부로 올려져 있는 지저분한 카운터만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그냥 나왔지 뭐..오천이었나?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어.아.그 때의 속도감이라니.아마 88올림픽때 칼 루이스가 이와같은 정신으로 뛰었다면.하고 뒤늦게 웃었지.변기통을 부여잡고 왝왝거리며 말이야.한참 토악질을 해댔어.맙소사..방금 마신 냉면국물이 아직 소장은 커녕 위장에도 내려가지 못한채 되돌아 올라왔어.눈물이 쏙 날만큼 힘들었어.대충 속이 잦아들어 밖으로 나오니 세면대위에서 얼굴 매무새를 다듬던 예쁜 아가씨들이 나를 혐오스런 눈빛으로 쳐다봤어.그래 더럽겠지 사랑스런 아가씨들의 귀에 들렸던 그 소리가.느이들도 멀미를 하던지 과음을 하던지 이런 구토 전혀 경험없다 하진 않겠지? 속으로 냉소하며 허리펴고 화장실을 나섰어.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도대체가 어느 구멍으로 나가야 택시를 잡아탈 수 있는건지.어차피 지하철을 두어번 갈아타며 목적지를 가기는 애저녁에 틀렸으므로.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택시비 만원하고도 사천원정도 나오니 괜히 탈줄도 모르는 지하철 타지 말고 나와서 택시를 타라고 했어.그래 택시를 타야지.나도 그걸 원해!허나 쓰린속을 움켜쥐고 밖으로 탈출까지 하는데는 결코 쉽지가 않았지.

돌고 돌아 왜 맨날 영풍문고만 보이는지.하긴 내가 책을 좀 지나치게 좋아하긴 하지만.헤헤헤.


다시 전화를 했어.야!.못찾겠어.택시타러 가야하는데 자꾸 영풍문고가 나를 가로막는다구.기가차고 똥이 차다는 듯 동생이 가소로운 목소리로 말했어.언니.사람들 가는대로 가.그대신 지하철 말고 지상으로.으이구..지금 상태가 몹시 불량한것 같아.그래도 조신하게 걸으라구.킬킬킬.하고 동생이 웃었어.나쁜년.언니는 죽어가는데.


어찌어찌 나왔는지 말못해.몇번의 시행착오끝에 기어나온 구멍은 아마 그 건물 뒷쪽 같았어.큰 주차장이 건너편에 있었으며  골목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어.누군가 살이 꺾어진 우산을 뒤집어진채로 버려둔 뒷길을 따라 차소리가 나는 한길로 뛰어갔어.비가 내렸거든..휴..이제 살았다.


여기가 서울인지 지랄인지 모르겠어.무조건 택시를 잡았는데.그 무아지경인 상황속에서도 절대 모범택시가 지나가실때는 손을 드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어.택시 지붕에 콜 택시라고 써있었는데 세웠어.일반택시였거든.뒷좌석에 앉자마자 머리를 뒤로 하고 눈을 감았어.기사님.봉천동 현대시장 사거리앞 벽산아파트로 가주세요.아마 내 말이 어눌했을까? 기사는 몇번을 무슨동이요???하고 물었지.나는 자주 다니는 동네에 가는것처럼 작은소리지만 의연하게 대답했어.서울사람처럼.


물론 그때까지 택시기사는 나를 서울사람으로 생각했을거야.적어도 내 남편한테서 전화가 오기전까지 말이야.먼저 동생과 통화했지.응.지금 택시 막 탔으니까 기다리고 있어.그때까지 좋았는데.또 다시 울리는 전화는 남편의 지정벨소리였어.한때.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드라마 \'다모\'폐인이기도 했거든.아직도 그때의 감동과 흥분을 잊을수가 없어서 남편의 지정벨을 \'다모\'의 ost인 \'단심가\'로 해놨어.페이지의 흐느끼는듯한 단심가는 지금도 날 설레이기 해.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받았어.응.응.그러다가 남편이 물었어.잘 도착한거야?지금 어디야?.나도 모르게 얌전히 불었어.분명 얌전했다고 여겼는데 서울이랑 광주의 거리를 배려한듯한 내 목소리는 절대 얌전하지 않았지.응!방금전에 강남터미널에 도착했어 지금 택시탔구.걱정하지마 순희가 나와서 기다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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