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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팔월의 마지막 밤에 꾸는 꿈


BY 캐슬 2006-08-30

 

 

 남편과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어머님이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의논할게 있으니 만나자 하신다며 남편은 핸드폰 폴더를 덮는다.

우릳 둘다 왜일까라는 생각으로 잠시 서로 창 밖으로 시선을 둔다.

그러나 이내 짐작하는 바가 있어 우리 부부의 얼굴은 굳어진다. 남편이 먼저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나는 차에 있을테니 연락할게 있으면 전화 하라고 하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며느리에게 못할 말이 있어 아들에게 전화한것 같아서 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집으로 올라갔다.

쇼파 이쪽 끝에 걸쳐 앉은 남편과 저쪽 거실 벽쪽에 기대 앉은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들어서도 움직임이 없다.

잠시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먼저 고요를 깨뜨린 사람은 어머니셨다.

\" 니 아버지를 요양원에 다시 보내야 겠다.\"

\"......\"

이제 겨우 집에 오신지 며칠이나 됐다고라는 말이 목구멍을 기어나오려 하는 걸 억지로 눌러 답았다.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졌다. 어제 너 없을때 옷에다가 *을 보시고 화장실에 던져 놓아서 치울수 없어 비닐 봉지에 싸서 버렸단다.잠시 후  시아버님이 주워오셔서 당신이 세탁하겠다고 하는 걸 말렸단다. 이렇게 힘들기 사작하니 요양원에 다시 보내 보내고 싶다고 하신다. 요양원에서는 하루 세번 때 맞추어 따뜻한 밥 나오고, 간호사 있고, 목욕시켜주고...어머님의 요양원 칭찬은 끝이 없다. 마치 자신이 요양원에 계셔본 사람같다.  

남편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있다.

어떻게든 이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안방으로가 아버님을 모시고 나왔다.

\"아버님 요양원 가실래요?\"

나의 물음에 아버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다시 \'요양원이 좋지요\'라며 시어머니가 물으시자 얼굴을 찡그리시며 못 마당한 표정을 지으신다.

촛점 없는 눈은 처분을 바라는 아기의 순한 눈빛 바로 그것이다.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이제 겨우 일년을 넘겼다.

한달이 될지 두달이 될지 아니면 몇년이 될지도 모르는 이 지루한 병과의 싸움에 식구들 모두가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맏이인 남편과 두아들과 누나가 한명 있지만 모두가 시아버님의 병에는 강건너 불구경하는 관중일 뿐이다. 잠시 들러 눈도장 찍기만 바쁘고 다들 저 살기 바쁘다고 동동 거린다. 맏이가 무슨 이유로 이토록 마음 고생을 해야한다는 말인지...함께 평생을 살 부비고 살아온 시어머님도 병든 남편이 썩 좋지는 않으신가 보다.

 

 언제나 남편과 나는 아이들 다 키우고 난 뒤 우리 두 부부 손잡고 시골가서 욕심없이 살자고 지금은 노래를 한다만...이 소박하고 보잘것 없는 소원도 우리 두 사람 다 건강할때의 이야기인것 같다. 둘 중 누구하나 병들면 서로를 짐스러워하게 될까봐 두려운 생각이 든다.

 

 언제나 당신 고집대로 한다고 대청마루가 울리도록 고함치던 어른이셨던 시아버지는 이제 집안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밥이 너무 질다든가 고슬하다며 투정하지도 않으신다. 그저 많이만 드리면 좋아하시는 밥을 담으며 가끔 목이 멘다.

찬은 이걸해라, 저렇게 생선은 구워라 하시던 주문도 없다. 집안에 사람의 활기가 없다. 그저 고요한 바다같은 적막 뿐이다.

 

 남편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어렵더라도 어머니가 건강하시니 좀 더 참고 아버지하고 다시 살아 보자고 한다. 부부라는게 이렇게 병들때 서로 의지하려고 만나 사는거지 병들었다고 내치는건 옳지 않다고 요양원 다시 보내드리는건 싫단다.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 보내 드리자고 한다.

나는 어머니 입장도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어머니 편을 들어 보았다.

 

 자식이 넷이다.

병든 시아버지 한 분을 모실이가 없다. 고루한 표현이지만 부모는 열 자식을 길러내도 열 자식은 한 분의 부모를 모셔내지 못한다는 옛말 하나도 틀린게 없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는 신호인가?

팔월의 마지막 밤 비가 내린다.

흐리고 비 내리는 이 밤도 내일 아침이면 가을에 한 걸음 더 다가는 청명한 아침 햇살로 세상 어디든 퍼질 것이다.

구월의 첫날이 오면 거짓말처럼 시아버님이 병환을 털고 일어나셨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나신 것처럼 말이다.

정말 힘들게 보내버린 일년이 꿈이었으면...

이 밤을 마지막으로 이 모든 아픔이 꿈이길 간절히 꿈꾸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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