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아파트내 반려견 산책 금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2

어머니의 꿈이 다시 시작되었다.


BY 꼬시 2006-08-30

검은 머리카락 보다 흰머리카락의 갯수가 훨씬 많은 지천명의 나이의 내 어머니.

그 어머니의 꿈이 다시 시작되었다.

 

40여년전 고향에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 셋을 두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 하나, 꿈 하나 가지고 서울에 상경하셨던 내 어머니.

남보다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신 어머니는 남보다 한 시간 늦게 자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지독하다라는 말을 들으시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셨고, 그렇게  눈 감짝 할 새에 코를 베어 간다는 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셨다. 

3명의 동생을 남보란 듯이 성공을 시키신 건 아니시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각자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시며 불평 한번 없이 장녀의 큰 짐을 꿈으로 바꾸어 헌신을 다하셨다. 첫 꿈을 이루어 내신 것이다.

 

착하시기만 하신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의 가정을 만드셨었다.

그리고 두번째 꿈이 시작 되었다. 그 꿈 속에는 어머니 아버지와 우리 세 남매가 담겨 있었다.

어머는 우리를 담은 두번째의 큰 꿈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다시 한번  날아오르셨다.

그렇게 일구신 내 어머니의 꿈.

그 꿈이 5년전  순식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쓰러지셔서 구급차에 실려가신 어머니.

어머니는 바로 생존의 가능성이 10%밖에 안된다는 수술을 받게 되셨고, 우리 남매를 위해 그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셔 살아 돌아오셨다. 담당 의사들도 놀란 어머니의 사랑과 집념이었다.

그렇게 돌아오셔서 당신의 몸만 간신히 가누신 내 어머니에게 닥친건 아버지의 갑작스런 명예퇴직이었다.

그리고 5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혹독한 시련이었다.

예전의 어머니였다면 온 몸에 전의를 다지고 다시 우리를 품고 날아오르셨겠지만 큰 병으로 인해 갑자기 10년은 늙으신 어머니니는 뛸 수 조차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50줄에 들어선 아버지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으며, 창업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세상은 정말 냉정하였다.

그동안 일구신 터전을 다 잃으신 내 아버지와 어머니.

 

또래들보다 조금 더 일찍 결혼해 출가외인이 된 큰 딸인 난 해드릴 수 있는게 없었다.

그래서 더욱 밤마다 아픔에 몸부림을 쳤고, 그 힘든 시간속에 중, 고등학교를 다닌 내 동생들 얼굴에는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그나마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란 어머니의 꿈과 사랑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지 않았었을까...

긴 시련에 이젠 더 이상 어찌 할 수가 없겠다 싶은 그때

아버지가 정말 기적처럼 재취업을 하셨다.

그땐 이미 어머니의 꿈의 결정체였던 집은 더 이상 어머니의  아니였기에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셔야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 시작하시겠노라고 하셨다.

 

우리의 보금자리가 바뀌었다. 삶이 바뀌었다.

아버님은 예전의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계시며,

시련속에 한층 성장한 내 동생들은 방학때면 어머니를 위해 일을 한다.

어머니는 그러한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새 보금자리를 더욱 따스한 곳으로 만들려 오늘도 열심이시다.

작지만 서로 부대낄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겼기에 사랑이 충만할 수 있는 곳.

가진 것 보다 잃을 것이 아직은 더 많지만 그래도 내 어머니는 웃으신다.

다시 양 날깨를 펴고 파란 창공을 향해 날아 오를 수는 없으시지만

앞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갈 수 있으시다며 온 힘을 다해 한걸을 내딪기 시작하셨다.

 

어릴 적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큰 사랑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한발 한발에 박수를 보내며 다시 일어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