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시골 촌년(?)들 모임에 남편들까지 동반을 해서
아직도 끈적한 우리네 정을 확인하고 헤어졌었는데 아쉽게도 그날 참석을 못한 한 친구가 있었다.
면소재지에 있었던 초등학교엔 하루에 30분간격으로 차가 털털거리는 시골길을 먼지 날리며 달렸고 그 친구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영락없이 지각을 하고야 만다. 그나마 시간이 맞아서 달려오는 버스를 세워서 타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2-3교시에 베시시 웃으면서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위를 그린다면 그 친구집은 동쪽으로 끝 동네이며
면소재지의 처음이기도 했다.
그러니 걸어서 학교를 오려면 어른 걸음으로도 족히 한시간 이상이 걸릴만한 거리이니 조막손 주머니에 찔러넣고 터덜터덜 걷는 걸음이야 두시간이 족히 걸렸을께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낭만적인 분이셨다.
집앞 조그만 개울에서는 낚시를 즐기셨고 글도 잘 쓰셨고...딸만 셋을 두시고도 어느하늘아래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행복해 하셨던 분이었다.
중학교밖에 없었던 면소재지이고 보니 고등학교는 친구들은 수원이고 오산이고 안양으로 뿔뿔히 흩어져야 했다.
고3어느날, 친구에게는 어린시절 그 낭만을 전달해주시던 전령사인 아버지를 잃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친구는 결국 대학 입학을 포기했고 일찍 사회에 첫 발을 내 디뎌야 했다. 그리고 엄마와 여동생 3명을 데리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아버지가 남겨놓은 재산을 지켜가면서 난 아마도 토지에 나오는 서희를 닮은거 같아..라고 할 정도로 생활력 강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같이 생활을 하다 튼실한 신랑만나 잘 살아보기로 했던 꿈도 어느하늘 날버락같이 무너져 남편은 결혼전 빚을 친구앞에 까발리고 말았다.
또 시름시름 앓아갔던 친구..맘고생 몸고생을 해가면서 아름아름 남편의 빚을 갚아가다 겨우 작년에서야
나 이제 빚 다 갚았어 ....내가 이렇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하는건지 원망을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고..만감이 교차한다고..
그런친구는 아직도 아이가 없다.
결혼한지 십여년이 되었는데도...나같은 천덕꾸러기 인생에 하느님도 아이를 주시지 않을꺼야 내가 이런 현실에서 아이는 제대로 키울 수 있겠어 그러니 아마도 안주는 것 일지도 몰라..다 포기했어 아이고 뭐고...남편도 낼 모래면 오십이고 풍이 와서 걱정이기도 하고 그래도 그 고물고물한 입에서 나오는 젖내가 너무나도 맡고 싶은데...되려나 몰라..니가 늦둥이 봤을때 나도 자연히 되려니 했었는데..
그렇게 친구는 불임시술에 들어갔고 그 모임하던날 나오질 못했던 깃이다.
잘될꺼야...
그런데 어제 문자가 날라온다.
\'나 실패했어.....동생은 힘들어서 입원했구...난 그래도 언니이고 보니 정신을 차려야지.\'
막내여동생도 결혼한지가 오래인데 아이가 없어 같이 동지삼아 시술을 받았는데
동생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입원까지 했단다.
\'처음 부터 너에게 젖내나는 고물고물한 아이를 주셨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다시 힘내자...\'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그냥 문자로 내마음을 날려보냈다.
오늘도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평상복을 가을빛 부서지는 하늘 아래서 팔고있을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모레쯤은 달려가서 점심 한번 먹고...힘내자고 용기를 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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