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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아라비안 나이트


BY 라헬 2006-08-30

정말 먹고싶었던 것은 산천어 민물회가 아닌 닭갈비였어.점심에 닭갈비를 먹고 바로 광주로 가자고 했지만 춘천까지 오는데 네시간넘게 허비했으므로 늦은점심을 산천어회로 먹었으니 곧바로 닭갈비를 먹는것은 무리였지.하여 하룻밤을 춘천에서 보내고 다음날 일찌기 출발키로 했어.어차피 닭갈비를 먹자는 것이니 닭갈비골목 부근에 숙박할곳을 찾아야했지.우린 명동닭갈비 골목 주변을 열두번도 맴돌이 했으나 평소에는 그렇게 눈에 잘띠던 모텔 모 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모텔찾기를 거의 포기하고 시외로 나가려는 찰나에 내가 소리쳤지 앗~!저기 모텔이다 모텔.남편도 나도 무슨 보물섬이라도 발견한것처럼 흥분해서 비좁은 골목길을 마구 헤집고 모텔주차장으로 들어갔어.킬킬킬.이때쯤 한번 웃어주는 센스?그걸 뭐라고 불러야하는지.그 주차장입구에 주루륵 쳐져 바람에 팔랑거리며 흔들리는 커텐같은거.오색줄이 대부분이지만.아뭏튼 모텔주차장에 들어가자 곧 젊은이가 뛰어나와 새로 주차시킬테니 키를 주라고 했지.

우리는 가방을 하나씩 들고 안내데스크앞에 섰어.종업원이 그러더군.브이아이피 방은 다 찼구요,특실하고 일반실이 남았거든요?어떤방으로 드릴까요?엘리베이터앞에 우스꽝스럽게도 레벨에 맞는 방의 사진이 부끄럽게 걸려있었어.특실은 침대가 둥근거였는데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간 남편이 소리쳤어.필시 소리치려고 한것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어.일반실로 주세요!엥?일반실?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말했어.아니예요 특실로 주세요.특실요.만원 더 쓰지?남편은 눈을 함초롬히 뜨고 서둘러 계산하는 나를 더 이상 말리지 않았어.

모텔.선인장.모텔 선인장.오래전 그런 제목의 영화가 생각났으나 모텔의 이름은 선인장이 아니었어.조금 어려운 외래어였는데 처음부터 외울생각이 없어서인지 저장되지가 않았어.놀라움에 나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어.히야......죽이네..호텔보다 더 좋은거야?모텔이?가방을 내려놓고 도로에서 파는 먹다남은 옥수수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나는 감탄사를 연방 날렸는데.급구 일반실로 가자던 남편도 매력적인 특실앞에는 어쩔수 없이 만원을 잊어버려야 했어.일반실보다 만원이 더 비쌌거든.

샤워한다고 들어간 남편은 꽤 오랫동안 나오지않았는데 안마풀옆 샤워장에 있는 스팀사우나를 했어.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나온남편은 돈이 좋긴 좋네.사우나실도 다 있고.정작 특실로 가겠다며 종업원앞에서 창피한줄도 모르고 씩씩하게 계산을 한 나보다 특실이 주는 서비스에 더 만족스러워 하는 남편이었어.난 캄캄하고 막혀있는걸 싫어해서 은은하고 유혹적인 부분 전등을 마다하고 온통 환하게 전등을 다 밝혔어.원형침대 아래에도 빙 둘러서 붉은색불이 켜졌는데.그것은 왠지 괴기스러웠어.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침대에 앉아 텔레비젼 채널을 꾹꾹 누르며 돌렸어.나도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안마풀이 신기해 물을 가득채우고는 들어앉아 벽에 붙여져 있는 설명서를 읽어가며 버튼을 꾹꾹 눌러 보았지.꾸루르르르.욕조 사방에서 공기가 나오면서 거품을 내주었고 또 다른 버튼을 꾹 누르니 파랑 빨강 불이 교대로 번쩍번쩍거렸어.싸구려 나이트클럽 스테이지 처럼 너무 웃겼어.그러다 나는 얼른 버튼을 눌러 둘다 꺼버렸는데 올봄 태국으로 여행간 신혼부부가 이런 풀에서 감전사 했다는 뉴스가 번득 떠오른거야.

무슨망신이람...우린 신혼부부도 아닌데.뉴스를 타기에는 부적절한 나이라고.남편은 아직도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이승엽경기를 찾았는데 프론트에 물어보니 이승엽경기채널은 없다고 했지.우린 분위기 좋은 침대보다 이승엽채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애들이 알 까닭이 없지.그렇다고 이승엽선수가 우리 조카나 먼친척이라도 되는것이 아니지만 요즘 그가 주는 즐거움은 어느새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있다는 얘기도 되지.

멀뚱히 창문도 없이 사방이 꽉 막힌 방에 있느니 산책이라도 하다가 배가 혹 꺼지면 닭갈비를 먹자며 밖으로 나왔어.춘천은 언제나 고요해.전혀 소란스럽지가 않아.예전에도 그랬을까? 거리를 오가는 젊은 아가씨들이 참 예뻤어.서울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는 스타일.그리고 차분한 자태.아마 순박한 아름다움이랄까? 등짝을 훤히 드러내놓고 걸어다니는데도 이뻤거든.천박해보이지 않은 섹시함이 춘천의 밤을 기품있게 해주었어.

닭갈비골목은 역시 붐볐는데 소문난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이 확연히 구분되었어.더 이상 발디딜도 없는 집앞에 사람들은 서서 기다렸으며 상대적으로 한산한 집은 두엇씩 내다보며 이리 들어오세요 닭갈비 맛있어요..하며 손님을 불렀는데.마음약한 남편은 손님한명도 없는 입구의 첫식당으로 가자며 나를 끌어댕겼어.난 싫은데.이왕이면 소문나고 맛있는집에서 먹자,아니다 조용한데서 먹자,결국 남편에게 이끌려 정말 손님한명없는 식당 한쪽 귀퉁이에 앉았어.다행이군.여기서는 이승엽야구를 볼 수 있으니.

손님이 없어서인지 의욕도 없어보이는 식당아줌마가 겨드랑이를 다 드러내놓은 헐렁한 티를 입고 성의 없이 닭갈비를 가져와 철판에 볶으면서 연신 주인할머니 흉을 보았지.전혀 식당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손님이 더 떨어진다는 둥...뭐.들으나 마나 소용도 없는 얘기를 우리앞에서 쏟아냈어.역시 맛없어.우리배가 허기를 느끼지 않음도 이유겠거니와 배불러도 맛있어야 할 우리의 닭갈비가 제맛도 없이 심심하여 전혀 독특한 맛이 없었거든.실패야.닭갈비를 한사코 먹겠다며 춘천에서 하룻밤을 헌납한 것에 비하면 그 맛은 실패라고.

배가 너무 불러서였을까? 모텔로 돌아온 우리는 에어컨을 틀다 꺼다를 반복하며 배부름에,더위에,그리고 에어컨때문에 두통에 시달리면서 만원이나 더 주고 들어온 특실의 타원형 침대에서 서로 밤새 괴로워 하다가 이튿날 새벽 네시경에 일어났어.그리고 뉴스를 틀고 지난 저녁부터 보고또 본 뉴스를 일곱시까지 궁시렁거리며 봐야했지.덥기전에 출발하자며 마치 시간에 맞춰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처럼 남편과 나는 빠른 움직으로 모텔을 빠져나왔어.모텔?뭐 별거 없는거잖아? 남편은 아직도 스팀사우나가 있는 샤워장이 신기한지 아침에 한번 더 하고 나오는건데..하며 아쉬움을 내비쳤어.이제는 모텔의 야릇한 어감이 주는것보다 뜨끈뜨끈하게 어깨를 쏘여주는 스팀사우나가 더 필요한 나이.우린 어느새 이렇게 퇴화아닌 진화되어있었어.사랑해.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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