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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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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BY 개망초꽃 2006-08-08

진한 밤색 서랍장과 텔레비전만 떠드는 방엔 요강이 놓여있었다.

외할머니는 올 해 아흔다섯이다.

우스개 소리로 아흔이 넘으면 죽은 년이나 산 년이나 똑같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살아 있는 송장 같았다.

온 몸의 세포가 죽어가고 있어서 피부는 검은 반점으로 무늬를 놓고 있었고,

탄력을 잃어 뼈에서 피부가 겉돌고 있었다.

방안에서 화장실 냄새가 나서 요강 때문인 줄 알았더니

외할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향기로운 목욕비누로 피부가 까지도록 씻어도

향수를 듬뿍 쳐 발라도 없어지지 않는

무덤으로 가고 있는 냄새.


요강은 두평남짓한 방에 가구처럼 놓여 있었다.

냄비랑 한 몸에서 나온 스테인리스 요강이었다.

뚜껑은 꽃무늬가 박힌 범랑냄비 같았다.


8월은 찜질방 더위를 피하러 피서를 간다고 하지만

나는 외갓집으로 외할머니를 뵈러 춘천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자 손을 잡고 어린애처럼 울려고 하셨다.

“너 왔냐? 온 몸이 너무 아파, 빨리 죽지도 않고…….에구구~~근데 식혜 먹고 싶어.”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는 나를 부르더니

요강에다 손짓을 하셨다.

“버려, 냄새나 버려.”

물로 헹궈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내가 어릴적엔 밤에 볼일을 본 요강을 할머니가 볏짚에 재를 묻혀 씼어 주셨는데

할머니가 애기가 되어 내가 요강을 씻었다.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것이 세상살이인 것을......


막내이모는 할머니 팬티마다 일회용 기저귀를 붙여 맨 아래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었다.

나이가 들면 소변도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생각해 본다.

늙어 가면 용변도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된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자꾸자꾸 외롭다고 하신다.

친구들도 다 떠나고 자식들도 늙을 대로 늙은 어머니와 대화를 오래 하지 않는다.

결국은 누구나 혼자인 삶.

혼자서 세상을 떠나는 삶.

인생자체가 외롭고 외로운 것.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읊었다.


외할머니는 종일 오단짜리 서랍장과 혼자 왕왕 떠드는 텔레비전과

반짝이는 스텐 요강과 하루를 살고 있다.

죽은 년이나 산 년이나 똑같다는 늙을 대로 늙어 더 이상 늙을 것 같지 않은 나이.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않는 인간.

그래도 나 잘났다고 떠드는 인간.

나이들면 용변도 내 마음대로 조절 못하는 인간.

요강에 있는 오물처럼 냄새나는 인간.

그 인간이 바로 나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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