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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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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BY 일상 속에서 2006-07-29

팔자 좋은 고양이도 이렇게 편히 잠이 드는구만...저는 이게 뭔지. 다들 잘들 지내시죠?

애들 방학이라고 점점 더 짬이 없어서 들어오지도 못하네요. 점점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 같아요. 비가 많이 온는데 여러분들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들 건강하시길 바래요.

 

몇 번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단잠을 잔 것 같은데 어쩌다 깨어났는지... 몇 시쯤 됐는지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문자가 2개 와 있었다.

온 시간을 보니 내가 깨어 난 시간과 얼추 비슷했다.

문자가 왔다는 진동에 잠에서 깬 것 같다.


원상엄마라고 아빈이 1학년 때 알게 된 친구였다.

근처에서 40평 남짓한 빌라에서 살다가 4년 전 전라도로 내려간 친구의 삶이 나날이 힘겨워지는 것이 곁에서 지켜봤던 나로 써는 안타까웠다. 그래서 간간히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번은 서울에 들리는  짬을 내어 나를 찾아와 만나기도 했던 그런 친구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토록 유지하는 성격의 나와 일맥상통하는 친구라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는 사이다.


언젠가 너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삶이 궁상스럽다보니 우리 점점 사이가 격조해지네. 잘 지내지?’ 라고 했던 것 같다.

답장이 없었다.

바쁜 일이 있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틀이나 흘렀을까?

발신자 표시에 ‘원상엄마’라고 찍히는 전화가 왔다.

반갑게, “여보세요.” 했더니, 뜬금없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누구냐고 묻고 싶은 것은 나였는데 상대방이 먼저 그렇게 물었다.

“네? 원상엄마 핸드폰 아닌가요? 전화 거신 분은 누구신지요?”

의아한 나 역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원상엄마 남편인데요.”

“아!!! 원상아빠, 저 아빈 엄마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어떻게 원상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주셨어요?”

“아빈엄마... 잘 지내셨지요? 난 누구라고...여긴 비가 많이 오는데 서울은 어때요?”


원상 아빠는 물음과 상관없는 동문서답을 했다. 그때, 서울은 비가 오지 않았다. 서울의 상황과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원상엄마는 뭐하냐고 물으니 잠을 자고 있단다. 나중에 통화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왠지 찜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만났을 때 한다는 말이 보험 설계사를 해보겠다는 말을 했던 원상엄마가 혹여...바람이라도 나서 원상아빠가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 아닐까...잠깐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었다.


이상한 일은 곧바로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원상엄마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문자가 온 것이다.


‘아빈아 내 인생은 왜 이러니 원상아빠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내가 울게 될까봐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어. 술 한 잔 하고 있는데 생각나더라. 좋은 꿈 꿔.’


정신이 바짝 들어버린 나는 ‘무슨 소리야. 어쩌다가’ 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혼하재. 안한다고 그랬어.’


내 답장에 바로 다시 답장이 왔다. 전화세에 목숨 거는 나였지만 전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야?”

“장사할 때부터(2년 전 크게 호프집을 운영했지만 머지않아 빛만 남긴 장사였다.) 만났나봐. 그 년과 상관없이 헤어지제. 애들만 아니면 나도 헤어지고 싶어. 힘들다.”


전에 곁에 살 때, 우리는 좋은 술친구였다. 그래서 원상아빠와도 가끔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원상아빠의 바람...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가정적이고 착실한 그 분이 어쩌다가...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지, 무슨 말을 한다고 의안이 될 지 막막했다. 나 역시 힘들면 혼자서 술잔을 잘 기우리는 성격이지만 원상 엄마가 혼자서 그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스러웠다.


“혼자 술 먹고 그러지마. 원상아빠가 심성이 모질지 못하잖아....\"

쉽지 않겠지만 무시하고 다른 곳에 신경을 써보라고 말했다.

통화중에 아빈아빠 없냐는 걱정을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tv보는 것이 싫어서 아빈이 방에서 자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잠시 두서없는 얘기를 떠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발신자 표시에 찍힌 원상엄마의 번호는 낯선 거였다. 전화를 바꿨냐는 나의 물음에 원상아빠와 전화기를 바꿔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신이 생겼으니 당연히 아내로써 핸드폰부터 감시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뒤늦게 언젠가 내가 보낸 문자에 전화했던 원상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말을 끝으로 메일 주소를 알려주라고 했다.

전화로 두서없는 얘기를 하는 것보다 의안이 될 글로 몇 자 적어주고 싶어서.

메일 확인을 잘 안하지만 이제 보겠다며 주소를 알려줬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남들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일을 작성해나갔다. 그리고 보내기를 하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주소라며 발신이 되지 않는다고 문구가 떴다. 헛수고를 한 격이다.


미용자격증까지 있고 눈이 동그랗게 예쁜 원상엄마와 나는 성격이 비슷하다.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족이라면 목숨을 거는 헌신적인 여자면서 화끈하고 괄괄한 것까지.


가끔 밖에서 안주 시켜놓고 술을 먹을 때 남는 안주까지 챙기는 알뜰한 성격을 갖고 있는 원상엄마가 속으로 난 많이도 부러웠다.

가족에게 헌신적인 남편, 기타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사교성 짖은 남편을 둔 그녀가 바르는 기십 만원 하는 화장품이며 시댁과 친정에서 공수해주는 살림들도, 호화롭게 사는 집이며 재테크를 위해 준비했다는 하남의 아파트며 중형자가용까지...

난 모든 것이 부러웠다.

가끔 외국으로 여행도 다니고 들여오는 고급 술 들도 부러웠다.

자존심하나는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나였기에 겉으로 내색한 적 없는 나였지만 원상네 다녀오면 내가 사는 삶은 그렇게 거지같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친할 수 있었던 것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도 늘 나대지 않고 겸손했던 원상엄마의 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업이 바닥을 들어내고 시골로 내려가, 제과점에 호프집에 덤프차 용역이며 벌이는 일은 많은데 되는 것이 없어서 점점 빛만 늘어나고 살 집도 없어져서 장가가지 않은 남동생의 아파트에서 가족이 얹혀산다는 얘기를 듣고 안쓰러워했던 나였다.


언젠가 돈이 없으니 친구도 사라진다는 하소연을 했던 원상엄마.

그래도 남편이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에 희망을 갖고 살던 친구였건만...

세상이 끝난 듯한 절망적인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아니, 주부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불철주야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주부일 텐데... 그런 여자이기에 어느 부분에서 틈이 생기면 절망적이 되는 거겠지...


나 역시 무식을 용기 삶아 지금껏 살아왔지만 점점 주변과 비교하고 재가면서 점점 위축되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런 것이 서글픈 반면 ‘이게 연륜이란 거야. 이렇게 배워가는 거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참아간다.


그런데....누굴 위해 참아야 하는 거지?

애들 때문에... 남편 때문에...친정 부모님 때문에...주변의 체면 때문에...

날씨까지 구질구질 요즘은 해가 어찌 생겼는지 조차 헷갈릴 판이다.


오지랖 넒은 나는, 이 늦은 시간에 지구에 종말이라도 온 듯 절망적인 한 친구로 인해서 더욱 우울하다.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그 친구 곁에서 말벗조차 돼주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