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서문인 <작가의 말>입니다.
늘 그랬듯이 글이 써지지 않을때는 새 글쓰기를 해놓고 글을 씁니다.
귀를 기울이고 <그 여자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님들께 제 마음을 열어놓고 싶었습니다.
내마음은 이런거예요...이해하실 수 있겠어요?
이해가 안되신다해도 이해해주셔야해요. 꼭 그래주세요. 하고 말이지요.
언제나 고개 끄덕거리며 제이야기를 들어주었듯이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요.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
序言
서른 아홉해를 살면서 한번도 벗어나 본적없는 고향을 떠나면서 자꾸만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며칠 후면 경매에 넘어갈 집안을 한번 더 둘러보았어요.
아직 내려놓지 못한 거실벽에 걸려있는 아이들의 사진. 책장 아래칸에 꽂힌 아이들이 즐겨보던 동화책.
바구니에 담겨져 주인을 잃은 장난감과 아홉살 딸애가 좋아했던 금발머리 바비인형이
\'다들 어디가세요.\' 하고 슬픈눈으로 물어보는 것 같았어요.
신발장을 열어봅니다.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부터 신던 아이들의 신발이 조르르 넣어져있습니다.
급하게 시골 할아버지집으로 떠나가느라 챙기지 못한 흙 묻은 아이의 신발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뒤에 서 계시던 어머니는
<어서 가거라. 산사람은 다 살게 되어있다. 네가 정신을 놓치 않아야 아이들이 산다. 어서 가거라.>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텨봅니다.
<뒤돌아보지말고 앞만 보고 살아야지. 아이들 생각하면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질거다.>
어머니의 말에 정신을 챙기고 집을 나섭니다.
한때는 사랑하는 아이의 웃음이 쏟아졌던 아름다웠던 우리집.
잘있거라.
놀이터의 그네가 흔들립니다.
어디선가 엄마아~ 하고 귀여운 내아이들이 달려올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합니다.
학교 담장을 따라 걸어갑니다.
아무래도 살던 집을 꼭 다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전봇대를 앞에 두고 뒤돌아보는데 한없이 작아지신 어머니가 서서 바라봅니다.
어서 가라고 손짓합니다.
<어여 가~ 뭐 돌아볼게 있다고~ 어여~ >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셨을거예요.
어머니가 팔을 들어 눈가를 훔치며 한쪽팔은 빨리 가라고 내게 손짓합니다.
뒷걸음질 치는데 등뒤에 맨 베낭이 자꾸 전봇대에 부딪힙니다.
나는 고향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아요. 단 한번도 고향을 떠나보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를 가야하는데요. 그래도 가야겠지요.
어디든 가서 돈벌어 아이들 데리고 올 방을 구해야 할려면 말이지요.
알.았.어.요. 어.머.니.
갈께요.
내 살던 집에서 중앙여고 정문을 지나 장미문구점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골목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시계탑 버스정류장까지 전봇대가 열여덟개였어요.
그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전봇대가 열여덟개인것.>
시골에 사는 사촌오빠가 모자를 삐딱하게쓰고 옆구리에 가방을 끼고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들면 고향이라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골목안으로 들어오면
그 목소리조차 얼마나 불량스러워 보였던지 그래서 그 노래가 무조건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이 노래를 가슴으로 불러본 적이 있습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도시의 거리에 서서 빵을 굽고 수제비로 끼니를 채우며
아이들과 다시 함께 살면서 흩어지지 않으려 이리저리 떠돌던 그 날들.
장터로 흘러들어가 장꾼이 되어 살아온 그 몇년 세월,
수도 없이 가슴에서 흘러나와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은 노래가 이 노래였어요.
이제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찾아간 집에는 장미넝쿨만 무성하게 대문을 감싸고 있었어요.
놀이터의 그네를 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옛기억이 나는가 봅니다.
<오빠하고 나하고 저 그네에 앉아있으면 외할머니가 맨날맨날 그네 태워줬는데...>
저 처럼 아이들도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해요.
어머니.
이제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그곳을 떠나옵니다.
제게 고향이 생겼어요.
누군가 밀어내도 더 이상 내려 갈래야 더 내려갈 곳이 없는 ... 가장 낮은 자리.
무슨일이 생기면 두다리에 힘주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자리.
제각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사는것이 틀린 사람들이 모여들어 힘이 넘치고 인정이 넘치는 그곳은 장터입니다.
내 生에 가장 어려운 시절 찾아들었던 장터에서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을만큼 막막했던 그 날들이
걸음을 늦추며 내게 걸어왔습니다.
나는 강해졌으며 얼마나 단단해졌는지요.
슬프고 외로웠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글을 쓰는 일이란 제 안에 엉겨있는 잘못된 것들에 대한 해체라든가
기억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날들에 대해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나는 미천하고 비루한 장꾼입니다.
그래도 하늘을 보고 웃습니다.
다정하고 변함없고 순수하고 착하고 재미있고
멋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을 이웃에 두고 싶습니다.>
고향이 되어버린 장터에서의 그 여자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신 제 아름다운 이웃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
◈ ◈ ◈
울지 마라.
서러운 것은 너뿐이 아니다.
지는 꽃은 비명도 없이 고요하지 않더냐.
울지 마라.
생각이 젖으면 마음도 젖고 눈도 젖는다.
젖은 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생각해 보아라.
울지 마라.
춥고 아픈 것은 나 하나로도 족하다.
내 마음이 너를 가려줄 우산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옥천장이였습니다.
여늬 때처럼 점심을 먹고 물건이 있는 전으로 돌아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를 향해 다가오던 두여자가 제 앞에 서서는 무언가 말을 하려해요.
\"뭐 필요한 물건 있으세요?\"하니
\"저기 책에 싸인 좀 해주시겠어요?\"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냅니다.
<아... 세상에......>
어디서 사셨어요?
명륜당서점에서요.
언제요?
방금요.책방주인이 그랬어요.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라구요.
그랬어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제 세번째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분이 책을 들고 다녀가셨고 저는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택배아저씨가 책을 경비실에 맡겨놓았다고 전화가 왔었거든요.
지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슬픔의 깊이가 길어 헤어나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걸어가는 내 순탄치 않은 어두운 길에
님들께서 보내주신 댓글과 따뜻한마음은 빛이 되었고 지팡이가 되어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