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의 오랫만의 여름휴가는 매일 매일 달콤하기만 하다.
답답했던 도시의 회색을 떠나 초록의 전원 풍경은 도시에서의 복닥거림에서 일시적으로 해방시켜준다.
며칠 밥을 못먹은 핸폰은 울리질 않고
\'에고 저녀석도 밥을 줘야하는데....\'하고 충전을 했다.
충전을하고 핸폰을 작동시키니 어디서 음성메시지가 들어와있다.
\'요즘 누가 음성메세지를 남겨 촌시럽게..걍 확 지워버릴까? 혹시 스팸일지도 모르잖아...
에이 그래도 궁금하니 한번 들어보자...근데 비번이 뭐였더라....\'
잘 사용안하던 것이라서 비번도 횟갈린다
서너번 비번을 쳐서 겨우 음성메세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나야...너 왜 전화가 안되는 거니....어쩌면 좋아...어쩌면....흑흑흑...
J가 췌장암이래.......흑흑흑....너 음성확인하는대로 전화해.....\"
페루에 사는 친구의 오열하는듯한 음성이다.
난 며칠동안 친구의 정밀검사결과가 어찌 나왔는지 깜빡잊고 있었던것이다.
췌장암이라니....아니 그럴수도 있는거야? 아무일 없던것같이 우리집에 와서 밥도 먹고
조금 힘들다고만 했던 아이였는데 아니야..오진일꺼야..요즘은 그런일도 많다던데..
우린 늙어서 여행도 다니고 십원짜리 고스톱도 치면서 깔깔거리면서 살기로 했단말야..
순간 아찔한 현기증에 눈앞이 흐려왔다.
한국에서 힘들게 어린딸하나 데리고 십여년간 홀로서기를 하던 아이였는데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모든 일 다 접고 미국으로 떠나서 3년만에
떡두껍이같은 아들하나 들쳐업고 나타난 강인한 아이였는데...
\"엄마 나 병원에 가봐야 겠어 지원이좀 봐줘....\"
아버지가 버스정거장까지 오토바이로 태워줘서 오랫만에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올라탄 버스는 지나치는 풍경마다 옛 어린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토해낸다.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
\"어찌 된거니...이게무슨 날벼락이야...그거 좀 힘든병아니니?\"
\"응..........여기저기 알아보니 췌장암은 발견되면 바로 말기란다....어쩌면 좋으니...불쌍해서...\"
\"나 지금 병원가는길인데 너 언제 올꺼니?\"
\"음...회사 끝나고 저녁에....\"
병원에 도착을 했다.
정문을 통과하는 택시의 미끄러짐이 그리도 무게감있게 느껴짐이 처음이다.
병원 현관을 통과하려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친구의 얼굴을 봐야하지.....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되는거야...
어떤방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날 바라보는 친구는 어떤 표정일까....
무슨말로 위로를 해야하지....
머리속이 뒤엉키고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자 생각은 하얀 종이장처럼 빛이 바래져갔다.
병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이걸 타면 날 친구한테 데려다 줄텐데...
그냥 돌아갈까?! 너무 겁이난다.
나 눈물이 흘러나오면 어쩌지.....
\"똑똑똑....\"
닫힌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친구의 친정엄마 얼굴이 먼저보인다.
엄마등뒤로 친구가 침대에 누워있다.
이미 얼굴에 황달기가 있어서 얼굴이 노랗게 떠있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매캐해진다.
\"지지배 울긴...나 괜찮대...다른사람보다 예후가 좋다더라...\"
오히려 친구가 울고있는 날 달랜다.
\"너두 건강검진 일년에 한번씩 꼭 받어라...난 그 좋다는 미국가서 살면서도 왜그런걸 안하고 살았는지\"
\"..........\"
\"나 묵은 김치가 왜 그리 먹고 싶으니....아프니까 먹고싶은게 많은가봐,
놀러가는거 이제 못할지도 몰라...병원서 여름나는거 아닌지 몰라..\"
\"지지배 빨리 좋아져서 아이들 데리고 친구들이랑 동해안 가서 실컷 놀다오자....\"
\"그럼 얼마나 좋겠니....\"
\"그렇게 될꺼야...그리고 울엄마집에 묵은김치가 있거든 내일 갔다주께....\"
오래머무를수가 없다.
친구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눈에 다시 뜨거운 눈물이 고인다.
제발 예후가 좋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