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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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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의 불만


BY hayoon1021 2006-07-22

 

 

과일값이 너무 비싸다. 제철 과일조차 값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고기는 가끔 먹어줘도 과일은 왠지 사치 같아서 장에 가도 선뜻 손이 안 간다. 한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랑 전화통화를 하다가 요즘 과일 구경 해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고 엄살을 떨었다. 한데 좀 전까지도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던 그 친구의 반응은 좀 뜻밖이었다.

‘어머, 너 그 정도로 힘들었니? 그래도 과일은 먹고 살아야지, 그러고 어떻게 사니? 너도 나가서 벌어야겠다.’ 친구는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과일도 못 먹고 사는 내 생활을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그 친구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해도 밥을 굶는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동정을 받으니 나로선 좀 씁쓸했다. 그 친구는 한 마디로 요즘 세상에 과일도 못 먹고 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도 과일은커녕 하루 세 끼 때우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들도 분명 있다. 각자의 처지나 관점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친구가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내게 강요하고 멀쩡한 나를 동정했다는 사실이 섭섭한 것뿐이다.

얼마 전 마트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그날 나는 식용유를 고르고 있었는데 마침 옆으로 온 한 여자가 올리브유를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비싸서요,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먹는 거 갖고 아끼는 게 제일 미련하다는 둥 애들을 생각하라는 둥 날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이야 구구절절 다 옳은지라 나는 찍소리도 못 하고 그 설교를 끝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싼 거 찾는 사람들도 몸 귀한 줄은 안다. 다만 내 형편에 맞게 사 먹을 뿐이다. 그런 사람더러 몸에 좋으니까 무조건 올리브유 먹어라 하는 건 좀 지나친 간섭 아닌가?

나는 아직 학원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제 갓 학부형이 된 나로선 천천히 아이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이다. 하지만 분명한 생각 하나는 가정경제에 무리가 갈 정도로 학원에 목숨 걸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이웃집 여자는 나와 반대다. 남편 사업이 어렵다면서도 학원을 세 개나 보낸다. 그 집 아이와 우리 애는 초등학교 1학년 동갑이다. 우리 애는 학원차로 등하교 하는 아이들과 달리 혼자 걸어서 학교에 다닌다. 그게 그 여자 눈에는 애를 방치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내 얼굴 볼 때마다 얼른 학원 정해서 보내라고 야단이다. 나는 아직 어떤 걸 시킬지 결정 못 했고 무엇보다 남들 다 가니까 덩달아 보내는 식은 싫다고 했다. 그러자 입을 삐쭉거리며 그 여자가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돈 쌓아 놓고도 안 보낼 자신 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실은 돈 때문이면서 남다른 교육철학이 있는 척하는 걸로 그 여자가 날 오해하는 이상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남편 일이 어느 정도 풀리면서 나는 작은애 세 살 때 나갔던 직장을 그 아이 다섯 살 되던 해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동료 한 명이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애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악착같이 다니던 직장을 왜 그만두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악착같이 다닐 때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고 또 그만두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런 건 관심도 없고 단지 내가 일을 그만 둔다는 사실만 물고 늘어졌다. 둘이 벌어도 아이들 뒷바라지하기 힘든 요즘 세상에 덜컥 집에 들어앉으려는 내가 그의 눈에는 직무유기 하는 엄마쯤으로나 보였던 것이다. 나는 물질적인 면을 포기하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뒹굴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 뿐이고, 그 선택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가끔 나는 궁금해진다. 그 동료가 그토록 확신에 차서 나를 비난할 수 있었던 건 맞벌이가 대세인 사회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한 그만의 신념이었을까 하고.

신혼을 지하방에서 시작하고 두 번째로 이사한 집이 지금 사는 18평 빌라다. 삼면으로 창이 나 있어 바람 잘 통하고 볕이 잘 든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3년을 잘 살았는데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주인의 은행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우리가 사게 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배장판 새로 하고 요모조모 쓸모 있게 집수리도 하고 나니 차츰 내 집이라는 실감이 났다. 2층이라 높이도 적당하고, 게으른 내가 건사하며 살기에도 알맞은 평수이고, 좁은 데서 부대껴야 식구들도 더 정이 날 것이고, 특히 베란다 창을 가득 덮는 단풍나무를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으니 어쨌든 잘된 일이라고, 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런데 모처럼 놀러온 아는 언니가 그런 내게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좋으면 아파트 들어갈 돈이 있어도 계속 여기 살 거니?’ 나는 그저 지금 내 집에 만족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어째서 언니는 아파트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일까? 내 말이 가식처럼 들렸을까? 

나는 황새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짝 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인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지 않는다. 자신의 주제를 잘 아는 뱁새를 가소롭게 여긴다. 뱁새는 밸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 안다. 저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한데 어우러진 야생화들 덕분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똑같은 모양, 똑같은 목표만 추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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