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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이 폭발하다


BY 불토끼 2006-06-29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몸무게가 60킬로였다.
 그 후 15년동안 떡대크다는 수모를 있는대로 받으며
죽을 고생을 하여 다이어트를 하였건만
60킬로에서 단 몇 킬로도 빠진 적이 없었다.
 
이 몸으로 나 좋다는 남자와 결혼도 했으니
이제 더 이상 서러워 하지말고
생긴대로 살아야지 하고 단념했을 무렵,
신기하게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글쎄다.
어쩌면 내가 독일에 온 후
기후와 풍토가 달라서 그랬을까?
살이 6년동안 1년에  평균 1.5킬로씩 빠지더니
이젠 50킬로가 됐다.

50킬로에 기쁜 사람은 나지만
슬픈 사람은 엄마다.
우리 엄마는
일찍이 내가 단식해서 살을 한꺼번에 빼고
집에 갔을 때,
살빠진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서럽게 우신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집에 전화할 때마다
곰국을 끓여먹어라,
보약을 지어 보내주마,
살은 좀 쪘냐 물어보시기 일쑤다.
한 마디로 엄마는 내가 살빠지는 것에 공포를 가지고 계신다.

해서 부지런히 먹을걸 보내주시는데
 그 횟수가 잦다보니 지금은
미역이니 김이니 멸치니 대구포니 고춧가루 다대기니 해서
우리집 냉장고가 꽉 찼다.

그러다 한번은 별것도 아니었는데
세관에 붙들려 소포가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품목은 고춧가루.
보통 고춧가루도 아니고
엄마가 손바닥만한 땅뙤기에다 자식새끼 준다고
금이야 옥이야 가꾸고 말려 찧어낸 것.
많은 양도 아니고 라면봉지만한 봉지에 든 고춧가루였다.

세관에서 엄마가 보낸 소포를 뜯어보며
양말, 옷가지, 책들은 그냥 주었는데
고춧가루는 음식물이어서 통과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고춧가루 외의 그 허접쓰레한 것들은
정작 고춧가루를 숨기기 위한 ‘관심끌기용’이었는데...

‘법이 그렇다니깐 뭐...’

세관에선 찍소리 못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무척이나 속이 상해있었다.
엄마가 한 철 농사지은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속이 상한 김에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하여 미주알 고주알 다 일러바쳤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늘 법대로 살라고 하시던  시어머니
‘욱’하셔서 당장에 세관에다 전화를 하신 것은.

‘소포를 보면 모르나,
팔려고 들여온 것도 아니고
자식 먹이겠다고 땡볕에서 농사지어서 보내온 걸
그렇게 매정하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들이 어딨냐.
사람나고 법났지 법나고 사람났냐.’
하시며 쩌렁쩌렁 울리게 10분 넘게 공무원들을 야단치셨다나.

‘걔네들 혼쭐을 내놨으니 내일 세관에 가서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라!’

얼씨구 세관에 다시 간 나는
우쭐한 기분이 되어
공손하게 건네는 고춧가루를 받아
김치를 담아 먹었고 찌개를 지져먹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우리 엄마는
절대 항공편으로 소포를 보내지 않는다.
늘 한 달 반이 걸리는 배편으로 소포를 보내신다.
배편으로 보낸다고 세관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거북이등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한 번은 동네 우편취급소에서 엽서가 왔다.
사이즈가 작다보니
우편함 밑에 깔려서
온지 사흘이나 지나셔야 엽서를 발견했다.
사람이 집에 없으니
일주일 안으로 소포를 가지러 오라고 씌어있었는데
이미 사흘이나 지났으니 빨리 가야했다.

한 달 반 전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예전에 읽던 세계문학전집을
소포로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한달음에 우편취급소로 달려가서 소포를 받았는데...  

‘소포에서 쿰쿰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소포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우편취급소 전체에 배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소포 한 귀퉁이가 벌써 누렇게 물이 들어 있었다.
된장을 보낸 것이었다.
한 달 반이나 걸리는 배편으로.
그게 사흘동안이나 우편취급소에 있었으니
그 손바닥만한 우편취급소에 된장냄새가 배인 건
당연한 사실이고.

아닌게 아니라
집에 와서 소포를 뜯어보니
세계문학전집과 된장이 범벅이 돼있었다.
더운 날씨에 된장이 소포안에서 폭발을 한 것이다.

다행히 문학전집이 한권 한권 책 껍질에 쌓여있어서
 책 속은 버리지 않았지만
냄새가 대단했다.

나는 40권이나 되는 책 껍질을 벗겨
물수건으로 된장을 닦아내고는
발코니 빨래건조대에 널었다.

집안이 온통 된장냄새로 코를 찔렀다.
이웃에서 경찰을 부를까봐 겁이 났지만
온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고 나서 소포를 다시 들여다 보니
거기에 된장이 묻은
큼지막한 반찬통이 하나 더 들어있다.
고추장인가 하고 들여다 보니
부글부글 끓어오른 김치와 무말랭이다.

반찬함을 여니
오래된 김치에서 나는
술찌끼 냄새 비슷한 것이 확 하고 풍겨나왔다.
 그 냄새를 맡으니
입안에 침샘들이 활짝 열리고
침이 마구 샘솟는다.
6년동안 잃었던 입맛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나는 오랜만에 얼싸한 기분이 돼
 종종걸음으로 부엌에서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수저를 준비하고
김치와 무말랭이를 종지에다 보기좋게 담는다.

김나는 쌀밥에 거무죽죽한
쉰내나는 무말랭이와 김치를 얹고 꿀꺽 삼킨다.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웠다.
걸인의 찬이었지만 임금의 기분으로.

밥을 먹으며 밖을 보니
발코니 빨래건조대에는
 40개나 되는
된장냄새 풍기는 책껍데기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다.
내가 평생 빨래건조대에 널었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다음엔 청국장을 좀 보내달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