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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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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期


BY 손풍금 200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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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or de llanto\" Acrilico / Lienzo 20x30 cm.

 

예전에 술이 깨어 후회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른들이 그랬다.

\"에미 이제 골병들어 나이들면 몸도 못 움직일거다. 내 사람 내가 아껴줘야지. 누가 아껴주노.

저거 불쌍해서 어쩐댜.\"

 

雨期가 시작되면 어깨위에 바위를 올려놓은듯 몸이 무겁다. 엊그저께 부터는 목 돌리기 조차 힘이든다.

앞선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적이 없었다.

골병이 들었는지 날만 흐리거나 추우면 몸이 견뎌낼수 없이 부서지는 듯 통증이 느껴진다.

친구가 안타까워 하길래 \"걱정할거 없어. 살이 쪄서 목이 안 돌아가는 거니까.\"

그런 말이 나오냐며 어이없는 지 웃는 친구를 보고 나도 웃었다.

 

어제는 비가 많이 퍼부어 전을 폈던 장꾼들이 점심때가 지나자 차례로 장을 접고 있을 때 나는 신이 났다.

양말도 벗고 일부러 고인 물에 발을 담그며 찰랑찰랑 물소리를 들으며 비맞고 돌아다녔는데 마치 내가 가물어 시들어가고 있던 밭고랑에 핀 구절초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즐거웠고 생생했다.

장꾼들이 하나, 둘 짐을 싸가지고 돌아간 후에는 하늘이 맑게 개었다.

밤이 될 때까지 내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했는데 술만 취하면

아무에게나 시비를 붙는 이발소남자가 소주를 병나발로 들이키며 술이 취해가지고는

나물파는 가난한 할머니, 옷파는 힘 없는 할아버지, 끝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는 가없이 피곤한 장꾼들을 향해 시비를 걸고 돌아다녔다.

내앞으로 오길래 헛소리하면 혼내줄 참이였는데

\"동동 구리무 아줌마, 구리무 아줌마,\"하고 부르는 것을 대답없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내가 무서운 사람인걸 아는 지 비껴간다. (어흠~)

 

 

2005년 8월 11일.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비가 어찌나 세차게 내리는지 빗방울이 창문안으로 들어온다. 문을 닫고 앉아있는데 어깨 언저리가 너무 아프다.

밖에는 천둥번개가 요란하다.

\'그래 , 충격요법을 쓰는거야.\' 공주장으로 향했다.

오늘 충남에 호우주의보 내린거 모르냐며 이 빗속에 어디를 가느냐고 친구가 미쳤다고 했다.

어깨에 번개 자외선 치료 받으러 간다고, 나 말리지 말라고 했다.

말리지 말라고 했을 때 그녀는 아마도 雨期의 내 가계부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무도 나오지 않은 공주장.

장사가 제일 잘되는 자리. 그 자리 주인들이 나오지 않았다.

(길게 펴자. 이 황금요새가 오늘은 다 내 자리 인기라.)

 

파라솔을 두개 치고  전을 크게 폈다.

얼마 전부터 팔고 있는 화장품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찰보리쌀을 보조상품으로 팔고 있었다.

(불경기를 대비해서 비상품목으로 이 보리쌀을 파는데 (이건 잘 팔림.)

어떤 아줌마는 나를 보고 이젠 보리쌀까정 판다고 혀를 쯔쯔 차고 갑니다. 사가면서 그러면 기분 안 나쁜데 안사가면서 그런 소리하면 기분 엄청 나쁘고 쪽팔립니당. ㅎㅎ)

 

파라솔을 펼때까지는 비가 소강상태였는데 다 펴고 자리잡고 딱 폼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하는데 예전에는 번개 치는 거 하나도 무서웠는데 오늘은 엄청 무서워서......

천둥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벌떡 일어나 맞은편 약국앞으로 뛰어들어가니 비를 피해 있던 사람이

\"이런날 왜 나와요.\"한다.

 

천둥번개가 칠때마다 무서워서 어깨가 들썩 들썩 올라간다. (번개 자외선치료받고 천둥충격요법 쓴다며?)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들이 차창문을 내리고 빗속에서 내 동댕이 쳐져있는 내 물건과 나를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파라솔이 금새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 젖기라도 한다면 못쓰게되는 보리쌀 푸대를 덮었다.

 

천둥, 번개, 비, 바람이 마치 나를 끝없이 희롱하기라도 하 듯 걷잡을 수 없이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뛰고 옷이 다젖고 파라솔이 동시에 두개가 넘어갔다.

지나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뒹굴고 있는 파라솔을 접고 차를 세워 놓은 곳으로 뛰어갔다.

 

물건을 담는데 앞이 안 보이게 비가 쏟아진다.

화장품이 다 젖고 보리쌀이 젖고 나도 젖었는데 어제 산 책도 빗물이 고인 바닥에서 무겁게 앉아있었다.

비가 가득한 물건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뛰어다녔는지 배가 너무도 고파 눈물이 나올 지경이였다.

길가에 세워놓고 싸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었다.

(가만 있어봐요. 물도 한컵마셔야지. 이러다 죽으면 나만 억울하니께.)

배가 부르니 이제 말이 나온다.

 

아, 우라질~

(집에 도착하니 호우주의보가 해제되었다고 뉴스에서 나오네요. 하늘이 조금 환해졌구요.)

 

그렇다고 내가 기운빠질줄 아나, 천만에.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