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든
뜬금없는 것, 뜨아한 것,
되통스러운 것을 즐긴다.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다.
남의 이목을 끄는 힘,
오래해도 질리지 안는 힘,
그리고
자신이 남과 구별되어 보이는 힘.
그 예로,
나는 내 패션의 일환으로 머릿수건을 잘 쓰고 다닌다.
첨엔 부스스한 머리를 감출겸 쓰고 다녔는데,
어렵쇼, 그게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패션의 마무리를 늘 머릿수건으로 장식한다.
식당 주방 아줌마들이 머리에 쓰는 그런 수건인데
무늬가 고운 식탁보나 커튼지를 보면
그걸 댕캉 잘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다닌다.
또 긴 치맛단을 뜯어
모로코나 튀니지의 여인네들처럼 머리에 둘둘 말아다니기도 하고.
얼마 전엔 시어머니가 버린다는
야들야들한 여름조끼를 주워들고 와
머리에 싸매고 다니기도 했다.
하루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우리 합창단원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종교적인 이유에서 수건을 쓰고 다니시나요?’
그건 물론 아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의무적으로 머릿수건을 써야 했다면
내 기질상 종교를 탈퇴하고
머리에 아무것도 안쓰고 다녔을 것이다.
불뚝스러운 내 기질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자가 머릴 감추고 다녀야 한다는게
좀 탐탁지 않다.
어쨌거나,
그렇게 머리에 뭘 뒤집어쓰고 춤추러도 잘 다닌다.
멋쟁이 춤, 애교춤은 이미 졸업한지 오래.
지금은
춤을 춰도 뜬금없이, 뜨아하게, 되통스럽게 추는지라
나이트클럽에 가면
어물전의 꼴뚜기 신세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여기 저기 대학파티를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여긴 서른넘은 학생들 수두룩하다. 나이땜에 기죽을 일 없다)
얼마전 내게 딱 맞는 곳을 발견했다.
어느 조형예술대학의
‘여름방학 회화수업 뒷풀이 파티’.
그곳에 그림과 조형물을 배우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많이 온다.
젊은 날, 미술에 재능이 있으나 기회가 없어 대학엘 못간 사람,
취미로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
미대를 졸업한지 오래되어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나는 거기 그냥 구경하러 갔다가 멋진 춤 파트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작년 여름 방만구씨(남편)가 그림그리기(꼭집어 말해서 만화그리기)에 관심이 있어
만구씨와 그 코스엘 갔다가 우연히 뒷풀이에 참석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고 쿠키를 먹고.
날씨는 점점 어둑신해지고,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불콰해지고,
바의 음악은 점점 커지고...
혼자서도 춤잘추는 나는 춤을 출까 하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는데...
오후부턴가 눈에 띄게 점잖게 양복을 차려입고서
이곳 저곳 다니며 그림을 감상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양복입은 신사가 춤추는 것도 이상스러운데
더 웃긴건 어깨에 뭘 끼고서 춤을 춘다는 사실이었다.
자세히 보니 어디서 샀는지,
아니면 직접 만들었는지 모를(조형물 수업에서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그맣고 하얀 천사날개.
아저씨는 그걸 양 등짝에 끼고서
박자를 무시해가며 춤을 추었다.
음악은 맘보인데 아저씨 춤은 개춤.
‘와, 멋지다!’
그 아저씨한테 한순간에 반한 나,
당장 달려나가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
날개단 신사와 테이블보를 뒤집어쓴 나.
우리는 무리중의 가장 되통스런 한쌍이 되어 춤을 즐겼다.
12시까지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우리처럼 춤에 ‘쿨’한 사람들은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머렝게, 디스코, 가스펠, 테크노, 데쓰메탈을 가리지 않고
우리들만의 춤,
뜬금없고 뜨아하고 되통스러운 ‘개춤’을 춘다.
거기서 나는 춤추느라 바빠 날개단 신사와 통성명도 못했지만
내 인생 최초로 멋진 춤 파트너를 만났던 것이다.
(우리신랑 방만구씨, 딴남자와 춤춘다고 뭐라할 만큼 속좁은 사람 아니다)
올 여름 끝무렵에 다시 한번
조형예술대학에 가보려고 한다.
올해는 그 양복입은 신사가
흰 날개대신 무엇을 끼고 나올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으니까.
그때 난 또 무얼 뒤집어 쓰고 가야한다?
뜬금없고 뜨아하고 되통스러운 뭐 그런 것 없나?
집안을 한번 휘-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