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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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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침묵)


BY 개망초꽃 2006-05-30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시간을 모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흐려져 안개 속에서 더듬고 있을 때

내게 일어난 일들이 겨울처럼 일어서서 나의 가슴이 시릴 때

오늘 하루만은 침묵하고 싶을뿐이다.


매일 통화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괜히 헛웃음을 흘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는 친구 나름대로 좋은 것만 생각해 잘 될 거야 하면서

피곤한 일이 많아 자야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등산객이 올라오지 않는 야산 같은,

가까운 친척도 올 것 같지 않은 산속 외딴집,

유행이 지난 낡은 외투,

오래된 커피 잔 같은,

그런 적막함.



이렇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적막할 때,

친구도 타인일뿐이다라는 외로움.

사랑도 남이라는 고독,

형제도 자기 일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외 길.

부모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혼자 커가는 나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에서 결론을 내리고 내게 통보할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을 잃었다.

그래 알아…….

남이라서가 아니고,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서가 아니야.

이건 먹고 사는 일이잖아.

이건 즐기는 일이 아니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잖니…….

그 자리에서 물만 마셨다.

한 모금까지 털어 마시고도 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겉으로 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은 응급실로 실려 가고,

길거리에서 쓰러진 사람도 있다.

싸우다 지쳐 눈물이 마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삶에 지쳐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열렬하게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고

불륜의 현장을 알게 된 남편도 있는 것.

한쪽에선 꽃잎이 떨어지고

한편에선 꽃대가 올라온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일어나 집으로 걸어갈 다리가 있고

용기를 주는 가슴도 있고

살아야 한다는 머리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라는 말도 가식도 헛웃음도 한줄기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밖은 저녁이 방금 도착해 있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고 가듯,

오늘은 침묵으로 보내야지, 그래야지. 그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