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29일.
우린 드디어 결혼했다.
신랑이랑 연애하느라 친구들에게 소흘 했더니 친구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신랑 친구들이 서운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저 남편이랑 결혼을 한 사실이
너무 좋아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울 아버지 막내딸 보내면서 우셨다는데 그런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난 정말 철이 없었다.
너무 좋아서 신랑이랑 맞절할때 90도로 절을했다.
어른들이 보고 흐뭇해 하셨다.(비디오 보고 알았다.)
남편은 하객들에게 큰절을 했다.
남편은 사람을 참 잘 사귄다.
이날껏 남들이 신랑 흉보는건 못 들었다.
시댁에 인사갔을때 어머님이
\"쟤는 지나가는 까마귀도 좋다고 달려들것이여~.\"
이 소리가 뭔 소리인지 몰랐다.
살면서 알았다.
지나가는 까마귀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기가
마누라는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걸...
뿐만 아니라 남편은 어른들이 참 좋아하는 스탈이다.
예의도 깍듯하다.아무리 가까운 집에 갈때도 빈 손으로
가는 법이 절대없다.
신혼 여행을 제주도로 갔는데 사진 기사 아저씨가
우리 부부가 너무예쁘다고 사진도 다른 부부들 보다
많이 찍어줘서 우린 사진도 참 많다.
남편이 기사 아저씨들께 음료수도 건네고 하니까
아무튼 잘 봤던 모양이다.
남편은 결혼후 일년동안 심심하면 결혼 비디오와
신혼여행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
우리의 신혼은 주인집을 가운데 두고 울타리처럼
셋방 11개가 빙둘러쳐진 집이었다.
총 12세대가 사는집이였다.
거의 결혼 한지 5년미만의 새댁들이었다.
3평 남짓한 방,1평 남짓한 연탄보일러를 쓰는 부엌.
가구는 장농하나 조그만 앉은뱅이 화장대 하나,
속옷을 넣는 서랍장 하나,그리고 그릇몇개..
그게 우리 신혼 살림의 전부였다.
신랑은 내가 연탄 냄새 맡을까봐 연탄도 아침저녁으로
갈아주었다.
여차저차 신랑 밥을 해줘야 하는데 난 밥도 할줄
몰랐다.위로 언니들이 많은 탓에 난 한번도 밥을
해 본적이 없었다.내륙 지방에 살다보니 생선 냄새만
맡아도 속이 좋지않았다.밥 하는것도 신랑이 가르쳐
주었다.그래도 신랑은 내가 한건 뭐든 맛있어했다.
난 육류를 싫어하다보니 맨날 콩나물,오이,계란 김치..
어느날 남편이 오징어를 사다놓으라고 하더니 신랑이
퇴근후 손질해서 오징어 두루치기를 해서 너무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거울 앞에 앉아서 화장하는 내모습이 젤 예쁘단다.
난 부끄러워서 신랑이 보면 화장도 못했다.
이건 내숭이 아니라 진짜 부끄러웠다.
근데 지금은 보거나 말거나 입술도 오리처럼 내밀고
립스틱도 잘도 바른다.아무렇지도 않다.ㅜㅜ
집에도 일찍 들어오고 TV를 보던 뭘하던 늘 나를
옆에 앉혀놓고 있으려고 했다.
반찬은 아쉬운데로 언니에게서 조달도하고 배우기도
했다.언니가 있다는건 참좋다.
첫아이도 언니가 지극 정성으로 몸조리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