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안 한지 오래된 항아리나
그 뚜껑에다 흙 퍼담아 놓고
꽃도 심고 상추 쑥갓도 심었더니
아침에 눈뜨기가 즐겁다
아들이고 딸이고
한창 클 땐 경쟁하듯 동무들을 몰고 와선
재우고 먹이고 하는고로
당시엔 철철이 장도 많이 담그고
김장도 이웃이 놀랄 정도로 많이 사들이곤 했었다
천금같은 내 새끼가 좋아 죽고 못사는
제 동무들을 몰고 오는데
내 어찌 그 동무들을 귀히 대접치 아니하리
지금 큰아들은 31살
딸년 28살
아들은 성혼을 못했고
딸은 이태 전에 시집을 갔다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아들과
쉰 셋의 어미인 나
고추장, 막장 단지 열어 본지가 언제인지 ..
김치 한 통 담그면
시난고난 저 혼자 물러터지기나 하고
그러니
장독엔 꽃이 심어지고
독 뚜껑엔 상추 쑥갓이나 심을 수밖에 ..
이젠 편케 좋게만 살아가리라
마음에 한 점 미움 없어 좋고
내 몸에서 떨궈낸 새끼 둘
지극히 평범하나마나 남과 섞여 처지지 않고
부대끼며 잘들 살아가 주니 고것이 신통 방 통 대견스러웁고 ㅎㅎ
딱 요렇게만 살다 갔음 ..
내 기억의 다락엔 칸이 많은 서랍장이 하나 있다
흡사 개구쟁이 헐렁한 바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머니 같은
서랍장이 ..
그 주머니 같은 서랍 칸칸엔
30년 내 삶이 고루 개켜져있어
그 날 그 날 내 기분 여하에 따라 종류별로 꺼내놓고 즐기곤? 한다
그렇다
고통스런 기억도
어쩌다 아픔 같이 따끔한 환희도
굴욕.. 궁핍 비굴함 모욕 모멸 그 모든 것들이
아무리 잊고자 애를 써도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으니
이젠 꺼내 놓고 즐기는 나만의
취미생활로나 만들어야지 뭐
그래야 하겠다
이 만큼 살아 보니
인생이란 사실 그렇게 오~래 미워하며 살일 도 아니더라
또한 고난 없는 삶이란 것은
양념 없이 대강 담근 김치처럼 깊은 맛이 날 리가 없을 것이고
고난과 고통을 동반한 인생이라야만
그만큼 시야도 넓어지고 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깊어지는 게 아닐까 (내 생각)
모파상 작품 속
여자의 일생 쟌느의 웅얼거림처럼
인생이란
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
이제 가끔 나의 다락에 있는 기억의 서랍장을
열까 합니다
그 날 그 날 제 심보에 따라 하나씩 꺼내선 조곤조곤 수다떨고 싶어서요
아컴 님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