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나 봤던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뉴스에서만 등장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 일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인 줄 알았다.
어제인 토요일 낮 1시쯤 토요학습일로 학교를 쉬는 아이들과 찜질방을 갔다가 오늘 아침 8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에 키를 꽂은 아들이 “엄마, 열쇠가 안 돌아가요.” 한다.
“덤벙되긴...”하며 내 키를 열쇠구멍에 넣고 돌렸다. 정말로 돌아가지가 않았다.
남편이 전날 출근하며 집 열쇠를 두고 나갔다는 얘기에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고 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냐니까 그럼 가게(보일러 설비 사무실)방에서 잘 테니 아이들이랑 실컷 놀다 오라고 했었는데 혹 집 여분의 키를 어디서 찾아서 남편이 돌아가서 자나보다고 계속해서 벨을 눌렀다. 한데 응답이 없었다.
현관문 아랫 쪽에 있는 우편물이나 우유를 집어넣을 수 있는 둥근 구멍으로 아빈이가 들여다보더니 아빠의 신발이 없단다.
분명 내가 문을 잠궜는데...고정키를 누르고 잠그면 키가 돌아가지도 않았을 테니,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귀신이 곡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열쇠수리공을 불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그분이 오셨다.
안에서 잠군 것이 아니라면 속에서 무언가가 깨졌다고 뜯어내야 한단다.
출장비 만원까지 포함해서 6만원을 달라나...
가격을 흥정하느라 옥신각신하는데 현관문 아래 구멍으로 집안을 들여다 본 아영이가,
“엄마, 집이 이상해.” 한다.
“뭐가?”
“서랍이 열어져있는 것이 보여...”
“!!!!!!!!”
머리끝이 서는 느낌, 심장이 벌렁거렸다. 설마...설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수리공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여다 본 방안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장롱마다 문이 열려있었고 서랍장도 모두 열려 있었다.
아빈이 침대 위에 내 핸드백과 통장들과 그 속에 내용물들이 흩트려져 있었다. 아영이가 무섭다고 울었다. 아빈이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뭐가 없어졌나부터 훑어보았다.
귀금속... 14년 동안 갖고 있던 값비싼 18K의 반지들과 팔찌, 오메가 목걸이, 시계...싯가 1천만원에 가까운 귀금속이었다. 어려울 때마다 내다 팔까 갈등도 많았던 그것들은 모두, 결혼 예물부터 남편이 어렵게 돈을 장만해서 선물로 해준 것들과 친정엄마가 선물로 주신 진주 목걸이부터 반지들까지...
금값이 아무리 올랐다지만 18K같은 것은 구입할 때의 반값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까워서 팔지도 못하고 보관했던 나의 애장품들이었다.
그것을 판다면... 언제 또 장만할 수 있을까...그래서 갖고 있던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몽땅 가져갔다.
찔질방에 가면서 있는 돈 중에 5만원을 빼서 핸드백에 넣어 놓았다. 사람의 심리가 돈에 여유가 있으면 소비가 쉬울 것 같아서 알뜰하게 갔건만...
4백만원 가까이 들어있는 청약통장과 현금 20여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은 그대로 있었지만, 아끼자고 넣어두었던 현금 5만원과 아영이가 돈을 모아서 피아노를 사겠다며 소중하게 간직했던 코 묻은 돈 만이천원과 아빈이돈 삼천원까지...
그리고 방송국에서 상품으로 받았던 문화상품권 10만원 중 쓰고 남은 8만원권까지...
아이들이 팬시점에 갔을 때, 신나서 그동안 갖고 싶어 했던 품목들을 들고 왔을 때, 매정하게도 난, 쓸데없는 곳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며 필요한 학용품 구입 할 때만 쓰자고 했었다.
영화관에 보내달라는 말과 사이버머니 충전시켜달라는 아들의 말도 한마디로 잘라버렸던 그 상품권들...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귀금속도 팔아서 살림에 보탤 것을, 5만원 가져가서 애들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들을 모두 사줄 걸, 하고 싶다는 것 다 하라고 상품권 넉넉하게 줄 것을...
누구 말대로 아끼다가 똥이 되어 버렸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112에 신고를 했다.
머지않아 형사가 왔다. 침대 위에 난 신발자국은 증거 취득이 불가능하단다.
안방 쪽에 있는 도시가스관을 타고 올라온 도둑은 장갑까지 착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단다.
감식 반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문 채취를 시도했지만 치밀한 도둑은 어디든 장갑을 낀 손으로 이곳저곳을 만졌단다.
귀금속의 생김새를 설명해달란다.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반지의 디자인부터 사라진 모든 것들을 그려서 형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디카로 찍어서 컴퓨터에 저장했던 사진들을 뒤지고 보니 그 속에 선명하게 찍힌 목걸이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팔찌며 반지는 착용하고 찍은 것이 없었지만 셋트들로 이뤄진 것은 그 사진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것들을 인쇄해서 내밀었다.
형사 말이 큰 도움이 될 거란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단다.
경찰인 동생에게 전화해서 일어났던 진위여부를 늘어놓았더니,
“누나, 그것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비워. 그것들을 사는 금은방이나 전당포들도 장물인줄 알고 사기 때문에 쉬쉬해. 훗날 범인이 잡혀서 어느 집에서 무엇을 훔쳤다고 진술 할 때쯤이면 그것들은 이미 녹아서 다른 것들이 되어 있을 거고... 증거물은커녕 보상받을 길이 없어.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한다.
경찰은 도대체 뭐하는 거니... 사이카 타고 드라이브 다니냐? 여기서 자전거 3대나 잃어 버렸다고 신고도 했고...어쨌든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좀 더 순찰을 보강해야 하는 거지 않냐고... 경찰은 국민의 세금만 받아먹고 놀고 있냐고...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다 화풀이 한다고, 애매한 동생에게 퍼부어 버렸다. 동생이 할 말이 없단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인원이 너무 부족하다고...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알아라, 모든 액땜을 한 거라고 위로해주는 말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좀 전에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글을 올렸다. 혹여 보내 준 상품권에 등록번호 같은 것이라도 있느냐고...통장은 내버려두고 부담 없이 가져간 그 상품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매스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남의 일들만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놀란 아이들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였다. 나도 한 알 먹었다.
그래도 안정이 되지 않는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칠칠치 못하게 창문을 잠그지 않은 미련함을 드러내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혹여,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어느 것에도 손을 대지 말고
112로 신고하길 바란다.
지문은 다른 지문에 의해 쉽게 지워진단다.
놀랍고 어떤 것이 없어졌는지 궁금하더라도 어느 것에도 손대지 않길 바란다.
삶은 정말로 리얼리티하다.
꾸밈없는 극본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긴장에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