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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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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BY 초코렛 2006-05-28

그날도 남편은 어김없이 술에 만취가 되어 새벽에 들어왔다.

술에 노예가 되어, 흐트러진 모습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 남자가

나의 남편이라는 점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빨리 이 지겨운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술!

맨정신으로는 죽을 용기가 나지 않으니,

술을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자살했다는 소리는 듣고싶지 않으니까

다소 치사하긴 하지만,

교통사고를 가장한 죽음!

자살보다는 한결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담가놓은 매실주.

주방옆 베란다 붙박이장을 열고,

한잔씩 되도록이면 빨리 마셨다.

빈속에 마신 매실주는 빠르게 취기를 온몸에 퍼트렸다.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이 빠져, 유리잔을 깨트리고 말았다. 

새벽녘에 울려퍼지는 컵깨지는 소리에,

술에 쪄들어 들어온 그가 나를 향해 소리 지른다.

\" 지금 뭐하고 있는 짓이야!\"

 

술이란게 때로는 참으로 좋은것이기도 하다.

적개심도 분노도 이미 술에 녹아내려,

그의 윽박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고 있었다.

난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말했다.

 

\" 미안해. 잘못했어\"

그런 너그러운 말을, 그처럼 부드럽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술의 오묘한 마력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취기가 오르면 죽어버리리라.

 

난 대모님께 편지를 썻다.

친정엄마보다 더 의지가 되어준 언니.

나보다 10살위인 언니.

20년이나 사귀어 온 언니.

 

\"언니! 항상 고마웠어. 내 아이들을 부탁해\" 하는 내용의 편지를

취기가 한껏올랐지만, 정신은 명료했다.

 

거기에서 몇잔만 더하면, 그냥 쓰러져 자고만다.

그러면 모든 계획은 원점!

내가 필름이 끊겨본적이 없는것은

늘 그상태에서 잠들어 버리기 때문이라는것을

알고 있는 나는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다.

 

통곡을 하면서 빈방에서 대모님께 편지를 쓰고,

드디어 난 내차의 키를 집어들고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순간!

그가 나의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현관에서 내 머리와 얼굴을 밟았다.

 

이미 술에 취해,

나른해진 내 몸뚱아리는 현관옆 신발장에 부딪치고,

벗어놓은 신발들과 뒤엉켜버린 내 몸과 얼굴은

그의 발아래 짓밟혀 있었다.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벌써 새벽 5시!

난 그렇게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보면서

내 생애 최악의 생일 아침을 맞았다.

 

처절한 꽃잎이 되어, 낙화되는 순간에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모든것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욕실에서 바라본 내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내 얼굴에서 피가 흐르다니,,,,,,,,

 

난 행복해야만 할 권리와 자격이 충분한 존재이며

존중받고, 대접받으며 살 자격이 충분한 존재였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살기를 누구보다 원하셨던 분이셨다.

나의 어머니는 날 그렇게 살도록 키워 주셨다.

 

난 묵묵히 결행했다.

한치의 오차도, 흔들림도 없이,

20년의 결혼생활에 결과가 허무했지만,

그것은 또다른 삶의 시작일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점점 구체적인 결정이 다가왔음을 느끼는

나의 두 어깨는

20년동안 옭아메온 힘겨운 짐 하나를

내려 놓은 것처럼, 가볍기만 했다.

 

작년의 내 생일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보냈다.

올해 맞은 내 생일은 친구들로부터

화장품, 스카프, 향수, 금일봉, 맛난 점심.

 

화려하게 생일을 보냈지만

혼자 돌아오는 차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대접을 받고, 따듯한 배려를 받다니,,,,,,,

 

다시는 작년의 내 생일날을 회상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