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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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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변태?


BY 일상 속에서 2006-05-27

또 비가 오네요. 여기 사랑이 담긴 따뜻한 커피 한잔들 하시고 좋은 주말들 보내세요.

 

넓은 세상을 두루두루 다니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넓을까?

지식 또한 넘쳐나겠지.

눈으로 직접보고 듣는 것은 마음으로 바로 와 닿고 오래토록 남을 테니까...


내가 글쓰기를 겁내하는 것은 막히는 부분이 많아서다.

먹어 보지도 않고 그 맛을 표현한다는 것이,

보지도 않고 주변을 설명한다는 것이,

경험하지도 않고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척’하는 것이 어느 순간 ‘사기성’ 짙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뒤지며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정보와 맛의 미각과 환경을 뒤적거리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아컴’에 글을 올리고부터 이곳저곳 다른 분들의 조회수가 많은 글부터 제목에 눈길이 가는 글이 있으면 한 번씩 답사(?)를 다니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분이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담을 쓰신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속의 내용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해외여행은커녕 신혼여행 때 제주도 다녀온 것,

아빈이 어릴 때 가봤던 부곡 하와이, 수안보 온천, 해운대, 자갈치 시장과

몇 해 전, 여름휴가로 친정식구들과 변산반도를 비롯해 채석강, 곰소항에 이르기까지 하루치기로 다녀왔던 서해안 일주가 전부인 나다.


여행이라기보다 시간에 쫓기듯 다녀왔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 보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데...

주변 환경부터 여건까지 여러 가지로 힘들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 한다더니, 어쩜 나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보는 세상은 내 가정이 전부다.

그러니 나오는 얘기들이 모두 가정사 이야기뿐.

쓰는 나조차도 빤한 내용에 싫증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역시 난 시시콜콜 내 가정사 일을 쓰려고 한다.


아빈이가 아주 어릴 때,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지아빠를 따라가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다는 말이,


“엄마, 내 고추는 새것인데 아빠 것은 낡았어요.”


하는 거다. 그 표현이 어찌나 웃기던지, 배꼽을 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영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아빠를 따라가서 구경을 하더니 한다는 말이,


“엄마, 오빠 고추는 하얀데 아빠 고추는 왜 까매?”


하는 거다.


아들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웃기더니 딸의 그 말은 기분이 별로였다.

아무리 가족이로서니 지킬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성 없는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


“뭐야?! 문 좀 닫고 볼일 보면 안 돼?”

욱하는 성미에 참지 못하고 톡 쏘아 붙이는 나의 말에,


“문 닫았는데 아영이가 문 열고 들어 온 거야. 그리고 앤데 어때?”

하고 남편이 대꾸했다.


“뭐? 앤데?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얼릴 때부터 교육을 바로 가르쳐야지 무슨 그런 망말을 해?”

“.....”


나의 말이 동조했는지, 아니면 살벌한 마누라의 등살 때문인지 남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계집애는 조심(?) 또 조심해서 키워야 한다가 내 신조 중에 하나.

세상이 많이 변해 이제는 처녀가 천념기념물로 등록 되야 한다는 웃기지 않는 유모가 나돌고 있지만, 부모 된 도리는 아이들에게 정조를 가르쳐야 하는 것도 한 몫.


아영이는 치마를 좋아한다. 그것도 미니스커트를.

어릴 때야 팬티가 보일랑 말랑 입는 것도 귀여워서 그런대로 입혔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작아서 입기 어려웠던 면 쫄바지를 짧은 치마 입을 때마다 껴입히기. 5년 전부터니까 아영이가 4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영이를 낳고부터 더 많이 변형된 몸 때문에 내 자신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아빈이와 아영이를 입히며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았다.

학창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난 좀 대담하다 할 정도로 내 자신을 꾸미고 다녔다. 덕분에 한 패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실력을 살려서 아이들을 입히고 다녀선지

아빈이 어릴 때는 주변에서 아동모델로 키워보라는 소리도 들었다.

남자 아이도 그 정도로 꾸며줬으니 딸인 아영이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굳이 메이커가 아닌 시장에서 산 옷이라고 해도 어떻게 코디를 해주느냐에 따라서 멋스럽게 꾸밀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아영이를 입혔다.

아빈이야 컸으니까 이제 깔끔하게만 입힌다.

아영이는 아직 어리다보니 제가 입고 싶다는 스타일로 꾸며주려고 한다.


아영이의 패션 때문에 또래의 계집아이들이 제 엄마들을 들볶는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아영이와 똑같이 입혀 달라는 애까지 있어서 매번 전화로 어떻게 입혀야

하냐고 조언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한때 주변의 아동복상점에선 작은 쫄바지가 잘 팔렸다는 후문도 있었다.


요즘은 레깅스란 이름으로 아동복이 나오는데 쫄바지를 응용해서

만든 것 같다.

어허...이야기가 샛길로 샌줄도 몰랐다. 이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다시, 길을 바로 잡아 가기로 하고,

어쨌든 딸인 아영이에게는 여러 가지로 아빈이 때와는 다르게

키운다.


함부로 놀이터에서 놀게 못하고 학교나 학원에서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야 한다는 등,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면 엄마가 소재파악을

할 수 있게 전화 연락을 줘야 한다는 것까지.


아빈이 어릴 때도 그런 교육이야 있었지만 아영이에게는 좀 더 엄격하게 하는 편이다.


속바지를 입었건 레깅스를 입었건, 다리는 함부로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도 안 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몸을 만지게 하면 안 된다...등등...


매스컴에서 나오는 온갖 흉악한 얘기들을 접하고 나면 내 교육이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어쨌든 아영이는 여자의 몸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제, 아영이가 방걸레질을 하는 나를 보고 책상에서

숙제 하다말고 물었다.


“엄마!”

“응.”

“엄마는 아빠 있는데서 옷을 벗잖아. 그건 괜찮아?”

“.....(하여튼 자식들 돌아가면서 엄마 당황시키는데 뭐 있다니까.)부부잖아.”

“근데 왜 아빠가 엄마 옷 갈아입을 때면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글세 왜 그럴까?”

“아빠는 엄마가 옷 벗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지?”

“....왜 좋아해야 하는데?”

“텔레비젼에서는 남편이 아줌마가 옷 벗으면 좋아하잖아.”

“부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럼 아빠도 좋아하는 거잖아.”

“그럴지도... 네가 있는데서 엄마가 옷 갈이 입으니까 아빠가 창피해서 그랬을 거야. 아영이 말대로 속으로는 좋아서 “좋~다” 했을지도 모르지.“

“헉... 아빠 변~태!!!”


아... 나는 갑작스레 변태가 되어버린 남편을 옹호하느라고 진땀을 빼야 했다.

난 내 아이들을 잘 교육시킨다고 자부했던 지난날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가르쳐야 제대로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