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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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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향꽃무


BY 손풍금 2006-05-25

하얀승용차가 선다.

아름다운 처녀가 내리고 처녀의 엄마가 뒤따라 내리자 곧 차가 떠난다.

처녀의 엄마는 다솜이 엄마다.

내 앞을 지나는 다솜이 엄마는 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는데 한여름 가뭄 속 비포장길을 버스가 지나간듯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그녀를 처음만난 것은 오년 전 한 여름 장터에서였다.
헤진 에이프런을 앞에 걸치고 어깨아래까지 내려온 긴머리를 묶지않고 풀고 앉았는데
가벼운바람에도 머리결이 아무렇게나 흔들리고 마른나뭇잎처럼 닿기만해도 금새 부서져내릴듯 바삭거려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어디서라도 고무줄을 사다주고 <머리 좀 묶지 그래요.>하고 싶은 심정이 일었다.

장터거리에 앉아 누가 자신을 바라보든 말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 싶게 무슨생각을 그리 깊이 하는지 눈동자가 허공에 떠있었다.
후로 돌아오는 장마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다솜이 엄마는 장사를 나오면서 다섯 살배기 사내아이와 열다섯살정도는 되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이름이 다솜이라고했다.
사내아이는 입에 사탕을 달고 있으면서 먹을것이 떨어지면 보채기 시작했고 그 사내아이가 보채면 그녀는 다솜이를 향해 야단치고는 했다.

“동생도 하나 제대로 못봐?. 저 은행안으로 가서  놀다오던지..
학교 운동장에 가서 데리고 놀다 오던지 여기 오지말아.
여기 자꾸 얼쩡거리니까 장사가 안되잖아”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높이면
다솜이는 제동생 손목을 잡고 그녀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려 데리고 가보지만

과자가 그리운 아이가 제누나를 쉬이 따라가겠는가..
안가려 버티다 울며 떼를 쓰면 사람들이 보든 말든 털이개를 집어 들고

“제동생도 하나 못보는년, 아이고 지겨워”하며 욕설을 퍼부며 털이개를 들고 쫓아가면

키가 작은 다솜이는 사내동생을 힘들게 안고 저만큼 달아나는데 그녀나 그녀의 딸 다솜이나 모두들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있어 바라보는이들마저 지쳐 입을 다물게 했다.

그녀가 파는물건은 튀밥이였다.
뻥튀기.. 쌀튀밥. 옥수수강냉이. 한여름에 그게 팔릴리는 만무다.
하루종일 팔고 앉아있어야 손에 쥐는돈은 일이만원이다.
싸놓은 물건 바라만 보아도 더워서 목이 메여온다.
근처가계로가서 냉장되어 있는 음료수를 사가지고 올라와 그녀에게 건넸다.
달게 마셔대던 그녀는 그동안 말할상대가 없어서 말을 묻어두었던것 처럼 끝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놓는데 정리해보면

결국 거리에 서게된 이유는 남편이라 하며 상대에 대한 미움이 넘쳤다.
다솜이 엄마는 나보다 여섯 살 아래였는데 그녀의 이마엔 굵은 주름이 세개 있었다.
눈이 나빠서 앞이 잘 안보인다고 했고 장에 따라온 두아이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언니, 우리 얘들하고 내가 왜 안경 쓰게 되었는지 아세요?

그리고 내 이마에 이 굵은주름이 왜 생겼는지 아세요? ”한다.
사람이 잘안보여 애를 쓰며 바라보다보니 이마에 주름이 생겨났고 ..
말인즉은 먹고싶은것을 잘 못먹어서 아이들도 그녀도 영양실조로 시력이 점점 나빠진다는것이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져 파장이 되면서 그녀는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다

올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원망섞인 욕설끝에 두아이에게 짐을 나눠 들게 하며 버스타는곳으로 향했다.

장날이라 버스안은 만원일텐데 짐이 많아 버스기사의 눈치를 보며 타야 된다고 걱정을 늘어놓으며 버스정류장으로 떠난 다솜이엄마의 뒤를 따라가 내 차에 태워 그녀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가는길은 한적했고 고요했다.

그녀는 조금 만 더 가면되요. 동네도 몇가구 안되요. 다 노인들 뿐이예요. 노인들 틈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뭐가 되겠어요? 했다.

초등학교 폐교 뒷쪽 언덕길로 올라가면 집이 있다고 했다.

허물어져가는 낡은집을 연상하면서 고생많이하는구나 싶었다.

길을 찾아 들어가자 숲속에 잘지어진 집이 한 채 나왔다.

<아... 저런 곳에 살았음...>

\"다 왔어요. 언니 잠깐 내려서 감자좀 캐가지고 가세요. 고추도 좀 따가구요. 텃밭에 지금 잘자라고 있어요.”하는 다솜이엄마에게

\"집까지 가줄께요. 저 집 뒤쪽으로 있어요?\" 하자

\"아니요. 이 집이 우리집이예요. 외따로 있어 아주 심심해요.\"하는데는 뭔가 속은 기분이였다.

“이집이예요?”

“네..언니 들어와서 시원한 물이라도 좀 마시고 가세요”하는데 묘한 배반감마저 들었다.

“좋은곳에 사네.. 터도 넓고 ....집도 잘지었네”하는데는 그녀와 단절된 소통이 말을 거두었다.
시골길을 다니면서 단정하게 불밝혀 온기가 느껴지는 집이나 대문이 잘 닫혀있는집을 지나칠때면

우리가족에게도 넓은터에 바람 막아줄 벽돌집 한 채라도 내집이 있었으면 ,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을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아끼며 사는 것이 가장 큰소원이였던 그때였다.


그런데 다솜이 엄마는
“언니.. 여기가 좋다고요?. 슈퍼마켓도 없고 사람도 없는 여기가 좋다고요?
우리 애아빠.. 날만 새면 일만 죽어라 하고 쓸줄도 몰라 벌기만 해서 읍내에 아파트 두채사놓고 모두다 세놓았어요.
내가 아파트 사는게 소원이라 했는데 우리애아빠.. 절대 안된데요. 아파트사는여자들은 사치가 심하다고요.
여기 동네도 없는 구석진곳에 아이들하고 나 쳐박아놓고.. 쌀하고 부식도 직접 사들이구요. 돈도 잘 안줘요.“한다.

아름드리 나무가 울타리를 치고 있는 텃밭으로 찾아들어 가면서
“그래서 아직 어린아이들 장터로 데리고 나와 장사해요?”하니

“네... 아이들 과자라도 사먹이고 학원이라도 보내볼려구요.”:.언니는 왜 장사해요?” 한다.

“나요?.. 먹고 살려고 하지..먹고 살려고...”하는데 말이 콱 막혀 다음 할말을 찾아내지 못하는게 분한마음까지 들었다.

잘 여물어 흙속에서 뒹굴고 있는 감자 한바구니 캐어 들고 가지가 찢어지게 열린 토마토 몇 개 따들고 저녁먹고 가라는 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안개속을 헤메다 나온 듯 영 기운이 없고 혼란스러웠다.
다음장에도..그 다음장에도 장꾼들이 무더위에 그늘을 찾아드느냐 지쳐있을때
다솜이 엄마는 두아이들을 데리고 장으로 왔고 여전히 부피가 큰 튀밥보따리를 들고 파라솔도 없이 뙤약볕의 장거리에 앉아 궁핍함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 무심해지자 하고 보였던 관심을 접고 그녀가 하는행동을 눈밑으로 가끔씩 바라보았다.
나의 대답없는말에 지친 그녀는 처음보다 많이 말을 줄이고 있었지만

“애아빠는 아이들 사교육비를 안줘요. 옷도 사입히지 말고 얻어다 입히래요.
우리가 거지예요? 그래서 내가 벌어서 아이들 가르키려구요. 유치원도 보내볼려구요. 새옷좀 사입혀 보려구요.언니 내말이 틀려요?”했지만 그말이 어디 틀릴수가 있나.

“더운데 고생하지말고 학원 보낼수 없으면 집에서 아이들 데리고 책읽어주고 텃밭 일구고.. 그러면 안될까..”했지만 내가 건네는 말한마디에 그녀는
스무마디 이상의 말을 쏟아부으며 당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그 고통을 모른다 하며
목소리를 높힐때는 눈꺼풀에 가벼운 경련마저 일어나고 있어 그녀가 스스로 고단한 삶에 묻혀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부터 다솜이 엄마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집을 가보기 이전 보다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돈에 가치를 두고 일만 하는 그녀의 남편과 그녀가 부족한 그 무언가를 찾아내려 행하는 강한 반발에 내가 걱정하기에는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릴 처지 였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그녀를 잊고 있었는데 오늘 보게 된것이다.
몇날을 밤시간에도 전화기를 붙들고 신세한탄하던 그녀는 나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그녀가 지나칠 때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당황했다.

손안에 설탕이 녹아 범벅이 된 듯한 그 끈적한 여름날에 어린동생을 데리고 털이개를 피해 달아나던 그 아이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다.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허리까지 오는 도마를 앞에 놓고 무심하게 닭머리를 쳐 내리는 김씨의 닭전 오른편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바라보았다.

 

숲속에 있던 그 푸른 집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